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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진료소의 하루
도쿠나가 스스무 지음, 김난주 옮김 / 샘터사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해냈군요, 고생했어요... 이 말은 아기를 낳은 산모에게 의사가 하는 말이 아니다. 스스무란 의사 선생님은 자살을 기도하여 병원으로 실려온 이미 죽은 이의 차가운 손을 잡으면서 이런 말을 한단다.
그렇다고 그가 죽음의 의사인 것은 아니다. 그는 평생을 환자 돌보는 일에 바친 의사다.
의사들은 '생명'을 돌보는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유로울 수 있을 때는 '죽음' 이후랄까. 아무튼 의사란 직업은 생명과 죽음의 문턱을 오락가락하는 일이겠다.
이 의사는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는 것은, 죽음을 아름다이 맞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의사는 항상 환자보다 일미터 높은 시선에서 누워있는 환자를 바라본다. 그리고 간혹 처치도 한다. 그러나 이 의사는 환자 옆에서 무릎 꿇고 눈높이를 맞출 줄 아는 사람이다. 병원에 가면 얼마나 의사 나으리가 높아 보이던가를 생각해 보고 하는 일이다.
의사도 사람이다. 그래서 바쁘면 신경질 낼 수도 있고, 수술을 잘못 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좀더 인간적일 수도 있다는 걸 이 사람은 알고 있다.
의사들이 많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어찌 보면 너무도 하찮은 이야기들을 적어낸다는 생각도 들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그런 것도 되지 않을까. 전통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세.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 그런 것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 그런 어떤 것. 자본주의 시대의 돈이 아무리 짓쳐들어오더라도 까딱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삶의 자세.
사람이기 때문에 살아내는 삶의 자세 말이다.
작은 시골에서 의사 노릇을 하다가, 결국 들꽃 진료소라는 병원을 낸 의사 선생.
그래, 장미도 예쁘고 생일엔, 잔치엔 왠지 백합이나 화려한 튤립 같은 것들이 아름다워보일는지 몰라도, 세상에 그런 꽃들만 피는 건 아니잖은가.
천하에 돈 많은 기업 총수도 병 앞에선 어쩔 수 없지 않을까? 그가 미국에 왔다갔다 하면서 비행기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고요하고 물 맑은 산골에서 고요히 제 몸 다스리는 것도 배워봄직 하지 않은지...
화려하고 밝고 큰 꽃들 말고도, 이름도 몰라서 들꽃이라고 부르는 그저 들꽃 속에 여럿이 파묻혀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 곁에 있어서 살+암=사람임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책이었다.
장정일이 생각 = 살 생 + 느낄 각, 살면서 느끼는 것이 생각이라고 한 것처럼, 살면서 들꽃 한 송이도 얼마나 정겨운지, 눈물나게 고마운지 향기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오늘 아침, 교무실 책상 앞에 보라색 국화 화분 하나 갖다 두었다. 교실 교탁엔 노란 화분 하나로 낼모레인 학생의 날 선물을 대신하고...
가을이다. 가을엔 가을 남자가 되는 것도 멋지지 않을까? 들꽃 한 송이를 통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