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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니모
포리스터 카터 지음, 김옥수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아닌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인간인 것이 슬프고 무서웠다. 개미도 한 종족을 다른 종족이 말살 시키기도 한다지만, 몇 억으로 추산되는 인디언을 몰살시키고도 전혀 눈껌쩍하지 않는 스페인과 영국인들, 지금의 미국과 멕시코의 피의 역사라는 것이 치떨리고 무섭다.
어떤 전쟁의 기록에서도 나오지 않는 머릿가죽 벗기기, 여성 노예 임신시켜 팔아 먹기... 이런 것들이 횡행한 백년 전의 미 대륙 이야기를 읽으면서, 과연 역사란 진보하는 것인지... 프로테스탄티즘으로 무장한 개신교도들은 미개인들을 사냥하는 데는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던 것인지... 두려울 따름이다.
이십 년 전, 대학생이 된 나는 처음엔 대자보도 똑바로 쳐다보고 다니지 못하는 모범생이었다. 대학을 객지로 간 내게 모든 아는 사람들은 데모의 옷자락과 만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해 5월, 나는 매일 작열하는 최루탄과 교문 앞산의 하이얀 아카시아 내음을 함께 맡으며 눈물을 흘렸다. 광주의 죽음은 여리던 내 마음에 피눈물을 나게 했던 거다.
이 책도 피로 얼룩진 어메리컨 인디언들의 멸족사가 들어 있는 슬픈 책이다. 그렇지만, 최후의 전사 제로니모가 신출귀몰 전쟁주술사로서 활동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 한편 재미 있기도 하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포리스트 카터가 제로니모의 역사적 실증을 거쳐가며 형상화한 마지막 전사, 제로니모의 영혼은 따뜻하다기 보다는 참혹하고 눈물겹다.
어렸을 때, 일요일 오후면 <서부소년 차돌이>(원제 : 황야의 소년 이사무) 란 만화 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초창기 작품이라고 하는데, 동부에 살던 원주민들을 점차 서부로 내몰고, 서부를 개척한답시고 깝치던 양키들이 원주민들을 학살하던 그 시절, 미국 서부로 이주한 일본인 아버지(유도 유단자)와 인디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차돌이는 일찍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고 자라면서 무자비한 인디언들과 악당들을 처치하는 영화였다.
그 만화 영화에서 차돌이는 멍청하고 교활하고 잔인한 인디언들을 가볍게 제압하는데... 이 일본 만화 영화가 우리 만화가 아니어서 난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그 때 이 영화의 주제가로 불리던 노래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이렇게 생겨 먹었다.
와, 햇님아들 우리들의 차돌이 /아아, 햇님아들 우리들의 차돌이
씩씩하고 슬기롭고 마음착한 차돌이 /사나운 바람 몰아쳐도
두려움없이 뚫고 나가서 /나쁜무리 물리치는 정의의 소년
와, 햇님아들 우리들의 차돌이 /아아 햇님아들 우리들의 차돌이
넓은 들에서 잘도 싸우는 /아아아 어린용사
아.... 이 노래는 맹호부대 노래를 용감하게 부르며 군함에서 손수건을 힘차게 흔들고 떠나, 뜨거운 밀림, 베트남으로 돌진했던 무식해서 용감했던 따이한들을 떠오르게 하고,
열사의 사막으로 박터지는 경쟁을 뚫고 지원해서 자이툰 부대로 달려간, 21세기 그 추악한 전투의 선봉이 된 신세대 전사들을 떠오르게 한다.
씩씩하고, 슬기롭고, 마음착하고, 잘도 싸우는 우리의 용사는 <절대 선>이고,
한 마디로 나쁜 무리로 규정할 수 있는 어메리컨 원주민과 베트콩과 이라크 국민들은 <악의 축>이 되어버린 흑백 논리의 아전 인수격 살생에 잘도 싸우는 우리의 어린 용사들이 눈물겹게 슬프고...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