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김경일 지음 / 바다출판사 / 199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민족 최대의 명절,... 이라는 추석이 다가온다. 다른 사람들에게 추석은 어떤 날인지 나는 참 궁금하다. 정말 가족들을 만나게 되어서 반갑기 그지없는 명절인 것인지...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그 가족이란 어떤 존재인 것들인지...

내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은 참 어정쩡한 현실이다. 예전처럼 농경 사회의 안정적 분위기는 사라진 지 오래면서, 새로운 유목의 시대로 접목이 성공한 느낌은 들지 않는, 곳곳에서 이물감만이 가득해서 미끄덩거리는 특이한 공간이자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원인을 날카롭게 잘 꼬집어 내고 있는 책 한 권을 읽었다. 우리 사회가 온정 주의가 가득한 듯 하면서도 미개한 부패 주의로 가득한 현실을 말이다. 그 발전 가능성 제로에 도전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메스를 대기를 원하면서...

추석이 되면 온 나라의 도로가 자동차로 미어 터지는 나라. 가족을 만나러 가는 그 행렬은 정말 가족을 그리는 행렬일까? 가족의 의미는 출산율 저하와는 전혀 무관한 것일까? 신생아는 가장 적게 태어나고 노인은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 나는, 미증유의 <연금 파산 사태>가 예견되는 것은 명약관화하고 불가피한 일로 보이는데, 우리는 진정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일까? 이혼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이민율도 부쩍 늘고 있다는데 우리의 유교 질서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인지...

명절이 다가오면 한 부엌에서 여러 명의 여자들이 음식을 만들게 된다. 한 부엌에 두 명 이상의 여성들이 활동하는 것은 개인의 공간을 없애는 <광장의 횡포>를 의미한다. 시어머니 내지는 맏동서의 목소리가 커지는 광장 말이다. 제주도의 한 공간 두 부엌 제도를 듣고 나는 현명하다고 생각한 바 있지만, 유교의 폐해를 아직도 가득 안고서, 남자들의 말로만 <민족 최대의 명절>을 준비하는 여자들은 <최대의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는 시공간 안에 자기를 던질 시간으로 포기해 버리는 것이나 아닐는지...

우리 나라 사람들은 회식을 많이 한다. 회식은 연장 근무의 일종이다. 그 배경에 <공짜술>이 있다는 저자의 말에 동감한다. 남자들을 가정에서 분리시키는 회식 문화는 그 공짜에 대한 기대에 흥청망청해 가는 것이다.

요즘 허생전을 가르친다.
허생은 조선의 몰락양반인데, 조선 경제의 협소함과 인재 등용의 문제점, 조선 민족의 폐쇄성 내지는 미래를 보지 못하는 몰지각한 허례 의식, 예절에 얽매인 발전 가능성 소멸의 문제 들을 제기하는 박지원의 목청을 대변한다.

허생이 꾸짖는 조선 양반들의 허식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만연하고 있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권위로써 억누르고, 여기서 창의성은 말살당한다. 이건 학교에서부터 배운 것이고, 군대에서 체질화 시켰으며, 가정에서 지원하는 총합적인 제도다. 아이들은 제 목소리 내지 못하는 것을 밥상머리 교육에서 배우고, 교실에서 배우며, 사회에서 실현하게 된다.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을 인용하면서 옮긴, 창조라는 것의 출발은 언제나 유치하게 마련... 이란 말에 동감한다. 그 유치함을 억누르기에 유교는, 공자의 제도는 너무도 오랫동안 기능해 왔던 것이다.

과거 무결점 주의, 조상 숭배, 수직 윤리... 이런 공자의 유교는 우리의 명절을 잡아먹지 않았나? 명절에는 남자의 조상을 만나러 간다는 논리는 결점이 없는 완벽한 논리인가? 명절 아침에 차례를 드리며 조상님께 감사하는 미풍 양속은 수천 리 떨어져 사는 오늘날의 가족에게 아직도 끈적한 온기가 남은 제도인지... 이런 것들은 수직 윤리로써 작용하여 사람들을 옭아매는 기제 외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닌지...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 너도나도 수근거린다. 그 옷 참 멋지다고... 안 그러면 병신 되니깐... 나도 마찬가지로 병신되기 싫다면 수근거려야 한다. 공자님 말씀이 최고라고...

내가 이적지 보고 살았던 이 세상의 얼개가 벌거벗은 임금님의 그 멋진 망토처럼 <허상>은 아니었는지... 무한한 시공 저 너머에서 우리 삶을 담보할 새로운 초원을 찾아 떠나 생면 부지의 문화를 만나야 할는지도 모르는 이 시대에, 공자를 부정해 보는 일은 여러 모로 유익하다.

온고지신의 의미도 있지만, '온고'만이 새로움을 담보할 수는 없다는 것은 변화의 과정을 잘 읽고 있는 이의 시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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