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미안해서 비행기를 탔다 - 오기사가 다녀온 나르시시즘의 도시들
오영욱 글.그림 / 달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건축을 하는 오기사.

그가 가우디를 찾아서 스페인을 갔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건축하는 사람들은 자 없이도 구불구불 선을 그리기 좋아한다.

그리고 투시하는 각도에 따라 그림이 떠오르는데,

오기사는 자신의 그림, 이야기, 사진 등으로 이곳들을 들려준다.

 

우선 <욕망>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그녀가 말했었다.

"너는 사람을 외롭게 만들어."

잠자코 있었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외로움은 기대의 불균형에서 오는 것이다.(40)

 

지난 몇 년간 나는 즐거웠는데

사실 딱 그만큼 힘들어하고 있었다.

원인은... 내가 욕망하는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

내 욕망은 스스로를 외롭게 했다.

그런 나에게 라스베이거스는 이런 위로를 던져줄 것 같았다.

"솔직한 게 제일 좋아. 그걸 남들이 싫어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42)

 

라스베이거스의 건물 사진들을 보면,

그가 그 버석거리는 사막 한가운데 꽂힌 욕망의 꽃으로 들어간 이유를 알겠다.

 

찬디가르라는 도시는 르코르뷔지에에 대한 예찬과 회상으로 가득하다.

그 건축가는 축복받은 인물이다.

축복받은 건축가들의 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 아닌가 싶다.

실용과 아름다움을 모두 갖춘 멋진 건축의 시대...

 

내가 피곤한 것은 결국 나 때문이다.(173)

 

말도 안 되는 사람들과 부딪쳐야 하는 인도에서 그는 자신을 만난다.

100원짜리를 1200원 붙여 놓고 깍아준다며 천원을 받는 사람들의

능글맞은 웃음 속에서

"나는 이런 인도의 오만함이 간혹 마음에 들었다."

고 할 정도면, 나름대로 인도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르 코르뷔지에이 건물들이라는데 그닥 감동을 받지 못했는데,

그 유명한 롱샹 성당은 참 가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순례자를 위한 선과 면이 공간을 이룬 성당이라니...

 

시대 정신을 담느라 그랬을 뿐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232)

 

이렇게 말했다는데,

따뜻하고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성당을 만든 사람의 마음은 반드시 따스하리라.

 

소설점의 도시 생트 페테르부르크의 네프스키 거리를 위로의 도시라고 한다.

 

고골은 소설 '네프스키 거리'의 마지막에서...

이 네프스키 거리라는 건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

무엇보다도 밤이 거리의 구석구석까지 들어차고 짙어지면서

하얗거나 크림색으로 빛나는 집 벽들이 드러나게 될 때,

도시 전체에 굉음과 번쩍이는 불빛이 넘쳐흐른다.

무수한 마차가 다리 쪽에서 몰려오고 마부가 고함을 치며 말 위에서 뛰어내릴 때,

그리고 악마가 모든 것들을 실제 모습으로 보여주기를 거부하고 램프의 불을 직접 켤 때,

네프스키 거리는 더욱 심하게 사람들을 속인다.(311)

 

마치 고골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화병으로 죽고난 후 유령이 되어 떠돌기라도 할 듯한 네프스키 거리...

거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거리가 사람들을 속인다는 것은... 도시의 속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언어다.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때는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법이다.

그건 그냥 묵묵히 혼자서 어떻게든 견뎌내야 하는 종류의 과정이다.

백야의 계절이 지나 어둡고 축축해지는 시기의 페테르부르크 도시는

겁에 질린 나를 위로해줄 것 같았다.

무서워하지 말고 자신을 믿으며 계속 가보라고.

세상에서 가장 척박하고 고독한 땅에 일구어낸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보라면서...(312)

 

오기사가 다녀온 도시들을 <나르시시즘의 도시들>로 명명한다.

욕망의 도시, 일탈의 도시, 위안의 도시...

그리고 그는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인간은 누구나 제 욕망의 무게에 짓눌려 산다.

그래서 일탈의 여행을 꿈꾸고,

푸근한 위안을 찾는다.

 

이 책처럼 제 이야기를 혼자서 떠벌이는 이를 바라보면서도,

욕망과 일탈과 위안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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