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 길고 느린 죽음의 여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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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백세시대라고 한다.

수명이 길어진다는 것은 우리가 겪어야 할 노화와 죽음의 과정 또한 더 길어진다는 뜻이다.

빛이 비치면 반드시 그림자가 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더 많이 성찰하고 더 많이 익숙해져야 하며

이 초고령 사회가 장차 어떠할 것인지,

그리고 장차 어떠해야 할 것인지,

신속하고 심도있는 전 사회적 차원의 성찰과 설계에 나서야 한다.(249)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세력들이 제대로 판단한 것이 있다면,

노인들이 선거권을 가지고 있어 그들의 마음을 얻으면 된다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부모가 각각 총에 맞아 죽은 불쌍한 아이는 우리나라에 거의 없다.

거기가 '도와주십시오~'하는 앵벌이 작전까지... 언제나 노인들이 동정을 사게 생긴 짓을 한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노인이 많아진다.

나라가 팍팍해지면서 아이를 낳는 속도는 세계 1위일 정도로 급격히 떨어지는데,

노인의 죽음은 역시 가파르게 유예되는 나라다.

 

노인의 삶도 고찰의 대상이지만, 노화와 죽음에 대한 고찰 역시,

단순한 '요양보호' 차원을 넘어,

노인이 인격체로서 존중받으며 죽어갈 자유를 고려해야 할 때이다.

이 책은 소설가 작가가 아버지의 죽음을 관찰하면서 기록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한 사건의 과정을 통하여 통찰하고 고찰한 '늙음과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 또한 담겨있다.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힘든 것이 뭐냐고 묻는다.

나는 시간이라고 추상적으로 답한다.

내가 시간이라고 말한 것은 희망이 없다는 뜻이었다.

희망이 없는 시간은 고통스럽다.(224)

 

죽음에 대하여 '종교, 과학'의 입장에서 바라본 책들은 추상적이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은 죽음의 얼굴에 대하여 상당히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삶의 가장 기본 조건인 먹고, 소대변을 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래서 노인을 쉽게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유기하면 그 이후는 또 얼마나 무료한 비극이 이어지는지...

그리하여 작가는 스스로부친의 임종까지 1254일을 함께한다.

잘게 다지고 으깨서 먹고, 소변줄을 꽂고, 관장을 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의 요양보호 현실까지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모든 의대 학생들에게 간병 실습 과목을 반드시 그리고 아주 엄격하게 이수하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환자에 대하여 판단하고 결정해 지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환자를 위해 그의 수족이 되어주어야 하는 자리에 서보면,

사람이 아프다는 게 무엇인지, 아픈자를 치유하는 게 무엇인지 훨씬 더 잘 보게 될 것이다.(193)

 

실현 가능성이 쉬워보이지는 않은 제안이지만,

정말 필요한 제안이 아닐까?

약을 먹이고, 수술을 하는 것은 특별한 케이스의 환자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한 처방이지만,

누구나 늙고 자연사를 향해 가는 과정을 겪는 것은 '모든 사람'이 비껴갈 수 없는 일이므로,

의사가 정말 정통해야 할 한 가지가 이것 아닌가 싶다.

 

요양 등급은 일 년마다 갱신되었다.

아버지는 3등급을 두 번 받고 그 다음에 2등급을 받았다...

내 판단으로 보면 아버지는 처음부터 1등급에 해당되는 환자였다.(170)

 

현실은 이렇게 굼벵이고 달팽이다.

 

나에게 영감을 준 쇼펜하우어를 인용하자면,

우리의 삶은 현미경으로 봐야 할 만큼 작은 점에 불과한데도,

우리는 그 점을 시간과 공간이라는 강력한 렌즈로 확대하여 엄청나게 큰 것으로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111)

 

죽음에 대하여도 그렇고, 삶에 대하여도 우리는 지나치게 과장된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노인이 아니어도 아픈 사람 곁에 밀착해 있으면 마치 이슬비에 옷이 젖듯 그 환자의 고통이 간병인에게 고스란히 전이된다.

감정을 가진 존재인 인간이 그거 피할 수는 없다.

반면 환자에게는 병든 자신을 외면하지 않고 누군가가 곁에 있어준다는 바로 그 사실이 가장 큰 위로가 된다.(85)

 

간병도 의료인도 힘든 지점이 이곳이다.

아픈 사람 곁에만 있어도 힘들다.

감정 노동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어려운 일이어서 보람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어려움과 보람은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붙어다니므로, 삶은 늘 생각하게 마련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현대화한 병원은 대개 진료 과목별로 조각조각 나뉘어 있어서

의사들은 오로지 자기 분야에만 신경쓴다.

아버지처럼 심신이 전체적으로 망가져가는 노인 환자의 경우는

그야말로 통합적인 관리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67)

 

내가 의학적 전문성이 없을 뿐, 24시간 관찰한 바를 전달했는데도,

그들 의사와 간호사들은 아버지에게 정신과적 관심과 처방이 필요하다는 발상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오로지 자기 앞만 볼 수 있도록 눈 양옆을 가리고 달리는 경주마와 같은 꼴이었다.(61)

 

배뇨곤란의 경우라서 비뇨기과에만 다닌 환자인데,

겪어 보니 정신과적 요소인 섬망이 심해서 주변사람 역시 고통을 겪었던 경험을 적고 있다.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인 노인 환자들의 경우, 광범위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함은 당연지사이다.

한두 과목의 진료로 치료를 운운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노인 전문 병원이나 간호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적고 있는데, 역시 소설가라 읽기 수월하다.

 

우리들 대부분은 착각하고 있다.

살 만큼 산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초연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27)

 

사는 것도 힘들지만 죽는 것도 힘들다.(26)

 

유명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참 열심히도 살아왔지만, 사는 게 참 힘들었음니데이~~하던...

 

그래. 사는 것도 힘들지만, 죽는 일도 쉽지 않다.

그래서 더 많은 시설과 계획과 교육과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책은 의료인이나 나이들어가는 이들, 간병하는 이들 모두에게 큰 시사를 주고 위안을 주는 책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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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0 22: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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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0 23: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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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2 16: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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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4 11: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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