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라이트 마일 밀리언셀러 클럽 85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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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인 문라이트 마일은 '롤링스톤즈'의 노래 가사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I am just living to be lying by your side

But I'm just about a moonlight mile on down the road...

난 오직 네 곁에 있기 위해 살지,

하지만 난 그냥 달빛 거리를 방황하네...

 

삶은 목적이 없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노라면... 뭔가를 위해서 살게 된다.

재미있는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은,

보람을 느끼며 자기 일을 천직으로 여긴다는 것은,

일을 하는 동안 가끔 느낄 수도 있는 감정일 듯.

 

네 곁에 누워있고만 싶은데, 그렇게 한순간 한순간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은데...

이런 감정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미생'으로서 회포를 발할 때가 있는 법.

 

내가 받은 축복이 불행보다 크다는 깨달음.(390)

 

그래, 어쩌면, 절대적으로 한쪽만을 절대선으로 여기는 착각에서 오는 회의인지도 모르겠다.

상대적으로 불행이 조금 더 크다고 여겨질 때, 나는 불행하다..고 칭얼대는 건지도.

 

아이들과 상담을 하노라면,

간혹 나보다 훨씬 짙은 감정의 골짜기를 통과하고 있는 아이를 만날 때가 있다.

어른들이 경험한 세상을 일반화할 수 없는 것인데,

아이들은 대체로 순수하거나 어리석거나 무지할 것이라고 여기고 충고를 늘어놓는 상담이 되기 쉽다.

 

아저씨가 무슨 자격으로 내 집이 어디인지 결정하죠?

납치당했을 때 내가 무얼 기억하는지 알아요?

그 7개월동안 난 초조하지도 불안하지도 않았어요.

이유가 뭔지 알아요?

엄마라는 여자가 한 번도 청소를 하지 않아 사방에 바퀴벌레와 박테리아가 꿈틀거리고

씽크대에 곰팡이가 슬어가던 집을 떠나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죠.

저녁을 먹고 나면, 내게 잠옷을 입히고, 난롯가에 앉히고 정각 일곱시부터 책도 읽어 주셨어요.(330)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월가가 흔들거리는 미국 역시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을 반영하듯,

주인공은 정규직에 대한 욕구가 커진다.

그때 또 일거리가 들어오는데, 하필이면... 그 어린아이...

 

가치를 부여하는 건 역사야.

아니면 누군가가 그냥 가치있다고 결정해 버리거나. 황금처럼.(327)

 

보통 부모와 자식간의 가치는 절대적인 듯 하지만,

그 가치 역사에 의해 부여되거나, 그냥 결정해버리는 것이기 쉽다.

이 소설을 읽노라면, 어른으로서 점점 꼰대가 되어가는

가치의 잣대를 내안에 품고 애들을 재고 있는 나를 반성하게 한다.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한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다만 어느 날 깨어보면

도로 이정표가 모두 사라지고 내비게이션 시스템도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자동차엔 연료가 떨어지고

거실엔 가구가 없으며 우리 옆 침대의 흔적도 깨끗하게 지워지고 만다.(258)

 

어른들은 이런 일이 있으면 술을 마시거나 약물에 중독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떨까?

세상은 논리적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그럴 때, 이해하려고 애쓰는 자세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말이 없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아이를 보면,

여느 아이처럼 시험에 초조해하고 불안하게 살지 않고

뭔 생각인지 말이 없는 아이를 보면,

어른들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답답해 한다.

나도 그렇다.

그렇지만, 인간이 무얼 이해할 수 있을까?

다들 지금 왜 여기서 살고 있는지 모르는 존재들이면서...

 

의사가 사람 구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결국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매상 문제입니다.

재화와 용역을 예로 들어 최저가에 얼마나 우수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습니까.

환자들을 처방하고 내쫓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더 비싼 치료로 유혹하고...(184)

 

하느님께서 내가 주신 일을 '소명(召命)'이라고 한다.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확립하던 근대 자본주의 시대에

하느님께서 주신 내 일을 열심히 하면 복받는다고 가르쳤단다.

 

그렇게 순진하게 기도하면 되던 시대는 지났다.

소명은 언제나 방황의 길 곁에 놓여 있다.

 

아이가 납치를 당하고,

사설 탐정은 사건을 해결하는 단순한 추리물이 아니다.

데니스 루헤인이 멋진 것은,

픽션 속에 인간이 겪게 되는 정념의 고독을 싸~하게 느낄 수 있는 플롯을 짤 줄 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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