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2 - 문종에서 연산군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2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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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2권에서는 문종에서 연산군까지를 다룬다.

3권이 선조까지고, 4권이 효종까지라 하니 그 다음은 숙영정조의 시대가 나올 것이고, 이후는 개화기까지 다루어 질 모양이다.

한 여섯 권은 나올 듯 싶다.

 

시도는 신선하지만,

조선의 '그날'이 과연 현대에 조망할 가치가 얼마나 클는지...

이 책에서 패널들이 이야기하듯, 실록은 결국 왕조 사관에 물든

수직 질서의 성리학자들이 편집해낸 승자의 기록일진대,

그 내용에서 얻을 것이 무엇인지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외려, 한국 근현대사의 '그날'을 다룬다면,

뭐, 지금 이 시대에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얼마나 올바른 역사교육이 되랴 싶다.

3.1운동의 그날,

해방의 그날,

남북 분단의 시발이 되던 48년 두 정부의 수립의 그날,

김구가 죽던 그날,

그리고 동족상잔이 시작된 그날,

이승만이 도망가던 그날,

박정희가 총맞던 그날,

전두환이 광주를 짓밟던 그날,

노태우에게 정권을 물려주려다 저항에 부딪친 그날과 6.29의 그날, 그리고 부정선거로 정권을 잡던 그날.

삼풍백화점이, 세월호가, 성수대교가, 서해페리호가, 천안함이 가라앉고 무너지고 붕괴되던 그날,

민주 세력이 군부에 기어들어가던 민자당의 그날,

그리고 최초의 민주 정부가 들어선 그날,

대통령을 탄핵하던 그날...

 

정말 공영방송이라면... 해야할 방송은 너무나도 많다.

눈 감고 조선의 뒷이야기를 씹어대는 패널들을 보노라면... 이 시대의 한계를 느낀다.

그러고 보면, '대통령의 시간'이라는 편집된 자료의 원조가 조선왕조 실록이 아닌가 싶다.

그 책을 읽을 자신은 없으나(혈압이 높은 관계로) 노유진이 읽어주는 것을 들어 보면,

조선의 실록 편찬 체계와 상당히 비슷한 길을 걸어온 것으로 보인다.

 

실록은 기본적으로 사초를 바탕으로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록이 편집된 자료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록된 사초를 전부 싣는 게 아니라 그 중에서 후대에 남길 만한 내용들만 뽑아 쓴다는 거죠. 중종반정 이후에 편찬된 ‘연산군일기’는 아무래도 불리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는 것은 분명할 겁니다. 그래야 반정의 명분이 사니까요. 따라서 연산군의 패륜적인 행위라든가 국고탕진, 사치, 향락 이런 것은 아주 작은 일이라도 넣고, 잘한 내용은 오히려 빠뜨렸을 가능성이 있죠. (207)

 

왕이 후원에서 나인들을 거느리고 종일 희롱하고 놀며 노래하고 춤추었는데, 이날은 곧 폐비 윤씨의 기일이었다. 왕은 또 발가벗고 교합하기를 즐겨 비록 많은 사람이 있는 데서도 피하지 않았다. (연산군일기, 214)

 

원래 패자는 말이 없다.

그래서 의자왕은 있지도 않은 삼천 궁녀와 뒹굴던 비정상적 임금으로

경순왕은 전복닮은 포석정에서 계집질이나 하다가 나라를 말아먹은 맛이 간 임금으로 그렸던 모양이다.

그래도 연산군의 실록은 참으로 하품난다. 굳이 저런 비루한 표현을 써야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계유정난은 ‘편안히할 정(靖)’에 ‘어려울 난(難)’을 씁니다. 난을 편안케 했다... 철저하게 승리자 쪽에서 붙인 용어죠.(43)

 

이렇게 용어 하나도 모두 날조다.

정치적인 난(政亂)이라고 하면 모를까, 어려움을 편안하게 한 것이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된 것이라니, 한심하다.

그런 것을 조선의 기록의 철저함이라고 떠받드는 자들을 보면, 아직도 왕조국가에 사나 싶다.

하긴, 민주 공화국과 한국은행의 이름 아래 '임금, 임금의 스승들, 임금을 위해 싸운 장군, 임금 스스의 엄마'를

초상으로 쓰고 있는 정체 불명의 나라이니 기본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

 

문종은 부치지 못한 편지같은 느낌이에요.

우리 역사에 세종이라는 보름달이 있죠. 문종은 그 보름달이 서서히 기울어진 그믐달의 이미지로 연상됩니다.

그런데 사실은 문종이 세종과 보름달을 같이 만들었단 거죠.(38)

 

이 책이 주는 재미는 이런 것들이다.

우리가 태정태세문단세를 국사 시간에 배울 때,

태조의 업적, 태종과 세종, 세조의 업적은 배워도,

정종과 문종은 그냥 패쓰하기 쉽다. 단종은 뭐 드라마 주인공인 어린이고...

문종을 재조명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문학적 비유를 통하여 강하게 보여주는 기법이 좋다.

 

김종서의 아들과 수양대군의 딸의 사랑?

세조의 눈물?

역사의 승자들이 정사를 꾸밀 때 그들만의 허구를 만들 듯이

패자들 역시 다른 방법으로, 즉 전설 내지는 야담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요.

금계필담의 이야기가 그 대표죠.(70)

 

드라마로도 나온 모양인데, 이렇게 자료를 한번 해석해 주는 것도 매력이다.

이 책에는 수능특강 강사도 등장한다. 족집게 강사.

 

훈구파는 조선 건국에 많은 역할을 했던 사람들인데,

이들의 영향력이 너무 강하다 보니 성종은 고려말 온건파 사대부를 등용합니다.

최초로 사림파를 등용한 것이죠. 성종은 최초의 사림 등용, 별표 다섯 개.(177)

 

역사란 지나간 이야기들이므로 암기할 것도 필요한 법.

그리고 그 강사는 여성이어서 이렇게 여성의 눈으로 해석하는 것도 신선하다.

 

폐비 윤씨는 폐비 당하기 전날 생일이었대요.

그런데 남편이 그날 다른 후궁의 처소에 있으니,

산후우울증이 있는데 그러니 속상했을 거 같아요.(184)

 

남성의 사관으로 쓴 실록에 어찌 산후 우울증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으랴.

특히 조선 중기를 거치면서 여성의 지위는 급전직하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으니,

그것을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의 공고화와 연결짓고,

어우동과 폐비의 케이스를 다루는 것도 재미있다.

 

인수대비가 ‘내훈’을 쓰고 성리학적 이데올로기로 나라를 만들어가던 그때,

어우동처럼 방탕한 여인은 죽음(1480)으로 일벌백계하며,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은 게 1482년.

결국 성리학 이념이 강화되고 여성다운 여성의 기준을 세우는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

둘 다 시범 케이스로 과시적 처벌을 받은 것 같네요.(186)

 

왕조 사회는 무섭다.

말로만 법치지 사실은 그 법의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자 뉴스에 대통령을 처형... 운운하는 개인간 통화를 적발하여 영장을 청구했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왕조 사회의 그림자가 드리운 느낌이 가득했다.

 

아직도 왕조 사회의 그날들은 이어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긴, 한 번도 민중의 힘으로 정부를 수립했던 적 없었으니 그 자유의 소중함을 배우려면

아직도 멀었는지도 모르겠다.

 

 

 

 

 

187. 인순대비 - 인수대비의 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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