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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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희진의 '리뷰'들을 모은 책이다.

여느 책벌레들의 책을 갈무리하는 '책'이라는 카테고리로 넣지 않고,

이 책을 '사회'에 넣는 것은, 이 책은 여느 리뷰와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 '책벌레'들의 리뷰집은 책에 대한 소개, 자신의 느낌을 적는데 그친다.

그러나, 정희진은 거기에 뭔가를 넣어서, 확 자신만의 맛을 낸다.

아마 자신만의 <미원 味元>이라도 듬뿍 치는 모양이다.

 

마지막에서 자신의 <아지노 모토 味元>의 비법을 말해준다.

그것은 바로 <생각하기>다.

 

좋은 독후감의 전제는 일단 '다르게 읽기'다.

단언컨대 모든 사람이 알만한 진부한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독후감은 책에 관한 것이 아니라

책과 읽기의 상호작용이다.(299)

 

도대체 이 좋은 책의 리뷰를 어찌 쓰나 하고 책을 덮는데,

뒤편 책날개에 <정희진처럼 쓰기(근간)>이 눈길을 끈다.

이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정희진의 읽기는 <생각하기>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물론 재미로 읽는 책들도 많음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만,

그가 몰두해서 읽는 책들로 말하자면, <삶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하다.

 

정희진의 글을 읽고 '이 여자 밥맛일세, 재수없어~'하고 여기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특히 폼 좀 잡고 교양인인 체 하는 사람들이 말이다.

하긴, 그런 사람들은 이런 책을 읽지 않으려나?

 

며칠 전 베트남에서 온 따이한 성폭행 피해자들의 행사가 있었다.

그 앞에서 뻔뻔스럽게도 군복을 입고 난동을 부린 인사들도 있었다.

부끄럽다.

죄스럽고 미안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평지가 아니다.

한국은 온갖 울퉁불퉁 뒤집어지고 기울어진 공간이다.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입된 생각을 <상식>이자 <교양>이라 암기하며 살아왔다.

 

한나라당 3, 무소속 1...

어제 재보선 결과다...

딱 이만큼이 한국의 오늘날 정치현실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서도 우익(이란 이름을 뒤집어 쓴 권력)은 저 베트남에서 온 분들에게 보낸 시선을 보낸다.

여기서는 자기들과 다른 것은 인정받지 못한다.

감히 동성애나, 성매매 금지 폐지 등을 말한다면 패륜이라는 둥 방방뜰 것이다.

 

정희진의 글들은 재수없다.

아마도 이런 글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읽으면 참 짜증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아마 성경을 읽으면... 예수에게도 재수없다고 하고, 짜증내지 않을까?

그런 이들은 아마 교회는 가지만, 성경 강독은 하지만, 예수의 뜻은 전혀 모르고 올는지 모른다.

 

한국은 그야말로 비탈진 축구장이다.

낮은 편에 선 팀은 늘 <페어플레이>의 강압 앞에서 주눅든다.

높은 편에 선 팀은 언제나 우아하게 신사적 경기를 펼치고 압도적으로 승리한다.

 

분노, 고통, 복수에 비해 용서, 화해, 평화는 우월한 가치로 간주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암묵적으로든 노골적으로든

용서를 강요하는 사회다.(44)

 

영화 '밀양'의 원작 '벌레이야기'의 리뷰에 나오는 구절이다.

작금의 한국 현실을 바라보면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높은 편에 선 팀은 언제나 <평화적 시위>를 주장하며, 분노에 찬 목소리를 좀 교양있게 내라고 강요한다.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 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기대 높이가 자라는 쪽으로 커다란 돌덩이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하여

내 외롬 짓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 놓습니다(고정희, 사랑법 첫째, 92)

 

외롭던 시인 고정희의 시를 입으로 굴리는 그.

사랑에 대하여서도 그의 생각은 자유분방하면서도 폭넓게 바라보는 시야를 보여준다.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다만 가장 추잡한 남자는 헤어지면서 좋은 인상으로 기억되고 싶어 희망고문을 지속하는 자,

두번 째 저질 남자는 거절 못(안)하고 질질 끌면서 여자의 감성과 자원을 착취하는 부류.

이런 분들은 코끼리에게 밟혀 죽어야 한다.(저자의 표현,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113)

 

한용운 시를 읽으면서 사랑에 대해 곱씹는다.

 

모든 예술은 남겨진 자의 고통에서 시작된다.

떠난 자는 말이 없다.

대단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부재하니까 침묵인 것이다.

반면 남겨진 자의 눈물은 마를 길이 없다.

그리움, 슬픔, 체념, 자책, 희망, 저주... 그래서 예술은 고통받는 이의 필수품이요, 특권이다.(119)

 

평범한 글을 써도 절묘한 대구와 역설을 뒤섞는 정희진의 글쓰기가 점점 궁금해진다.

 

성판매여성 비범죄화 추진연합의 소속단체라는 문구가 탁월한 개그다.

 

곰팡이와 싸우는 세입자 연대, 남성연대반대하는 남성모임, 도우미안쓰는노래방협회,

딸자식이 뭘하고돌아다녀도지지할학부모회, 목소리작고아름다운꼴페미연대,

목소리크고못생긴꼴페미연대, 명절날엄마의파업을꿈꾸는안돕는딸년모임,

반성매매인권행동, 반야근칼퇴근직장문화확립추진위원회, 서로비난안하는부모자식연합,

성구매할생각없는한줌의남성모임, 성욕의총량을측정계량중인연구자(개인)

시급만오천원시대를꿈꾸는알바인연합, 애국국민이기싫은국민연합,

여가부하는일별로맘에안드는여성주의자모임, 한국에와서여성우월주의로변질된페미니즘연구회(131)

 

곰곰 읽어보면,

생각해야할 것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성은 결핍을 결핍한 완전한 존재다.

자기 위치를 알기 어렵다.

물이 흐르는 것을 어찌 아는가. 포말이 일 때다.

큰 물줄기라는 것을 어찌 아는가. 포말이 클 때다.

그나마 대안은 24시간 긴장, 타인 존중, 말 줄이고 경청, 자기 몸을 작게 하기, 중단없는 주제 파악, 나부터...(140)

 

그의 읽기는 중단없는 주제 파악에서 시작된 글쓰기가 된다.

한국의 기울어진 문화는 모든 문제에서 생각을 유발할 수 있으니, 그에게는 한국이 기회의 땅인 셈일까?

그가 공약을 걸고싶은 말은 멋지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이 적다.

 

치열하게 생각하는 인간이 대우받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150)

 

가진자들은 적당한 지식인들을 좋아한다.

대충 넘어가는 자들을 좋아한다.

조금 나눠주면 흔쾌히 콜~ 외치는 멍청이들을 좋아한다.

치열하게 생각하는 인간은,

예수처럼... 언제나 비참한 삶을 살다 갔다.

 

박정희에 대한 그의 판단.

 

공은 경제 성장, 과는 인권 탄압이라는데...

무슨 말인지... 고문은 정권의 흠이 아니라, 통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151)

 

그렇군. 그의 딸도 똑같다.

기울어진 국가, 한국의 가진자들(지배 규범)

 

한국 사회는 지배 규범을 객관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자기 입장이 있는 집단은 편협하다고 낙인찍히기 쉽다.

약자의 대응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객관을 향한 욕망을 접고 자기 입장을 더 깊이있게 전개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당신 입장은 뭐냐."고 질문하는 것,

다른 하나는 그들 뜻대로 균형 감각과 중도의 길을 모색하는 것.

이건 불가능.

균형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언어의 세계에 중립이란 없다.

객관성은 권력자의 주관성이고, 익명성은 가장 무서운 서명이고,

객관성은 가장 강력한 편파성이므로...(203)

 

그의 글이 참 독자를 불안하고 불편하게 하는 것은 그것이다.

중립에 서지 못하게 만드는 것.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 불편한 선배 때문에 늘 마음 불편했던 바로 그것.

 

배제되지 않기 위해, 포함되길 거부한다.(216)

기존 규범을 문제삼지 않고 그 안에서 약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자발적으로 수갑을 채우는 것.(217)

 

한국에서 여성 문제를 다루는 것은

인간해방을 다루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해방의 조건은 배제가 아니라 '독립'이기 때문이다.

독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포함'되는 것은 '자립성'을 말살하는 것이므로...

약자는 빌빌거리며 포함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든지

독립의 고통에 정면으로 맞서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튼튼하게 가지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세상은 이미 골을 넣기 쉬운 윗지방의 선수들이 '기준'을 정하고 '객관'을 가장하고 있으므로,

아랫지방의 선수들은 그 편파성에 대항하여 끊임없이 투쟁하는

<생각>을 기르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런 리뷰들을 기른다.

 

그의 건필과, 다음 책을 기다린다.

 

 

고칠 곳...

80. 익사...의 한자는 溺舍가 아니라 溺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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