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허지웅 지음 / 아우름(Aurum)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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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야하다고? 좋은 생각이나 샘터, 탈무드 같은 책인데...(허지웅)

 

뭐가 그 책들 같냐면... 페이지 수가 아마 그렇지 싶다.

그리고 이야기들이 진지하게 그 본류를 관통하지 못하고,

토막토막 짠한 인간사를 담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면 그럴지 모르겠다.

 

세상 일이라는 게 참 별 볼 일 없는 농담 한줌이라는 걸,

별 볼일 없는 무대 위의 별 볼 일 없는 만담가가 내뱉은 그저 그런 콩트 같은 것이라는 걸, 그러니까,

아주 가끔 깨닫고 대개 까먹는다.(17)

 

그건 그러하다.

삶이라는 거, 세상이라는 게 참 시시껄렁 시답잖은 거야... 진리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걸 깨닫게 해주고자, 이런 책을 쓰고,

그것도 심지어 하드 커버에... 종이도 무지 두껍다.

나무에게 많이 미안해 하지 않을까?

 

연애든 섹스든 결국 신라면 같은 겁니다.

신라면 맛이 변한 건지 내 입맛이 변한 건지,

어찌됐든 요는 사람에게 한결같은 감저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34)

 

사랑은 변한다. 하지만 관계가 변하는 건 늘 너 때문이다.

내가 라면이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고 징징대기 전에

스스로 라면처럼 굴었던 건 아니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48)

 

어찌됐든 스스로를 저열한 자라 선언할지언정 언제나 솔직했다.

그렇다 갑수씨는 내가 만나본 모든 치들 가운데 가장 솔직한 사람이었다.

모순되고 일그러진 세상의 풍경 앞에서도 그러했다.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는 것만큼이나,

윤리를 내세워 타인의 삶을 재단하지 않았다.

더러움 안에 뛰어들어 함께 몸을 더럽히며 즐거워했다.

그것은 유연함이 아니라 강직함이었다.

때로는 위악처럼 보일 정도로 과감한 것이었다.(129)

 

소설인 듯 소설아닌 듯한 책을 읽노라면... 스스로 이 책을 왜 쓰고 있는지를 골똘히 궁구하는 작가가 보인다.

인간은 참 찌질한 존재들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찌질함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치열함은 더 찌질하다.

작가는 스스로 그 찌질함을 밑바닥까지 드러내면서, 그것을 강직함이라고, 과감함이라고 밝힌다.

 

작가의 '사정'이 그렇게 드러나 보이는데, 독자에게 감동으로 어필하기보다,

그렇게 읽어 달라고 '사정'하는 듯도 보인다.

 

우리가 아무리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사람을 만나 보았자

인생에 대해 뭘알 수 있겠습니까.

인생에서 정말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들은

가끔 깨닫되 대개 까먹게 되지요.(167)

 

마음을 얻기 위해 사랑을 볼모로 상대를 겁박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신념을 지키기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사람보다 남의 신념을 위해 내가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것이 아니면오직 저뿐이라며 세상만사를 재단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과거만이 오직 숭고하고 고단했다는 자신감으로 남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얹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만의 진심에 취해 남에게 결코 해서는 안될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들은 조금은 덜 까먹는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171,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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