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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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바람피우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하여 망라한 백과사전과도 같은 책이다.

심리 묘사가 절묘하고 세심한데,

그 속에서 미스터리가 작동하며 스토리를 박진감 넘치게 생명감을 불어넣는다.

 

평범한 회사원 와타나베.

어느 날 같은 부서에 들어온 계약직 사원 아키하와 우연한 만남을 갖고,

묘하게 아키하는 와타나베를 자기 옆으로 끌어들인다.

 

평범한 아저씨에게 엉겨붙은 아름다운 아가씨라니...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도 없는 이야기지만,

소설 속에서는 아저씨를 헷갈리게 한다.

 

결국 스토리의 결말은... 친구 신타니 이야기로 교훈적으로 맺어진다.

 

결혼해서 단란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도 누구나 그 단란함의 반복에 지루해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머릿속에서 그 반복의 리듬을 깨는,

콤마같은 존재를 꿈꾸게 되지만,

그 꿈은 백일몽이자 일장춘몽이기 십상이다.

 

예전의 저라면 절대 좋아할 타입이 아니지만,

그 사람 덕분에 자신을 재발견할 수 있게 된 것만은 분명해요.

저 자신도 몰랐던 나의 장점과 단점, 취향 등 여러 가지요.

특히 그 사람한테서 사과하는 법을 배웠어요.(360)

 

아키하의 말은 진솔하다.

물론 뒷부분에서 그의 스토리 역시 굉장한 반전을 준비하고 있지만,

와타나베와의 만남에서 자신이 달라졌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마음에는 시효가 없다고...(332)

 

아키하가 유력한 범인으로 의심받을 때,

피해자 레이코의 여동생이 이런 말을 던진다.

이 말은... 범죄에만 엮인 게 아닌 듯 싶다.

가정의 평온을 깨뜨리고 불륜을 저지른 당사자의 마음 역시 그런것 아닌가 싶다.

 

불륜이라는 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사회적 관념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또 그 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은 서양과는 다른 동양의 관습적 사고일 수도 있겠지만...

 

빛을 다루는 직업은 꿈을 꿀 수 있어 좋지요.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고,

빛 그 자체로는 부피가 없는 데다 무엇보다 청결하지요.(290)

 

아키하의 아버지가 남긴 이 말도 투명한 공명을 남긴다.

조명관계 일을 하는 와타나베에게

부피가 없고 청결한 빛은... 곧 그렇게 부질없이 투명하게 통과하는 '바람기'의 비유로도 읽힌다.

 

와타나베 씨,

무리하면 안 돼요.

남녀 사이에 무리는 금물이죠.

서로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 상대를 사랑하면 되는 거예요.

가능하지도 않은 일을 하려고 하거나 서둘러 결과를 얻으려 하다 보면

반드시 파탄에 이르게 되죠.

뭐든지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알겠어요?(129)

 

아키하의 이모 묘코가 '마담 컬러플'로 불리면서

이런 충고를 던진다.

부메랑 효과라고 하나?

이런 언사 하나도 그저 던져지지 않는다.

반드시 허공을 한 바퀴 활공하여 되돌아와 원위치의 화자를 친다.

그런 것이 플롯이고 구성이다.

컬러플...의 의미도... 다양함과 함께 이중성을 읽게 만든다.

 

<파탄 破綻>의 한자가 재미있다.

깰 파, 에  옷 터질 탄, 이다.

보통 부부의 정을 <금슬 琴瑟>로 칭한다.

거문고 금, 에 거문고 슬, 이다.

거문고나 가야금의 현들이 서로 화음을 잘 이루면서 어울려 내는 소리처럼,

두 사람이 서로 독립한 듯 하면서도 공명의 간섭을 통해 하모니의 울림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비유렷다.

그런데, 그 줄이 튿어지는 것, 옷이 튿어지는 것이 <파탄>이다.

줄이 끊어지면, 더이상 하모니를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가정의 소중함과,

바람기의 허망함을 생각케 하는 추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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