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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ㅣ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앞의 책 보다,에 비하면 좀 현실적이다.
왜냐하면, 그의 말하기이므로, 대상들은 현실적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같은 50대, 40대가 고도성장기에 살아온 인생에 비하면,
요즘을 살고 있는 청년들은 너무도 천천히 오르는 에스컬레이터의 속도감때문에
오히려 내려가는 것 아닌가 싶을 지경인데,
그런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시의적절하다.
그의 이야기의 대부분은 글쓰기에 대한 것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먹고 나서 느끼는 것이,
세상의 통념은 늘 옳은 것은 아니란 것.
그처럼 쓰는 사람에게는 나이들어 친구가 그리 필요하지도 않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읽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친구가 된다.
이렇게 읽고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글을 잘 쓰는 것은,
어떤 순간에 인간이 고요하게 자기 서재, 아무도 침입해오지 않는 고요한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대면하고 정직하게 쓴 글에는 늘 힘이 있고 매력이 있어요.(121)
기술도 기법도 아니고, 삶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대면해야 글이 나온단다.
그렇다. 생활 속에서 나온 글이라야 다른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
청소년들이 쓸 수 있는 멋진 글은 부모나 선생에게 선뜻 보여줄 수 없는 글들이라고 생각해요.
부모, 학교, 성적인 억압 등을 토로하고 폭로하는 글쓰기의 기쁨.(137)
도덕이란 이름으로 이런 것들을 가지치기하는 어른들이 듣는다면 놀랄 일이다.
이번에 다시 보니까
오디세우스가 끝없이 기억과 싸우고 있더라고요.
내가 과거에 누구였나를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자기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미래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142)
이런 지점에서 가장 기대되는 책은 그의 '읽다'이다.
그가 '보는' 것은 나도 본 것이고,
그가 '말하는' 것은 '작가란 무엇인가'나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에서도 말한 것이다.
그가 '읽은' 것을 보고 싶다.
그래서 같은 책이라도 '다시' 읽게 되는 고전들에서 그가 읽어내는 삶의 단면이라든지,
책과 삶의 나란함과 상호 간섭 같은 지점을
읽어내는 재미를 나누고 싶은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모든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현실을 '듣고' 적는다고 이야기한다.
듣기는 윤리이기 이전에 작가가 직면한 운명입니다.
자신을 서서히 해체하면서 엄청난 노동을 투입하여 한 세계를 만드는데,
지나고 보면 그것이 결국 받아적기 혹은 '듣기'였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을 통해 뭘 말하려고 했느냐는 질문은 무의미합니다.
말하려고 한 무언가가 아마 있었겠지만,
쓰는 동안 잊어버렸다,
가 정답일 겁니다.(174)
젊은 이들이 좋아한다는 작가, 김영하.
그의 작가론, 작품론, 소설론에 대한 이야기는 제법 재미있다.
술술 읽힌다.
그러나 역시, 그의 '읽다'를 기다리게 된다.
나는 작가쪽보다는 독자쪽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