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의 도 - 농사짓는 이와 돌보는 이를 위한 노자의 도덕경
파멜라 메츠 지음, 이현주 옮김 / 민들레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별 생각 없이 책을 읽다가, 마지막 페이지가 81장으로 끝나는 걸 보고,

다시 제 8장을 펴보았다.

81장은 노자 도덕경의 장절 수라는데 생각이 미쳤던 것인데,

역시나... 상선약수의 8장은 '물의 소중함'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노자를 농사짓는 일과 비유하여 나름의 논리를 펼쳐본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동양의 '노자' 사상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듯 싶기도 하다.

 

노자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노자한비열전'에 묶였듯, 정치 사상의 하나이다.

노자의 반대편에 선 주장은 '억지로 다스리는 법치'였던 셈이다.

노자는 '억지로 다스리지 않아도 다스려지도록 하는 무위지치'를 역설한 셈이다.

 

서양의 어휘 '자연'은 '명사적'이다.

서양의 자연은 '극복'의 대상이고, '정복'의 대상으로 보기 쉽다.

인간은 그 '자연'에 가장 해로운 존재인 셈이다.

그러나 동양의 문맥에서 '자연'은 '부사적'이다.

'자연히', '저절로', '억지로 하지 않아도 스스로' 같은 의미다.

그것은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경지를 드러내는 말이지 정복이나 분투의 대상은 아닌 셈이다.

 

노자의 '무위자연의 다스림'을 굳이 풀이하자면,

억지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스스로 따르게 하는 다스림으로 풀어야 한다.

 

서문에서 무위당 선생과의 대화 중, '도법자연'을 '도는 자연을 배운다...'로 풀었다.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도법자연...이란, 자연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진리란 스스로 그러게 되는 현상...을 배우는 것이라는 말이라 생각한다.

'자연'이 스승이라고 하고 있다.

'자연'이라는 대상이 배울점이 아니라,

세상 만물의 이치는 억지로 애쓴다고 되거나 안 되지 않으니, 저절로 이뤄지도록 그렇게 살라는 말이렷다.

 

1장, 도가도비가도... 구절을

농사의 도는 드러나 보이는 어떤 것이 아니다...라는 말과 연결지어 놓았다.

농사는 '곡식을 기르는 일'이기도 하지만,

자식 농사는 '자식을 기르는 일'이기도 하고,

나처럼 학생 농사 짓는 사람은 '아이들을 기르는 일'이기도 하다.

 

유치원 어린 아이들은 말귀를 잘 못 알아듣기도 하고, 상황 판단이 느리기도 하다.

그러니 아이인 것이다. 그런 어린 아이를 혼내는 일이야 당연지사지만,

귀싸대기를 올려붙여 아이가 날아가게 하는 일은 참 무서운 일이다.

나도 경력이 늘수록 가르치는 일은 <명시적 교육과정>처럼 드러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절실하다.

수업을 똑부러지게 잘 하고, 아이들의 잘못을 명확하게 지적하는 교사도 물론 필요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데는 <암시적 교육과정>이 큰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공론을 하는 속에서 자란다.

 

노자 17장은 太上 下知有之 태상 하지유지  其次 親而譽之 기차 친이예지  其次 畏之 기차 외지  其次 侮之 기차 모지 이다.

가장 높은 것... 정치 철학이니 '임금'쯤 되겠다. 지도자로 치환해도 무방하고,

이 책에서는 농사꾼으로 비유했다.

 

제일은 아랫사람이 그 있다는 걸 아는 정도...

다음은 아랫사람이 친하고 높이는 존재. 그보다 못한 건 공포의 존재... 박정희 같은...

마지막은 업수이여기는 모멸스런 존재다. 이명박근혜 시대가 그렇지 안을까?

이 책에서는

지혜로운 농부는 논밭에 자라는 것들을 억지로 키우지 않는다.

때로는 사람들이 그가 있는 줄도 모른다.

지나치게 열심히 농사에 억지를 부리는 농부는

논밭을 망칠 수 있다.

일할 때 일하다가, 물러설 때 물러서는 농부는

논밭으로 하여금 스스로 논밭이 되게 한다.

이렇게 갖다 붙인다.

앞부분은 수긍이 가지만, 뒷부분은 좀 억지다 싶기도 하다.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지나치게 '열심히' 일해온 경향이 있는 나로서는, 많이 돌아볼 일이다.

 

농사의 도에서는 '놓아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것들을 놓아버림으로써 우리는 더욱 맑아진다.

만물이 저마다 제 길을 가고 있다는 진실을 깨달음으로써

도를 깨우치게 된다.

너무 많이 간섭하면, 논밭에 장애물을 늘어놓는 것이다.

 

경험상, 아이들도 그렇다.

냅둬도 잘 자란다.

선행 학습을 시키고 어쩌고... 들들 볶는 것은, '알묘조장'의 우를 범하게 된다.

싹을 쏘옥~쏘옥~ 뽑아 올려주는 일은,

그 싹의 뿌리를 흔들어놓아서 시들어 죽게 만든다.

 

52장. 근본은 언제나 분명치 않다.

열매를 맛볼 때, 네가 경험하는 것은 열매의 맛, 색깔, 크기, 감촉 따위들이다.

 

사과를 맛있게 베어 먹어도, 사과 고갱이의 씨앗이 번식의 기틀이 된다.

우리가 즐기고 경험하는 것은 핵심 고갱이가 아닌 주변의 것들이다.

우리를 즐겁게하는 경험들은 모두 삶의 고갱이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고갱이는 무엇인가... 그 근본을 잊지 말아야 한다.

 

농사를 짓자면 기다리고 지켜보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다.

어떨 때는 그냥 놔 버리는 것이 더 낫다.

그것은,

자연으로 하여금 제 길을 가게 하고

자연스런 방식으로 논밭을 일구는 것이기도 하다.

 

두 해동안 고락을 같이 하던 아이들이 졸업반이 되었다.

이제 스물이라고 술집에서 민증을 검사해도 내쫓기지 않는다.

맥주라도 한 잔 놓고 애들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아이들이 자란 것은, 부모의 관심도 아니고, 학교의 교육과정도 아니다.

아이들을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다.

저절로 자기들끼리 비비적대면서,

상처를 입고 치유를 받으면서 그렇게 자란 것을 알게 된다.

부모나 학교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덜주는 방향으로 바뀌려 노력해야 한다.

 

더 많은 것을 주려고 고민하지 말고,

아이들이 저절로 얻어가는 과정에 더 많은 것들이 녹아들도록...

아주 자연스럽게 교육과정을 덧대는일이 어른이 할 일이다.

 

불현듯, 노자를 열 권쯤 쌓아 두고 노닥거리고 싶다.

당연히 그러면 졸릴 것이다만... 그냥, 희망 사항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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