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
샤오루 궈 지음, 변용란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한창 인기몰이중이던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이 터키인의 사생활 문제로 시끄러웠다.

이국적으로 생긴 사람을 보면,

이전까지 자신이 주변에서 보던 사람들의 일반화된 <매력>과는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법.

 

그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외국인들은 한국어가 능통한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문법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게 마련이고,

발음도 어려워서 '그까짓' 같은 발음도 '그깍지'처럼 발음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이 소설에는 공산주의 국가 중국, 한 자녀밖에 갖지 못하여 '소황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자녀.

그 여자아이가 랭귀지 스쿨 코스를 위하여 1년간 영국에 체류하면서 겪은 일들을 그린 이야기가 등장한다.

 

첫 부분은 참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읽었다.

번역도 그럴 듯 하다는 이야기겠지만,

정말 짧은 영어로 쓴 글처럼, 또는 짧은 한국어로 외국인이 쓴 것처럼,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문화적 차이를 느끼게 한다.

 

처음만나 두 뺨에 키스한 영국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주인공은

<나는 내 몸속에 달콤한 느낌을 갖고 잠에 빠진다.>는 표현에 꼭 맞게 사랑에 빠진다.

스물 네 살 동양 아가씨가 나이도 가늠하기 힘든(알고보니 스물 몇 연상인) 아저씨에게 빠진 것이다.

 

승합차로 배달 알바를 하고, 조각가이기도 한 영국인 남성의 집으로 옮긴 아가씨,

황홀한 사랑의 허니문을 보내지만, 곧 영국인 남성의 외로움에 맞닥뜨린다.

여행을 혼자 가버린 그의 집에서 <나는 당신 찬장에 속한 작은 외로운 찻잔이다.> 같은 기분을 느낀다.

 

이 소설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만나서 빚는 균열을 세심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가 돌아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느냐는 말에

<무슨 말을 하나, 나는 내 안의 바다가 너무 크고, 너무 끝없음을 느껴 말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만일 우리가 새로운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면, 그건 괜찮아요.

그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남자와,

<그건 무슨 뜻이에요? 우리가 원한다면 우린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남자.

 

그 말뜻의 사이만큼이나 문화적 괴리감도 크다.

그녀는 프리다 칼로를 보다가 남자를 생각한다.

<당신은 삶의 묵직함을 생각한다.

당신은 어려움과 거칢을 느끼길 좋아한다.

나는 당신이 삶의 무게를 느끼길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이케아 가구들이 가볍고 매끄럽기 때문에 싫어한다고 말했다.>

 

아, 이케아 가구.

이 한 마디로, 그 남자를 보여준다. 멋지다.

그 남자는 신문을 읽으면서 아나키스트 이야기도 들려준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날아온 여자가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를...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들은 사실상 부르주아예요. 그들은 정말로 그 어떤 이익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매우 이기적이지. 나는 이제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물질적인 것을 포기하고 싶고, 가능한 한 최대한 단순한 삶을 살고 싶어.>

자본주의가 태초에 발생한 나라, 영국에서 '최대한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남자와,

공산주의 나라, 중국에서 '부를 위하여 영어를 배우러 간 삶'을 사는 여자의 마주침...

그들의 마주침이 깊은 <만남>을 의미있게 이루기에는 차이가 너무 컸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낯선 여행길로 내민다.

<우리 몸은 비록 떨어져 있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당신과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요.>

이런 멜을 받고, 여자는 <나는 나 홀로 떠난 여정이 너무도 외롭다>고 보내지만,

<서양에서 우리는 외로움에 익숙해요.

나는 당신이 외로움을 경험하고, 당신 혼자 있는 기분이 어떤 느낌인지 탐험해 보는 것이

당신을 위해 좋다고 생각해요.

얼마 지나면, 당신은 고독을 즐기기 시작할 거예요.

당신도 더 이상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거예요.>라는 답을 받을 뿐이다.

 

여자는 여행길에서 만난 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맺기도 하고, 결국 임신도 하게 된다.

 

<시간에 관하여,

내가 영어를 공부하며 정말로 배운 것은 시간이 타이밍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잘 맞는 상대와 잘못된 타이밍에 사랑에 빠지는 일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이 될 수 있음을 나는 이해한다.>

 

남자는 자신의 삶을 찾아 웨일즈로 가게 된다.

 

<그래, 나도 당신과 동감이야. 우린 함께할 수 없어.>

 

이방인과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그 나라 말에 능통한다 해도,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까지 이해하는 일은 힘들다.

하긴, 같은 말을 쓰는 사람끼리도, 얼마나 낱말 하나로 삐치고 토라지고 하던가.

 

그녀의 여행에서 만났던 남자들과의 인연을 읽으면서

한비야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의 책에서 여행은 흥미진진하고 행복한 날들의 연속으로 기록되지만,

실제 여행은 어떠했던지는 그만이 알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여행의 맛은,

<흥미의 항진>이 아니라 <흥미를 놓음>에 있는것인지도 모른다.

맛집을 찾아 다니고, 그림같은 펜션을 찾아가는 일도 <항진>의 여행일지도 모르지만,

아무 생각 없이 '바람과 장면'을 바라보는... 그 '풍,경'을 느끼는 <무미>의 여행이,

'텅 빈' vacant  의 의미에 가까운 '휴가' vacation 가 되지 않을는지...

 

<외국어 사전>이라는 소재를

외국어 학습자 입장에서 그 문화를 만나는 사람의 심리와 중첩시켜 소설로 구상한 데는 별점을 5개 주고 싶지만,

중반부부터 여자가 여행하는 대목은 별을 2개 정도 주고 싶을 정도로 매력이 감소하기도 했지만,

처음 만난 인상이 워낙 강렬하고 매력적이어서 별점은 좀 후하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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