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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ㅣ 문예중앙시선 8
안현미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여자 곰같다. ㅋ
하긴 우린 웅녀의 후손이니, 모두 곰의 유전자를 한톨만큼씩은 갖고 있겠지.
저질러라, 닥치면 겪는다, 긍게 긍갑다...
이런 것이 좌우명이라면... 그 삶이 가난에서 시작해서 무대뽀로 진행되다 고독으로 눈물짓고 있는 것인 줄 알리라.
시는 곧 그의 삶인데, 어떤 해설가가...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안현미의 시세계가 탐색하고자 하는 것은
이성중심주의적인 근대적 주체의 관념 속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의식으로부터 배제되어 추방된 우리 정신의 또 다른 영역이라는 것이다.(132)
이런 시답잖은 씨월렁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까지 넣은 글을 덧붙인 것은, 이 책의 실수다.
거짓말쟁이가 늘 입에 '이거 진짜야'를 붙이고 산다.
마지막의 '자전적 산문'은 좋았다.
인문계 커트라인보다 높은 성적의 우울하고 못생긴 친구들...(119)
로 살았던 열 아홉 청춘.
그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둥의 서울대 교수의 지껄임은 구역질 나는 것일지도...
시집의 제목부터 그렇지만...
안현미는 우리말을 '곰곰' 응시한다.
그러다가 우리말은 무슨 말이든 두번 겹치는 '첩어'로 만들면, 새로운 의미가 퐁퐁 샘솟는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의 시는 그리하여 분홍분홍~하지는 않지만,
곰곰... 자분자분하다.
그렇다면 시인,
집도 절도 없는 마음 불 꺼도 설움은 꺼지지 않더이다.
그렇다면 시인,
빌어먹을 슬픔의 삼투압은 발광의 광합성과 어떤 관계가 있단 말이오.
그렇다면 시인,
문 밖이 곧 저승이라고 하더니, 왜 나는 문 안쪽에서도 관에 누워있는 것 같단 말이오.(그렇다면 시인, 부분)
시인이 된 '시인 현미'
곰곰 바라보면 텔레비전의 사람들은 모두 가짜임을 알게 된다.
곧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지나간 것이고,
지나고 있는 것이고, 아까 저 거시기 문학평론가의 말마따나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다.
케이블티비에서 일 년 전에 죽은 사내가
죽음의 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내의 전생이었다(가령, 부분)
'도에 관심있으십니까' 류의 생각을 하다가
이런 시를 만난다.
도란
도란
뜰 앞의 잣나무!(나 vs 잣나무, 부분)
도란도란 속삭거리는 잣나무이기도 하고,
도란 무엇인가 하는 정의 형식이기도 하고,
중의적이기도 하고, 중첩이기도 하고, ㅋㅋ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이기도 하다.
실패엔 나와 발음이 뭉개진 사내와 어린 창녀 아이의
엉킨 실타래 같은 꿈이 감긴다.
색색깔의 실패!(실패라는 실패)
실꾸러미를 실패라고 불렀는데,
요즘엔 뭘 꿰맬 일이 없으니 실패를 만날 일이 드물다.
그러니 실패에 좌절하는지도 모른다.
#1
2층 통유리 찻집 '파우'
여자는 사선으로 쓰러지는 비를 바라본다
#5
'파우'는 무덤 속
아니,
나의 전생 같다
#0
여자는
발굴되지 못한
빗살무늬토기다(빗살무늬토기, 부분)
비와
빗살무늬
사선으로 쓰러지는 비와
사선으로 그어진 빗살무늬
그들을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 속엔 가득한 빗살무늬
속은 텅텅 빈...
한계와 임계 사이에 언어가 있다
언어는 우울한 물고기 이름이다
이를테면 제대로 실패한 자만이 실패를 싱싱하게 맛볼 수 있다(언어물회, 부분)
한계는 막다른 길이다. 더이상 갈 수 없는 곳이다.
임계는 두 영역의 경계선, 가장자리이다.
한계는 임계와 겹칠 때도 있지만, 간혹 한계는 외롭기도 하다.
임계는 늘 둘이지만,
한계는 둘이다가 혼자이기도 하다.
그 사이를 언어가 유영한다.
고독한 언어... 그는 제대로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아는 이에게 포획된다.
곰곰 살피는 이이게...
나 오독한다
오! 독한 나(갈대밭에서 읽다, 부분)
이런 말도 신선하다.
이 시를 타이핑하다가 실수로 '오덕한다'로 쳤다. ㅋ
오타쿠처럼 뭔가에 몰두하는 일을 '오덕한다'고 가볍게 말한다.
그는 스스로를 '독하다'고 응시하기까지
스스로를 오덕질 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계와
부글거리는 상태가 변화하는 임계와
더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한계까지를
오덕질 하다보면,
모든 일이 부질없는 '오독'임을 찾는다.
시인 현미다.
슬픔은 팡이 팡이 피어오르는 곰팡이꽃러럼 습관적으로 습한 곳만 더듬거렸다
습관적으로 희망하고 반복적으로 절망하는 날들이 지나갔지만
아무도 여자가 어디로갔는지 묻지 않았다.
물음이란 본디 목마른 여름날 오후의 햇살들처럼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게
이 별책 부록 같은 골목의 불문율이었다(그 해 여름, 부분)
팡이 팡이 피어오른다는 말을 찾을 정도로 그는 곰곰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거짓말을 타전하다, 부분)
이런 영혼이 담아낸 시들은
고아하지는 않지만
삶의 냄새가 물씬 풍기고
치열하다기보다는
익숙하다.
당황스럽게 친숙한 시들...
잘 아는 사람처럼 보이는 시인 현미.
26쪽. 육교... ㅋㅋ 사람다니는 육교가 아니다. 거시기한 육교다. 그런데 '50촉 백열등'이 나온다. 아마 30촉의 착각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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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1126372
백열전구를 30촉, 60촉이라고 불렀는데 60촉은 비싸서 서민들은 30촉을 주로 사용하였다. W(와트)보다 더 친숙하게 사용한 단위인 '촉'은 촛불 하나의 밝기를 표시하는 것으로 30촉만 해도 예전에는 충분하였다. 우리 삶의 애환이 30촉 백열전구에 담겨졌다. 김종해 시인의 '봄은 느닷없이 온다'라는 시에서 '봄은 화안하다/ 봄이 와서 화안한 까닭을 나는 알고 있다/ 하느님이 하늘에다 전기 스위치를 꽂기 때문이다/ 30촉 밝기의 전구보다 더 밝은 꽃들이/ 이 세상에 일시에 피는 것을 보면~'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따뜻한 추억을 우리들 가슴에 남기고 사라지는 백열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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