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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거처 ㅣ 창비시선 100
김남주 지음 / 창비 / 1991년 12월
평점 :
대학 시절 그를 처음 듣고, 김남조와 헷갈렸던 적이 있다. 그 전까지 김남조의 시는 많이 들었어도, 김남주는 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시인일까, 혁명가일까... 그의 시를 읽어 보면, 그의 삶을 되돌아 보면, 혁명가의 삶에 가깝다.
남민전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고 나와 갈 길을 잃은 90년대 초반을 살고 있던 그의 마음이 '사상의 거처'에 잘 살아 있다.
사상의 거처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입만 살아서 중구난방인 참새떼에게 물어본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리만 살아서 갈팡질팡인 책상다리에게 물어본다.
... 갈 길 몰라 네 거리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웬 사내가 인사를 한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어요 선생님은
그의 물음에 나는 건성으로 대답한다. 마땅히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집회에 가는 길이라며 함께 가자 한다.
... 나는 알았다. 그날 밤 눈보라 속에서
수천 수만의 팔과 다리 입술과 눈동자가
살아 숨쉬고 살아 꿈틀거리며 빛나는
존재의 거대한 율동 속에서 나는 알았다.
사상의 거처는
한두 놈이 얼굴 빛내며 밝히는 상아탑의 서재가 아니라는 것을
한두 놈이 머리 자랑하며 먹물로 그리는 현학의 미로가 아니라는 것을
그곳은 노동의 대지이고 거리와 광장의 인파 속이고
지상의 별처럼 빛나는 반딧불의 풀밭이라는 것을
사상의 닻은 그 뿌리를 인민의 바다에 내려야
파도에 아니 흔들리고 사상의 나무는 그 가지를
노동의 팔에 감아야 힘차게 뻗어나간다는 것을...
...동지를 바르게 식별한다는 것을...
80년대 넥타이 부대로, 386세대로 살아온 변혁의 주체라던 이들이 '자본가의 접시에 군침을 흘리면서 예술지상주의'를 하겠다고 하는 90년대에도, 그는 '승리 아니면 죽음을' 하고 어깨겯던 동지의 무덤 가에 잣나무 한 그루 심을 줄 알지만, 갈 길은 환하지 않다.
그의 눈은 여전히 날카롭지만 '산에 들에 봄이 오고'에서 처럼, 감옥 생활 끝에 무덤으로 가버린 자신의 미래를 예언이라도 하듯 쓸쓸하기도 하다.
그의 풍자와 역설은 '조국은 하나'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을, 퇴폐적인 자본의 삶의 현실을... 좌충우돌 부딪치며 휘달리지만, 그의 사상이 지향했던 '남조선 민족 해방 전선'의 고운 꿈을 휩싸고 돈다.
이 민족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싸웠던 그는 영원한 아나키스트일 수밖에 없었다.
건전한 노동자들의 피땀흘린 세금으로, 밤이면 밤마다 네온사인 흥청거리는 이 나라에 하나쯤 있어도 좋았을 사금파리같은, 꼬챙이같은 시인이었건만...
체포, 감금, 투옥, 고문, 재판... 그 끝의 전향, 배신... 삶을 찾아 떠나버린 이들의 글에서는 힘이 없다.
미래를 볼 눈이 없다. 이미 자본가의 접시에 군침을 흘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시는 바늘방석이다. 어느 한 편, 우리를 가만히 놓아두는 시 없다.
생각할수록 불편하게 한다. 그것이 깨어있는 혁명 시인의 역할인 것이다.
그가 우리 곁에 없음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