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독스 1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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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독스 13

이 소설이 나온 것이 2009년이니 한창 '신종플루'가 유행하고

팬더믹(세계적 대유행)이 오니 마니 하던 때인 것 같다.

그런데, 마치 배경은 2010년의 3.11 쓰나미가 몰아친 후쿠시마인 듯 소름끼치게 묘사되어 있다.

 

위기가 닥친 시기에 살아남은(아니, 다들 존재가 없어졌는데 없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방황하는 모습이나,

재난에 휩쓸려 반목하는 모습은 코맥 맥카시의 '더 로드'를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어쩌면 히가시노게이고가 '신종플루'와 '더 로드'를 '헐리우드 키드'처럼 조합해서 탄생한 소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작가의 상상력조차도 쓰나미가 휩쓰는 힘이 거대한 건축물을 얼마나 힘없이 무너뜨리는지를 상상하지 못한 부분도 있어, 자연의 힘이 강한 것을 감히 상상도차 못한 듯 싶다.

후쿠시마에서 바라본 자연의 힘은 인간의 오만을 일거에 휩쓰는 힘을 보여주었다.

 

3.13일 13시 13분 13초 라는 설정이

3.11 후쿠시마와 그리 멀지도 않아 섬뜩하다.

 

한껏 차려입어봐야 다 쓸데없는 짓이죠.

봐주는 사람도 없는 마당에.

비싼 액세서리나 화려한 옷인들 살아남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쓰레기나 마찬가지지.(153)

 

평소에 소중하게 여기던 가치들,

미용이나 패션들은 이제 새로운 세계에서는 쓰레기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기준으로 삼은 가치들은 현재 처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생각하게 한다.

 

오직 죽지 않고 버티는 것만이 목적인 인생이다.

'최소한 목표라도 있었으면.'

살아남아 뭔가 얻을 수 있다면 그게 무언인지 후유키는 알고 싶었다.(260)

 

삶이란 또렷한 기준이 있고 목표가 있는 듯할 때도 있지만,

인간에게 극한 상황이 닥치면 '버티는 것'만이 목적일 때도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상상이 극한을 보여준다.

여느 재난 영화나 소설이 가족애나 애정의 강화를 위해 기능하는 드라마로 전락하기 쉬운 반면

이 소설에서는 끝까지 드라마를 거부한다.

 

"인간이란 그렇게 제멋대로인 존재인가 봐요."

"그렇게 제멋대로 말하고 싶어지는 건 그만큼 자연의 힘이 크기 때문 아닌가?

인간이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야.

그러니 자연과 잘 지내는 도리밖에 없어."(360)

 

절대적인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겸손이 아니라 고개를 숙일 수밖에...

 

간호사 역할을 대신할 수는 있어도

당신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단 한 사람뿐이에요.(435)

 

사물과 사람의 다른 점은 그것이다.

대체불가능하다는 것.

사람이 직책이나 지위는 누가하든 별로 상관이 없다.

그러나, 사람은 대체불가능한 존재다.

 

일본어로 '죽는다'는 말은 '없게 되다'라는 단어의 조합을 쓴다.

죽는다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다.

한국어의 '돌아 가다'의 뉘앙스와는 또 다른 의미를 떠오르게 한다.

'돌아 가다'가 불교적 윤회의 개념을 바탕에 깔고 있고,

'운명 하다' 역시 '명을 옮기다'는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간다는 의미가 남아있지만,

'없게 되다'는 말은 무엇인가 텅 빈 느낌이 들게 한다.

 

'돌아가셨습니다'나 '운명하셨습니다'보다 '없게 되었습니다'는

그 대체불가능한 존재의 가치를 훨씬 크게 상실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래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물리학적 이론의 빈틈을 이용하여 재미있는 소설을 썼다.

 

블랙홀의 영향으로 엄청나게 거대한 에너지파가 지구를 덮친다.(398)

 

그런 상상에서 출발하여, 그 13초 동안 일어난 일의 반전 역시 독자를 짜릿하게 한다.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상상력을 풀어놓는 멋진 작가다.

그래서 그를 읽을 수밖에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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