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7첩 반상 - 인류 최고 스승 7명이 말하는 삶의 맛
성소은 지음 / 판미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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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이라고 하면 흔히 종교를 떠올리기 쉬운데,

'4서3경'을 생각해 보면 굳이 종교라고 확정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

이 책에는 양반가 7첩반상에 빗대어 일곱 가지 경전을 해설하고 있다.

 

그 해설은 깊이가 적당하여 초심자도 핵심에 쉽사리 다다를 수 있을 정도로 잘 쓰여져 있다.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선생과 함께한 경전읽기 모임의 결과라 하니

경전 읽기에 낯설던 사람들에게도 좋은 지침이 될 것 같다.

 

강유원이 '고전'을 일컬어 '나 요즘 일리아드를 다시 읽고 있어.' 이렇게 말하면 뽀대가 난다고 했던가.

그렇게 치자면 '경전'은 매일 읽고 또 읽어 마음을 다스리는 그런 글들이 아닌가 싶다.

나는 책상 위에 임제 스님의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든지,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 같은 것들을

몇 자 끄적여 붙여두곤 하는데,

가끔 '반야심경'을 사경하는 것 등으로 마음의 번잡함을 다스리려 이용한다.

 

이 책의 경전들 역시 부담없이,

마음을 다스리는 도구들로 접하면 좋겠다.

로마의 치하에서 벗어나는 유대인들의 이야기인 '성경'이나,

봉건의 계급사회에서 벗어나려는 조선의 이야기 '동경대전' 같은 것들은 시대를 벗어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노자의 도덕경도 전쟁터의 지도자가 가져야할 정치 언설일 게고,

중용 역시 혼란통 안에서 군자가 가져야할 삶의 자세를 다루는 것이다.

 

경전들은 결국 전쟁터와 같은 삶의 공간에서,

인간의 고뇌를 해소하기 위한 지난한 투쟁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공통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經을 鏡삼아 輕하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경전을 거울삼아 삶을 가볍게 해보자는 의도다.

주제는 무겁지만 책은 의외로 가볍다.

 

성경에서 왜 하필이면 '도마복음'인지는, 오강남의 '또다른 예수'를 읽어봐야 알 것이다.

 

나를 추종하지 말고 나처럼 되라.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의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아를 아는 것이 곧 하느님을 아는 것이며,

자아와 신성은 동일하다.(24)

 

불교 경전을 읽는 듯 하다.

 

'나그네가 되십시오.'

나그나게 되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장소를 옮겨 다니는 떠돌이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이 세상에 안주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습적이고 관습적인 사고에 빠져있지 말고

새로운 차원의 열림과 깨달음을 향해 길을 떠나라는 말씀이다.(29)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도 자기를 모르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43)

 

여느 성경과는 다르게 스스로 깨어남을 가르치고,

예수를 따라 살지 말고, 니 스스로 예수임을 알아라~! 마치 불교의 한마디와 상통하는 글이다.

그러니 교회에서는 싫어할 수도 있겠다.

 

삶의 마디마디에서 천명인 性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현실은 중용으로 발현할 것이다.

큰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나 홀로 먼저 조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신독이다.(57)

 

돌~ 선생의 중용도 읽었지만, 또 기억에서 가물가물한데,

이 책을 읽으면서 천명인 성을 '도'라 하고 그 길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게 된다.

 

변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 지속되는 사랑이 있을 뿐.(58)

존재한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이고,

변화한다는 것은 성숙한다는 것이며,

성숙해진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창조한다는 것.(72)

 

그렇다. 세상 만물은 변하는 것이 진리다.

그래서 인간의 자세, 태도가 문제시 되는 것이다. 신독만이 중용을 이룰 수 있다.

인간은 늘 경전을 읽으며 지속시키기 위하여 수시로 자신의 변화율을 측정해 내야 한다.

계속 움직이지 않으면 줄광대는 줄에서 떨어진다.

 

힘 중에서 가장 센 힘이 '홀로 있을 수 있는 힘'이다.

홀로 있는 시간이 자유롭고 풍성한 이는 남도 자유롭게 하고 풍성하게 한다.

혼자를 견디지 못하고 이내 헛헛해져 술친구를 찾고, 성급하게 결혼해 결국 삐걱대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사이버 세상에서 존재아닌존재로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외로움을 면하고자 하는 일들이 오히려 나를 잃고, 시간을 잃고 덩달아 삶의 생명력까지 고갈시켜

낭패가 된다면 차라리 혼자 있는 것에 비할 바 아니다.(82)

 

그래서 숫타니파타에서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이 그토록 많이 나온다.

 

집에 불이 난 것을 물로 꺼 버리듯이,

지혜로운 사람들은 걱정이 생기면 이내 지워버린다.

마치 바람에 솜털을 날려 버리듯이.(95)

 

인간에게 '걱정'은 날마다 생기지 않는가?

걱정 인형에게 맡기고 편안하게 살 수는 없다.

솜털을 바람에 날려버리듯, 살려면, 경전을 읽고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오직 모를 뿐.(104)

 

경전을 이해하기는 참 쉽다.

허나, 마음에 끄달려 사는 중생에게 그것을 실천하고 마음을 툭, 털어버리는 일은 참 어렵다.

 

기타에서 '요가'라는 말의 풀이가 읽을만 하다.

 

'요가'라는 말은

신에게 닿는 것, 우주를 주관하는 힘에 자신을 잡아 매는 것, 절대자와 인간의 접촉을 의미한다.

요가란 더욱 심원한 본체와 하나가 되려는 인간의 실천적 노력이다.(172)

 

보통 요가를 기묘한 동작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그것은 모두 인간의 본질에 다가서기 위한 실천이라는 것이다.

 

요가의 힘으로 모든 행위를 놓아버린 이,

지혜로써 의심을 끊어버린 이,

참나에 머무르는 이, 그는 어떤 행위도 속박될 수가 없다.

오 부를 차지하는 이여.(178)

 

명상은 특별한 날에 먹는 외식이 아니다.

정신을 맑게 하고 마음을 살찌우기 위해 매일 먹어야 하는 정신의 밥이다.(189)

 

경전이란 것이 그런 것이다.

가끔 기분전환으로 먹는 외식처럼 섭취할 것이 아니라,

매일 먹는 정신의 밥.

 

형체도 모양도 없는 그 마음을 닦아야만

한울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준 은덕을 알 수 있는 것이요,

한울님 덕을 밝히는 것이 바로 도이다.(222)

 

동경대전은 동학의 경전이다.

조선의 천민, 여성들에게 동학은 그대로 예수였다.

마음을 닦으면 스스로가 한울님이 되는 지경을 한번 경험한 자에게 두려울 것은 없었다.

그래서 절두산에서 머리잘리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무릎 꿇고 비루하게 천민으로 사느니 한울님의 자녀가 되어,

스스로 한울님이 되어 사는 것이 꿈이었을지니...

 

차를 마실 때는,

천천히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마치 차가 온 지구가 될고 있는 축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천천히 한결같은 속도로 미래를 향해 서두름 없이 마시기를 바랍니다.

실제적인 순간을 사십시오.

그런 실제적인 순간만이 생명입니다.(225, 틱 낫한)

 

살아 숨쉰다고 모두 생명이 숨쉬는 것은 아니라는 말은 두렵다.

실제적인 순간만이 생명이라는 말에서,

터무니없이 불필요한 속도를 내는 스스로를 돌아본다.

 

 

이 책은 제목이 참 맛깔스럽게 잘 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한번 읽은 지금은, 생각이 좀 다르다.

어차피 잘 차린 칠첩 반상이랬자,

그 하나하나는 반찬이고, 한끼 먹으면 후딱 치워버릴 밥상이다.

여기 소개하는 경전들은 칠첩 반상 류가 아니다.

매일 꼭꼭 씹어 먹으며 음미해야할 영혼의 밥상이라 해야 더 비근한 예가 아닐까 싶다.

 

 

19. 오심즉여심의 한자를 '나 오'가 아닌 '나라 오 吳'로 쓰는 곳이 여러 군데다. 204, 205쪽에서도 틀려있다. 205쪽의 제목에서는 또 맞게 적고 있고... 편집자여, 한자 공부  하시라... 125쪽의 오상아 에서도 마찬가지 실수를...

 

145.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의 '즉'자는 '卽 곧 즉'이다. '則'이 아니다. '則'은 접속사로 쓰일 때 then, thus 이런 이어짐의 시간 관계를 나타내는 글자이고, 卽은 곧바로, 즉시...를 나타내는 한자다. 무릇 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다.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님을 보면 <바로> 여래를 만난다...는 의미지, 이리하여... 여래를 만난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한자는 중요한 한자이므로 '경전'이란 책에서 틀리면 안 된다. 그리고 같은 페이지의 '아상'과 '인상'에서 '인상'을 '나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으로 풀고 있는데, '아상'과 상반된 '타인'을 의미하는 '남'이라는 의미가 더 큰 것이다. 나는 소중하고 남은 가벼이 여기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는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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