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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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꽃의 나라'를 여러 번 읽었다.

그 이야기는 성장소설이면서도, 광주 학살의 보고서였다.

그의 '홍합'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수필집을 읽노라니, 그런 것들이 다 취재가 아니라 삶의 기록이었다는 것을 알겠다.

생생한 형상화가 가능했던 것이 온몸으로 밀고나온 것이었기 때문이었음을...

 

이 책은 참 재미있다.

시답잖은 수필집들은 그저 그런 이야기를 풀어내기 십상인데,

예를 들면 자연이 아름답다거나, 환경이 중요하다거나,

삶의 작은 일들에서 어떤 것을 생각해 냈다거나...

한창훈의 이야기에는 반드시 아주 '개성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개성적인 인물은 비극적일 경우조차도 개그 드립 작렬이다.

 

좀 우울한 날이라면, 이 책을 들고 비내리는 창가에서

향긋한 커피 한 잔 들고 앉아 읽기를 권한다.

커피 사레 들리지 않도록 조심할 것도...

 

그의 인물들이 개성적이지만 또한 '전형적'인 민중의 삶을 보여준다.

거기다가 남도의 진득한 <변방의 말과 노래>를 담아 낸다.

그러니 그 인물이 개성적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거문도.

절해 고도에서 나서 지금도 거기 산다는 작가.

 

몸 한 조각을 잘라내 정신의 진물로 반죽한 다음 빚어놓은 느낌 -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적막을 맞대면한다는 것은 혹독한 짓이었다.

하여, 저곳 정리해 다시 육지로 나간 다음,

간혹 이곳을 찾아와도 발보아지지 않았다.(104)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때는 저린 팔을 주무르는 마음이 된다.

 

당신이 두고온 것들중 무엇이 가장 그리운가고 몽골에서 유학온 학생에게 물었더니

그녀는 바람이라고 대답했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독한 바람. 극도로 추웠던 바람.

너무너무 지겨웠던 그게 가장 그리운 거란다.

허락한다면 고향에서 한 사흘 그 바람만 맞다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이해가 됐다.(109)

 

그 고독하고 사나운 파도 소리로 가득했던 자신의 과거를

마치 무진 기행의 무진처럼, 안개로 가득했던 시절을 돌아보게 하는 고향을 그는 이해한다.

 

한창훈의 문학 수업 이야기는 무대뽀다.

그러다 백석의 '여승'을 맞닥뜨리고 깨닫는다.

 

내가 선생께 배운 것은 글 쓰는 기교가 아니라 삶을 궁리하는 방법이었다.

"예전의 큰 작가들 글을 한번 찾아 읽어보고

하늘의 뜻과 맞닿아 있는 작가의 뜻이 무엇인지 한 일연 고민 좀 해봐."(164)

 

결국 김수영의 말처럼,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글이 아니고서는 글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이다.

박남준에 대해 쓸 때는 애정이 지나치다 못해 철철 넘친다.

 

박남준 시인을 두고 사람들이 칭하기를

풀잎 같고 이슬 같고 바람 같고 수선화 같고

처마끝 빗물 같고 나비 같고 눈물방울 같은 사람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니까 오십 넘도록 홀로 스님처럼 지내며 시와 음악과 새소리, 매화를 동거인으로 두고 살고 있습니다.

삶은 정갈하고 성품은 깨끗하고 몸은 아담하고 버릇은 단순하고

눈매는 깊고 손속은 성실한데다가 시서에 능하고 음주는 탁월하고 가무는 빛나는 가인입죠.(233)

 

안현미를 극구 칭찬하는 대목도 구성지다.

 

슬픔이 많으면 일찌감치 죽어버리거나

살아남았다면 웃는 거 말고는 할 게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듣고 있으면 기분 좋은 데 듣고 나면 공연히 쓸쓸해지는 그녀의 웃음소리는 이를테면

웃음 직전의 침묵, 웃음 직후의 허전함, 그리고 웃지 않을 때의 고단함,

그것들의 총화였다.(256)

 

유용주, 이정록 등속의 술꾼들 이야기는 많이 들었던 것이고,

새롭달 것도 없는데, 그이의 안현미 사랑은 급기야 나를 안현미로 이끌었다.

그의 시집을 주문한다.

 

삶의 비애를 적확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닐 테지만 나를 보아 너무 서둘지 않아도 나쁘진 않았을 텐데

어리고 영민한 여자가 현모양처가 되기란 동서남북 이 천지간에서 얼마나 얼얼해야 하는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고 싶었던 행복을 얼음처럼 입에 물고 너도 곧 엄마가 되겠구나 무구하게 당도할 누군가의 기원이 되겠구나

여러 계절이 흘렀으나 나는 오늘도 여러 개의 얼음을 사용했고 아무도 몰래 여러 개의 울음을 얼렸지만 그 안에

국화 꽃잎을 넣었더니 하루 종일 이마 위에 국화향이 가득하였다 그 향을 써 보낸다 그저 얼얼하다 삶이

(내간체, 부분)

 

여성의 삶은 참 초라하면서도 고단했다.

힘겨우면서도 어쩔 수 없었고 슬프면서도 행복했다.

그것을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고 얼얼하다고 쓴 안현미는

그야말로 자신의 삶을 글로 드러낸 '온몸으로 밀고나간 시인'격인 셈인가?

 

강 옆에서 물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삐아졸라를 들아며 나는 내가 다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

(아버지는 이발사였고 어머니는 재봉사이자 미용사였다, 부분)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것만으로도 책값은 충분한데, 안현미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책깨나 읽는다던 소리는 이제 말아야겠다.

안현미를 모르면서 문학을 가르쳤다고...

뭐, 워낙 시인도 많으니 그렇다 치고... 읽고 볼 일이다.

 

 

고칠 곳...

151. 내 마음은 호수요,식의 직유를 배운 모양이다... 비유라고 하든지 은유라고 해야한다. 직유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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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0 23: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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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0 12: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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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0 13: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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