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 동백 - 이제하 그림 산문집
이제하 지음 / 이야기가있는집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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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하면 영랑이고,

동백, 하면 춘희 아닐까?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지둘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이런 처절한 기다림의 마음을,

기다림의 마음은

'사랑'이라는 마음을 직접 표현하는 법이 없던 우리 말법에

에둘러 가는 '정을 둔' 사람에게 표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니...

 

가슴에 동백을 단 처녀, 동백아가씨(椿姬)의 라 트라비아타... 만큼이나

모란과 동백은 참으로 화려하면서도 처절한 꽃말들인데,

이 책은... 좀 산만한 산문집이다.

 

이제하가 문지사의 캐리커처를 그리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을 그린 것을 보면, 예술에 대한 지향이 참 남다른 이다.

H 문예지에 '유신'과 관련된 사건으로 불쾌해하는 걸로 보면 자유로운 영혼이다.

 

화사한 느낌이 있지만 기묘한 허스키.

야행성 체질로 그녀가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은데,

사실이라면 그 때문에 그런 톤이 착상되었을지도...

그런 불가사의한 음색이 전하는 그녀의 제비꽃에는 모든 남성적인 것을 제외시켜 버리고

그야말로 여자가 여자를 향해서만 나직이 읊조리는 의초롭고 고독한 그 무엇이 서려있다.

고집스럽지도 격정적이지도 않고

풀잎처럼 연약하면서도 어딘가 단호한 그런 맛이다.

누가 보아주지 않더라도 홀로 피어 홀로 지는 한 송이 들꽃.

굳이 설명하자면 그쯤의 단호함이거나 당당함일 텐데.

아마도 이런 소슬한 고독감이 이 노래를 쉽사리 잊지 못하게 마들고 있을지도...(145)

 

장필순의 '제비꽃'을 평한 구절인데, 그 묘사가 제법 얻는 바가 있다.

 

 

갑갑한 도시에서

생명력을 추구하는 그는 말 그림을 즐겨 그린다.

나는 말띠이기도 하지만 말의 생동감은 그리고 싶은 대상일 법도 하다.

 

그중에 나는 '환마'라는 그림이 제일 맘에 든다.

 

 

 

 

 

주방에서 차 끓이는 딸을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내게는 가장 쓰라린 기억 중의 하나 (비애)

 

그의 생각이 글로 옮겨지는 것을 보면

간혹 신기하다. 이런 것들을 글로 옮기는구나 싶은 것이.

그런데 '기억'이라고 하면,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지, 보지 못한 것을 기억이라고 하면... ㅋ 좀 그렇다.

본 기억이 없다는 것이 쓰라린 심정의 하나겠지.

 

예술이고 나발이고... ㅋㅋ

좀 있으면 꽃들도 온통 흐드러질 것 아닌가.

견디자, 제발 견디자, 마음아...

 

얼마나 쉽지 않으랴.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이제 팔순으로 달리는 삶이니

그러니, 견디자, 견디자 할 밖에.

 

의지 박약이고 뭐고

담배는 90프로가 손의 습관 때문이라고 한다.(68)

 

이 구절을 읽으면서

그럴 수도 있으리라 공감했다.

담배를 피우는 일은

손이 담배를 갑에서 꺼내서 입에 물고,

담배의 생연기가 눈을 찌르지 않게 고개를 갸웃한 상태로 라이타나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깨워 연기를 내뿜고,

손가락을 다시 가져가고

우아하게 재를 터는... 일련의 과정이다.

결국 담배를 피우지 못하면 손이 견디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 책에 별표를 높이 줄 수는 없지만,

그의 삶에, 그의 예술에 대한 관점에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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