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 설월화雪月花 살인 게임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졸업을 앞두고...

친구의 하나가 자살(?)한다.

 

고민이라는 건 남이 알아줄수록 작아지는 성질이 있거든.(44)

 

고민을 나누지 못해서 친구들은 모두 외로워하는 중,

다도의 '설월화 의식' 중 다른 친구 하나가 독살당한다.

 

이 책에서는 졸업을 앞둔 가가 형사의 첫 등장인데,

작가의 다양한 관심사가 발현된 작품이다.

다도의 복잡한 과정을 묘사한 도판이라든가,

검도의 다양한 용어들을 묘사하는 등,

전문적 분야를 장르 소설에 녹여내는 기질이 이때부터 반영된 것이다.

 

자네에게 부족한 것은 '탈력'이야.

내 힘을 투입하고 정신을 집중하는 건 단 한 순간이면 된다는 걸 알아야 해.

계속해서 죽기살기로 전력투구해서는 상대에게 그리 큰 공포감을 줄 수 없어.

거꾸로 여유를 줄 뿐.

인간을 아무리 애를 써도 집중을 몇 분씩 지속할 수는 없어.

스스로는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실은 짧은 사이클로 집중과 산만을 되풀이하지.

집중이 계속된 뒤에는 반드시 산만이 오게돼.

그런 때에 공격에 들어가거나 공격을 받으면 아무래도 허점이 나오게 돼.

그런 때 필요한 건 계속 정신집중을 하려는 게 아니라,

언제라도 집중할 수 있는 준비상태로 자신을 컨트롤하는 거야.

말하자면 그게 탈력, 힘빼기야.(97)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자못 이런 에피소드들이 잔뜩 추리물을 힘을 넣어버린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미나미사와 선생님과의 대화는 격조있으면서도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제 그만 죽어도 괜찮겠다고 생각이 드는 때가 아주 많아.

단지 직접적인 계기가 없었을 뿐이지...

내 남편이었던 사람 곁으로 가고 싶어.

내가 자살한다면 그게 동기라고 생각해줘."

"정말 외로운 일이네요."(241)

 

젊은 나이의 작가가 이렇게 죽음에 가까이 가서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 작가의 능력이겠다.

물론 그 내용이 주제에 녹아있지 못하고 이렇게 대화 속에 등장하는 것도 초창기의 한계일 수 있겠고...

 

모든 인간에게 죽음에 대한 생각은 각기 다를 수 있다.

두려움에 휩싸일 수 있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인생에서 너무 힘을 주지 않고,

어떤 사건과 맞닥뜨리든, 힘을 빼는 태도... '탈력'이 죽음에야말로 필요한 자세인지 모르겠다.

 

"언제라도 진실이라는 건 볼품없는 것이야.

그건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거짓에 의지하는 삶에 가치가 있을까요?"

"거짓인지 진실인지, 그걸 어느 누가 판정할 수 있지?"(320)

 

인생에서 '졸업'이란,

특히 대학의 졸업이란, 기나긴 학창시절을 벗어나는

이른바 '탈피'의 시기이다.

학생을 벗어나 어른이 되는 시기.

부모와 사회의 보살핌을 벗어나 독립을 해야하는 시기.

 

그 정신적 부담감을 자연스럽게 추리소설 속에 녹여낸 작품으로,

가가라는 친구가 앞으로 '교사'보다는 '형사'로서의 기질이 돋보이는 인물임을 선보이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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