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눈
장석남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장석남의 시를 읽는 일은 '앓는 일'이다.

왠지 그의 화자는 시름겨워 보이고,

금세 맘이 젖어들어 같이 앓는 심사가 된다.

 

바다 소리 새까만

돌멩이 너덧 알을 주워다

책상 위에 풀어 놓고

읽던 책 갈피에도 끼워두고 세간

기울어진 자리도 괴곤 했다

잠 아니 오는 밤에는 나머지 것들

물끄러미 치어다도 보다가 맨 처음

이 돌멩이들 있던 자리까지를

궁금해하노라면,

 

구름 지나는 그림자에

귀 먹먹해지는 어느 겨울날 오후

혼자 매인

늦둥이 송아지 눈매에 얹힌

낮달처럼

저나 나나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듯 외따로 있다는 것이.(돌멩이들)

 

인간보다 수십 만년 더 닳아져 온 동그란 돌멩이들.

돌멩이들의 연원을 곰곰 되새기는 화자는

몇몇의 돌멩이들을 보면서 조금 서럽다.

저나 나나

외따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허나 '인간'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말도 있듯,

그 '사이'의 의미를 되살리는 것이 삶의 숙제지,

'사이'를 아쉬워하거나 없애려드는 것은 무지의 소치다.

그저 '외따로' 있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됐다.

 

국화꽃 그늘을 빌려

살가 갔구나 가을은

젖은 눈으로 며칠을 살다가

갔구나

 

국화꽃 무늬로 언

첫 살얼음

 

또한 그러한 삶들

있거늘

 

눈썹달이거나 혹은

그 뒤에 숨긴 내

어여쁜 애인들이거나

 

모든

너나 나나의

마음 그늘을 빌려서

 

살다가 가는 것들

있거늘(국화꽃 그늘을 빌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눈썹달만 봐도 가슴에 살얼음 애리는 추억도 있고,

그 뒤에 숨긴 어여쁜 애인도 젖은 눈으로 우러르는 심사도 있다.

그런게 살다가 가는 것들의 의미다.

 

진정 그 머리카락의 주인이 누구인지,

누구인지, 그 이치를

먼 훗날 깨우치는 날이 오면은

나도 그때에는

아버지가 되어도 좋았을 건세

마음에 눌러둔 여인네의, 하느님의, 온갖 부처의

애인이 되어도 좋았을 건데(팔뚝의 머리카락 자국 그대로 - 아이, 부분)

 

아이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난 팔뚝엔

머리카락 자국이 남았다.

고요한 마음에 내내 맺혔다 스러지는 한 사람...

마음에 눌러둔 그 때를 돌아보는 그의 마음결이

서걱일 듯 싶다.

 

그의 시는 그의 언어가 지은 집이다.

 

최종적으로는 막연해져서

그냥 인간의 가슴과 꼭 같은 집을 짓고 싶다는 결론을 내리고 만다.

그것도 사랑의 소굴로서의 가슴과 같은 집,

더더욱 내 가슴과 꼭 닮은 집.

그것은 아주 작아서 숨기 좋은 집이다. 그러나 밝은 집.(112)

 

누구에게나 가슴에는 사랑의 소굴 하나쯤 키우고 산다.

그곳은 아주 작아 숨기 좋은 집이고, 환하고 밝은 집이다.

 

이이의 시는 그런 작은 집을 옮긴 것이다.

그러니 하염없이 젖은 눈으로 망연할 따름이다.

거기는 손도 무엇도 닿기 어려운

가슴 속의 소굴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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