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 EBS <인문학 특강> 최진석 교수의 노자 강의
최진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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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생과 89년생 연예인들의 사소한 말다툼이 생중계되고,

거기 잇따른 패러디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대부분 직장 상사가

어디서 반마리니?(이건 치킨 반마리로 패러디된 게 더 웃긴다.)

부장님, 저 맘에 안 들죠... 류로 흐르거나,

군대에서 병장님, 저 맘에 안 들죠... 등으로 해학을 분출해 냈다.

 

이태임이나 예원이 얼마나 인지도 높은 연예인인지는 모르겠으나(내가 모르는 걸로 보아 아주 출세한 부류는 아님. ㅋ)

그들의 대화야 사소한 사생활이고,

세 살 차이면 뭐 얼마나 선후배도 아니지만,

그것을 들은 한국인들은 자기 현실에서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하관계로 인식했을 수 있다.

그러니 그런 패러디가 해학을 넘어 통쾌함으로 지속되는 효과를 유발했을 게다.

 

최진석의 '노자 인문학'은 여느 '노자 강의'와 다르다.

그래서 그의 '노자 인문학'의 가치가 돋보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강의'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듯 하다.

강의와 책은 다르다.

 

우선 강의는 강의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고,

어조의 강세나 액센트, 동작 같은 것이 청자를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책에서는 챕터 하나에 어떤 비중의 이야기를 담을 것인지를 균질하게 분배하지 않으면

독자는 쉬 피로해지기 쉽다.

이 책은 초반에 너무 지루한 이야기를 많이 늘어놓은 감이 든다.

물론 강의와 책의 간격을 고려하지 못한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느 노자 강의는 '이전의 주석', 곧 '왕필'이나 '도올'이나 등등을 인용해가면서

노자의 한문 구절을 풀이하고, 그것의 의미를 현대인의 삶과 연결짓는 일에 몰두하는 식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의 장점은,

노자라는 책이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다소 장황할 정도로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가장 높이 여겨지는 '공자'의 생각과 노자를 대비하면서, 노자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

노자의 구절 풀이보다는,

노자의 핵심 구절을 통하여 현대인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려는 식이다.

 

전체적으로 작가의 의견이 생각하는 방향은 아주 좋다.

노자라는 책을 '양생'을 돕는 웰빙-자기계발서로 전락시키지도 않았고,

무위자연...의 단순한 '명사'로 한정시키지도 않았다.

노자의 핵심 구절인 '도'를 논어의 첫 글자 '학'과 대비시켜

공자의 사상이 '본질주의적'이고 '핵심적 과제'에 몰입하는데 상반되는 사상으로서 노자의 입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도'는 주어진 본질의 목적어로서의 삶보다는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동사의 형식임을 놓치지 않는다.

 

'반말'한다고 짜증내고 '눈깔'을 깔라고 윽박지르는 웃사람이나,

'언니, 저 맘에 안 들죠' 하고 웃사람을 무시하는 아랫사람이나,

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현실에서 숱하게 투영되는 삶의 고정된 틀들을 느끼는 네티즌들이나,

고참, 선배, 상사는 '이러이러하다'는 '본질주의적' 사고에 대하 비판과 풍자를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 '노자'라는 캐릭터가, 텍스트가 어떻게 작용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는 강의를 책으로 접하는 일은 즐겁다.

그러나 책을 만들 때, 열 개의 챕터가 좀더 명확한 주제를 드러내며 달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높음은 낮음을 기초로 한다.

현재 가진 고귀함이 낮은것, 천한것을 기초로 이뤄졌음을 끊임없이 자각하고자 합니다.

통치를 잘하고 싶다면 이 세계가 대립면의 긴장으로 서 있다는 점,

반대되는 것들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을 철저히 자각하라고 주문합니다.(204)

 

이 책은 노자를 통하여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지 않는다.

통치 철학으로 시작된 노자임을 명확히 하고 있고,

생활 속에서도 '위 아래'의 관계를 생각할 때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를 사고하게 한다.

 

본질론자나 실체론자가 말하는 '관계'란 실체끼리의 관계를 말하는 것.

반면 불교나 주역, 노자의 관계는,

존재하는 '그것 자체'가 관계로 되어있음을 뜻해요.(157)

 

아랫사람이 '반말'을 하면

그가 나와의 관계를 무시하는 듯 느껴지고,

윗사람이 잔소리하면 그가 나를 '맘에 안 들어' 하는 것으로 여기는 세상.

그것이 우리 사는 세상이다.

아랫사람과 윗사람이 모두 혼재하는 곳이 세상인데, 불필요할 정도로 성리학적 질서는 수직 질서를 강조했던 듯.

 

우리는 지나치게 '보고' '지혜롭'고자 하고, '뛰어나'고자 한다.

그래서 지나치게, 스스로를 자학한다.

그래서 노자에서는 지혜로운자를 높이지도 말고, <눈을 위하지 말고 배를 위하라>고 했다.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해 주면, 많은 부분이 저절로 다스려지지라는 것은,

춘추전국 시대 당시만의 과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무위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치부하는데,

노자의 무위는 수단이거나 과정 혹은 태도의 방식입니다.

그런 태도를 통해서 도달하고 싶은 곳이 분명하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이루어진 지경, 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는 지경'이라 말합니다.(254)

 

그렇다면 현대 한국에 '노자'의 가치는?

 

노자가 한국의 높은 자살률을 본다면

이곳은 가치 기준이 대단히 분명한 사회로구나.

가치 기준이 획일화되어 있구나. 할 것이다.

사람의 가치와 이유가 스스로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것은,

판단 기준이 자신이 아닌 자신의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284)

 

이 책은 별로 책을 많이 접하지 않은 직장인이 출퇴근길에 가볍게 읽도록 서술되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젊은이들에게 친절하게 쓰여지지 않은 점이 아쉽다.

나처럼 인생의 중반을 넘어선 사람이 느릿느릿 읽기에는 제법이지만,

노자를 읽어야 할 사람은, 사실 제 인생을 다스리는 고민으로 충만한 젊은 넋들이 아닐까?

작가가 좀더 정진하여 고딩이나 대딩 수준에 맞는 책을 써주면 어떨까?

 

신의 시대가 아닌 '사람의 시대'임을 공언한 '공자'와 '노자'는 선각자였다.

그런 선각자들의 외침을 듣는 우리는,

말을 듣고 귀를 열고,

진실을 보고 눈을 열어야 할 일인데...

눈을 감고도 느끼는 황홀을 겪어야 할 일인데...

 

무에서 유가 나온다는 기존의 입장을 '무와 유'로 병치시키는 등

다른 책들과는 상당히 새로운 입장의 풀이를 하는 작가의

사유의 깊이를 곱씹을 만한 좋은 책이다.

 

진실을 본다는 것은,

말하는 것과도 다르고, 읽는 것과도 다르다.

학생운동을 했던 혁명가들도

기실 자신의 삶을 혁명하지 못하고 허덕거림과 같다.

 

입맞춤에서 진실을 찾는

이런 시가 '시론'을 대신하듯

노자의 81장을 대신하는 것은,

장황한 해설서가 아니라

핵심을 짚어주는 안내서일 수 있듯...

최진석의 용맹정진과 건필을 빈다.

 

 

 

詩論, 입맞춤 / 이화은

 

여자는 키스할 때마다 그것이 이 生의 마지막 입맞춤인 듯

눈을 꼭 감고, 애인의 입 속으로 죽음처럼 미끄러져 들어간다는데

 

남자는 군데군데 눈을 떠

속눈썹의 떨림이며 흘러내린 머리카락이며

풍경의 변화와 춤추는 체온의 곡선까지 꼼꼼히 체크한다고 하니

 

누가 시인일까

 

독자는 여자 편에 설 것이고

시인은 당연히 남자 편에 설 것이다

몰입의 바닥에는 시가 없다

불타는 장작을 뒤집어 불길의 이면을 읽어야 하는 남자여

불쌍한 시인이여

 

키스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은 시인이거든

그대 당장 독자의 자리로 옮겨 앉아야 하리

그러나 시인의 발바닥은 완전 연소의 재 한 줌도 함부로 밟지 않는다

 

- 《현대시학》2008.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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