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 - 파워라이터 24인의 글쓰기 + 책쓰기
경향신문 문화부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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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 소나 책을 내는 시대가 되었다.

대통령의 시간...이 출간되더니... 문어대가리도 자서전을 낸다고 한다.

참 설치류나 연체동물이 책을 낸다고 하니... '개나 소' 같은 포유류가 책을 낸다고 하면 그건 멀쩡한 일일지 모르겠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참 살기 팍팍하다.

OECD에 우찌우찌 가입해서 돈을 내야하는지는 모르지만,

노동 시간 최 장시간이고,

자살률 1위이며, 출산율 최하위라는 것을 보면, 정치를 하느니 경을 치는지 모르는 나라임은

국제적으로 분명한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이 나라는 다른 후진국과 달리 특이하게도

국가에서는 해주는 게 없어서, 너무도 없어서,

각자 알아서 살아가야하는 <각자도생>이 유전자에 각인된 탓에,

알아서 경쟁하고 승리하도록 가정에서 들들 볶는 데는 이골이 났다.

 

그 결과 학교라는 곳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지 못한 학생>들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진학률>을 보이고 있다.

다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사립대>가 <가장 낮은 공교육 지원금>을 토대로 승승장구하지만...

 

아무튼, 책을 안 읽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들이기는 한데,

또 그 교육열과 문자해득률 덕인지, 무지 많은 책을 출판하게 한다.

그리고, 저질스런 야한 동영상 역시 세계적 수준으로 초딩용부터 유포되는

최강의 아이티 국가여서인지,

인터넷 글쓰기 역시 세계적인 수준이다.

 

글서 이 나라에서는 <작가>가 되는 일이 어렵지 않다.

자기가 돈을 내고 자비출판을 하기로 하면 누구나 돈천만원에 작가가 될 수 있고,

청소년들의 글도 쉽게 책으로 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경향신문의 <논픽션> 파워라이터들에 대하여 소개한 것을 짧게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지 않는 학자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파워라이터>로 꼽을 수 있으나,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나도 즐겨 읽는 강신주, 이현우, 정희진, 신형철, 정여울, 박찬일... 등도 멋진 작가지만,

낯선 이름들도 나름의 분야에서 좋은 글들을 쓰는 모양이다.

 

나처럼 스스로 관리하기 위하여 정리하는 글을 쓰는 사람과는 달리,

그들은 강연을 가고, 강연 자료들을 정리하는 일들로 파워리뷰어가 된다.

 

과학은 인문학의 영역을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이 알지 못한 영역을 밝혀주는 학문이다.

세상을 이해하는 데는 ‘두 가지 렌즈’가 필요하다. (장대익)

 

나는 이런 장대익 류의 글도 좋아한다.

 

마구 뒤섞인 다이어리의 메모, 즉 데페이즈망이야말로 내 글의 원천이다.

이 메모가 안 어울리듯 어울리는 화학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이주은)

 

이주은이 이야기한 '데페이즈망'이 과학에서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누군가는 과학이라고 하는 것을 누군가는 소설로 '비유'하며 써내는 것이 '라이팅'이다.

 

글은 읽어보면 알고 요리면 먹어보면 아는데

깊이가 없으면 맛이 없어요.

잠깐은 속일 수 있지만 영원히는 아니죠.(박찬일)

 

이런 것이 '라이팅'의 묘미다.

해리 포터처럼 환상 세계의 이야기라도, 아픈 사람은 위안을 얻는다.

해리처럼 자신도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고픈 신자유주의 세상의 청년들이라면...

 

고미숙 류의 재생산은 힘이 없다.

물론 고전을 법고창신하는 일은 무의미하지 않다.

그러나, 그저 지식인 몇이 모여서 밥해먹고, 우리는 신 지식인이닷~! 하는 자위보다는,

고병권 류의 생산이 힘이 된다.

 

혁명은 빠른 걸음, 지름길에 있는 게 아니라

단호한 것에 있으니까요.(32)

 

그래서 고병권은 밀양 할머니들 곁에, 쌍차 노동자들의 옆에... 같이 앉는다.

신형철의 글 역시 그래서 다순 면이 있다.

 

문학 비평이란 엄격한 논리학 교사가 아니라

성숙한 동반자에 가깝다고 믿으며

비평의 독자성이란 예외적인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비평 본연의 지향점이라고 믿는다.(123)

 

뭔 말인지 잘은 모르지만,

신형철도 계속 가려면 좀 알아야 한다.

김현 선생의 시대에는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면서

앞서 나갔던 청년 부대가 있었지만, 이제는 자신이 앞 서서 나가는 '영혼'이 되지 않으면 안될 시대임을... 알아야 한다.

말로만 '김현 비평의 힘은 제게 근원적인 것'이어서는 힘이 없다.

 

요즘엔 '기행문'이나 '맛집'에 대한 책도 많다.

 

다시 찾아오고 싶은 식당이나

다시 묵고 싶은 어딘가에 대한 기록.

미적인 측면에선 온도가 있고

그 온도를 담아내서 보여주고 싶은 것들...(161)

 

이병률의 글과 사진들은 그래서 온도를 품지만,

그 온도는 사뭇 겉돌기 쉽다.

만화가 <최규석>의 송곳이 찌르는 온도는 바로 울 곁에있는 사람의 살결 온도여서 진한 열정을 전해주는 것이다.

외국으로 나도는 박노해나 이병률의 사진들이 가지는 힘은

그저, 사는 게 그렇지 뭐... 하는 사막의 팍팍한 무의미한 먼지 바람처럼... 건조한 온도다.

 

특히 책을 처음 쓰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글에 온기를 담는 게 중요해요.

그런 글이 사람들의 심장을 움직이요.(166)

 

글쎄. 지갑을 움직일 지는 몰라도, 심장을 움직이는 글은 다르다.

 

의도한 게 아니라 우연히 만난 책들은

내가 가진 책들과 또 다른 방식으로 영감을 줘요.

글에 영감을 주는 것은 사물과의 만남입니다.

그것도 뜻하지 않은 만남. encounter...(이주은, 183)

 

지식이 되는 글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글이다.

정여울은 같은 사건이라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글,

문체에서 영혼이 느껴지는 글을 사랑한다.(정여울, 241)

 

지갑을 움직인다고 좋은 책도 아니고,

심장을 움직인다고 훌륭한 책은 아니다.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라이터'는 정희진처럼 남들이 다들 쓰는 것을 쓰지 않는 사람의 글이다.

 

글쓰기는 곧 '생각'이라는 것이 정희진의 결론이다.

중요한 건 자기 생각과 자기 입장입니다.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글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자판으로 글을 입력하는 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257)

 

정희진에 따르자면,

파워 '라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파워풀한 '씽커'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국가에서 교육을 틀어쥐고 있는 것도 씽킹을 가로막고

저돌적인 흐름의 물살을 틀어막는 댐을 조성하듯,

자신들의 주도권을 놓아주지 않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결국, 생각이 없는 쓰기는 없다.

나는 거의 날마다 '라이팅'을 하고 있다.

책을 읽고, 나의 생각을 글로 정리한다.

아니,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 목표다.

그렇지만, 책에 따른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 역시 큰 일이다.

 

다들 죽기 전에 멋진 책 한 권을 내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다.

나는 결코 작가가 되고 싶지 않다.

다만, 인터넷에라도,

나의 '생각'이 올곧은 글들을 좀 올릴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파워 라이터'라고 자위한다.

 

가끔은 페이스 북 같은 곳에도 이런저런 생각을 올린다.

이십 년도 더 전의 제자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저 그런 정도가 나의 라이팅의 수준이면 족하다.

나무에게 미안할 일을,

설치류나 두족류처럼 하지는 않을 일이고,

설치류나 두족류처럼 해로운 책에 대해서는 언제라도 칼을 들이댈 수 있는

'생각'을 기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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