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실험 동영상을 보고

눈물이 핑 돈다면,

그 순간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 것,

그것이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닐까?

 

낭만의 시대 이후,

'사랑'이라는 이름은 '청춘 남녀의 그것'으로 범위를 한정하게 되면서,

이 책과 같은 고뇌가 소설화 된다.

바야흐로 '로망'의 시대인 셈.

 

그러나 플라톤 시대의 '사랑'은

세금을 낼 수 있는 '시민'들 사이의 '진실된 마음' 같은 것에 가까운 개념이었고,

오늘 처음 만난 당신이지만 내 '사랑' 인걸요~ 같은 노래 가사는, 자본에 얽매인 연애 개념에 불과하다.

 

사랑을 단어로 잡으려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사랑은 저 아이들 머릿속에서 '거짓말'을 소거한 이후 떠오르는 그 마음.

그런 진실한 것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공지영의 사랑에 대한 천착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그가 여러 번 결혼하고 헤어진 것 역시 그의 '사랑'에 대한 생각과 다르지 않다.

그는 생각하는 대로 살아온 용감한 여성이었던 것이다.

'착한 여자'로 시작하여 지속적으로 사랑을 찾아 헤매는 그에게도

자식에 대한 사랑만은 다른 개념이리라.

 

그이의 이 작품은,

전혀 다른 개념을 한 단어에 모아 쓰는,

그것도 그 스펙트럼이 유사함이나 인접성보다는,

거의 상징에 가까운,

자식에 대한 사랑, 이성에 대한 사랑, 신에 대한 사랑...이라는

동음이의어를 한 범주에 넣고

올바른 것을 고르라는 숙제처럼

불가해보이는 주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사랑은 하느님에로부터 오는 것이니까요.

하느님의 성분 함량 퍼센티지야 다 다르지만

모든 사랑에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돈이, 술이, 마약이 하느님인 줄 아는 거지요.

사기꾼에게 속아 넘어가는 시골 아가씨 같은 거래요.

영원한 것, 행복한 것, 사랑받는다는 느낌 같은 거를 찾는...(180)

 

강물을 건너는 데

젊은 과부가 강을 못 건너 곤란해 하자,

노스님이 과부를 업어 건네주었단다.

절에 다 와서,

동자승이 노스님께 물었단다.

스님이 여자를 업어도 되냐고... 계율에 어긋나지 않느냐고...

스님 왈, 나는 아까 강가에 과부를 건네주고 두고 왔는데, 너는 아직도 업고 왔느냐... 하더란다.

 

정말 사랑하면, 이유를 찾거나, 영원의 이름에 기대지 않는다.

불안할 때, 영원을 약속하고, 인과의 원칙을 고수하도록 옭아맨다.

 

시대에 따라 사랑의 모습은

다른 삶의 모습으로 자리매김하게 마련이다.

 

이 책에서 작가가 한국 전쟁과 미국, 수도원과 젊은 여자를 뒤섞는 이유도 그런 것이리라.

시대적 배경에 따라 삶만으로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이유가 될 수도 있고,

곁에서 지켜주어도 허깨비같은 헛헛함에 좌절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은 가시지 않아요.

가실 줄을 모르는 거니까.(371)

 

하느님의 사랑이, 완벽한 사랑이,

한 순간도 놓지 않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자식에 대한 사랑과 같지 않을까?

 

차가운 바닥에서 자유를 얻지 못하고,

마음의 고통과 억압에 불안해하고 있을 자식에 대한

그리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밥먹을 때마다 목울대가 울컥, 하는 그런 마음이라면,

잠시도 가시지 않는 마음이라면,

사랑에 가깝지 않을까...

군대에 아이를 보내 놓고 하루도 잠을 편히 이루지 못하는 부모들처럼...

 

수도원 기행... 처럼,

종교적 영성이 가득한 책과 소설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형상화하는 인물들이 좀 더 한국 사회에 밀착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의 작품 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나 '도가니'가

도식적이지만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그 문제제기가 한국적인 것이어서였을 것이다.

 

세월호 유족들의 이야기를 형상화한다면,

하느님의 이야기를

사랑의 이야기를 더 깊이있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얼핏 한다.

 

어떤 이유든 사랑은 아프고, 그래서 하느님도 늘 아프세요.

하느님은 사랑하니까요.

난 노을을 보면, 그게 상처난 하느님의 섬세한 마음인 거 같아서 덩달아 마음이 아파요.(119)

 

그들의 이야기에 몰입하기 힘든 소설이기도 하면서,

그들을 통해 가슴 깊이 아픔을 다독거리는 위안을 얻게도 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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