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구혜영 옮김 / 창해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게이고의 초기작이라고 한다.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상당히 두터운 복선을 깔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흥미 위주의 미스터리 풀이를 위한 책이 아니라,

인생에서 '숙명'은 어떻게든 엮이고 풀리게 마련...이라는 삶의 미스터리를

한번 다뤄보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이때부터 인간의 두뇌와 조작에 대한 관심도 드러난다.

 

기업은 인간의 몸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걸 무시하면서 성장해가는 거죠.

의사는 필사적으로 기업의 뒤처리를 하고 있고요.

불도저가 짓이긴 모종을 한 그루 한 그루 다시 심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나 할까요?(27)

 

처음부터 이 이야기에서는 '끈'이 등장한다.

미사코의 끈이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일지를 궁금해하며 읽게되는데,

뜻밖의 끈을 만나면서 대단원을 맺는다.

 

우류가의 나오아키가 죽으면서 '아키히고, 미안하다, 잘 부탁한다...'고 유언을 남기는데,

마칠때까지 그 부탁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상상을 불허한다.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고 고민을 털어놓는 일도 없고,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아내가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편.

단순히 가정을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인간적인 부분에서도 남편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이해해줄 수 있는 날이 올까?(134)

 

미사코의 처지를 고려하면서 읽으면,

무언가 남편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는데,

그 의심의 눈길이 사건의 해결과는 무관한 쪽으로 독자를 끌게 된다.

이런 것 역시 트릭이고 재미다.

 

그렇지만, 이런 속에서 결혼 생활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역할도 담고 있다.

부부의 역할은 어떤 것인지, 단순히 가정을 유지하는 것...에 머무는 집이 얼마나 많을지...

 

내 인생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조종되고 있어요.(196)

 

삶에 이런 비밀을 간직하고 산다는 일은 가혹한 일이다.

그렇지만, 또 인생에서 어려움에 봉착할 때, 인간은 그 '끈'에 관심을 갖기 쉽다.

삶은 숱한 끈의 연결 고리들로 엮이는 것인데,

과연 그 연결 고리들을 다 안다면 또 얼마나 싱거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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