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떠올리는 하루와, 그저 잠에서 깨어 눈 비비고 하루를 시작하는 하루는 몹시 다를 것이다.

여행을 떠난 날, 아침은 유난히 눈이 일찍 뜨인다. 어젯밤 늦게까지 떠들던 동료들은 아직도 코를 골아대는데, 조용한 산새소리가 잠을 깨우고, 멀리서 계곡 물소리가 시원스럽다. 이런 아침, 일찍 나가서 대기를 호흡하는 일은 자못 상쾌함이 색다르다. 이런 날, 자연에 도취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매일 자는 잠자리에서 매일 울리는 알람 소리에 깨는 삶은 얼마나 단조로운가.

하루를 사는 것이 어차피 인생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하면 <나의 하루>로 오롯이 만들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가 종교거나, 명상이고, 이 책, 코엘료의 접근법이라고 하겠다. 이 책은 내가 읽은 <연금술사>, <오 자히르>보다는 사색적인 소설이다. 앞의 두 권은 내게 별 감흥을 주지 못한 대신, 이 책의 주제는 자못 가슴 찡한 구석이 있다.

'죽음에 대한 자극은 우리를 더 치열하게 살게 한다'는 가설은, 현대에는 <상술>이 되어 <장례 체험장>을 운영하는 사업도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나도 수업 시간에 <묘비명 쓰기>, <유서 작성해 보기>를 해 보거나, 인생 곡선 그리기로 미래를 그리는 활동을 해 보면, 아이들이 상당히 고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작품 속의 베로니카는 삶을 치열하게 사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작품 속에서 형상화된 인물은 나름의 생을 살아나가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베로니카는 <현재에 충실하게...> 사는 삶의 중요함을 깨닫을 따름이지, 치열하게 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우리를 <치열>로 내모는 구호들이 많은가... <아침형 인간> <바보들은 날마다 결심만 한다> <1억 모으기> <... 다이어트 성공기> <외국어, 한 달이면 된다>... 이런 책들을 보면, 얼마나 우리가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강권한다. 그래도 이런 책들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서점에서 아예 넓찍한 코너를 차지한 초, 중등 학습법, 문제집 등을 보면 <이런 것을 알아야 자식을 올바로 기를 수 있다!!>는 책들이 정말 많다. 정말 뭔가를 알고, 실천하고, 치열하게 살아야 자식을 기를 수 있는 것일까? 예전 우리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여러 식구 사는 데 떠들지 말 것과, 가난해도 도둑질하지 말 것과, 형제들끼리 생기는 알력에서 다투지 말 것을 가르치셨는데, 사실 그런 것들은 동물의 왕국에도 엄연히 등장하는 것들이다. 동물들도 자기 구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고, 자기 음식에 손대지 못하게 하므로... 그저 자연스럽게 살아온 거라고 볼 수 있다.

토요일 저녁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란 코너를 재미있게 본다. 몇 회를 보면 볼 수록 이런 생각이 든다. <문제 아이에게는 반드시 문제 부모가 있다.>는 생각. 교직에 십칠 년 있다 보니, 골치 아픈 아이들을 만나도 그 아이를 고치려고 하지 않게 된다. 더군다나 부모 호출은 특별히 변상할 일이 있는 경우 아니면 생각하지 않는다. 자식이 문제아면, 그 부모는 더욱 골치아픈 경우임을 숱하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에게 생긴 문제는 대개 부모가 어느 시점에선가 잘못 대응한 것이 습성화 되어 고착화 된 것이란 것이 대부분의 경우 드러났다.

미쳤다는 게 뭐지? 아마 미친사람에게 물어보면 알까? 정신병은 오랜 동안 소설의 소재가 되어 왔다. 그만큼 독특한 정신 세계를 다루는 재미가 있고, 다양한 사건들이 마치 동물원처럼 격리된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코엘료처럼 자기의 경험을 적는 소설을 만나기는 어렵다. 그만큼, 코엘료의 소설 중에서 이 소설이 가진 <현실감> 내지는 <탁월함>이 여기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자기만의 것>을 쓰는 것보다 좋은 글은 없기 때문이다. 사막의 아내찾기, 오 자히르의 막연함과, 삶에 대한 우화 연금술사는 어쩐지 자기 이야기가 아닌 듯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스스로 자신이 미친 사람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곳, 남에게 호의를 베출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는 자신들이 하던 재미있는 활동을 중단하지 않는 곳, 정신 병원>에 대한 그의 경험이 이 작품에 현실감을 불러 넣어주고 있는 것이다.

<살 날이 며칠이나 남았다고 본 적도 없고 얼마 안 있으면 두번 다시 보지 못할 사람들의 이러쿵 저러쿵 소리에 매달릴 필요가 뭐람?> 하는 말을 할 수 있도록 베로니카에게 삶의 <마지막 며칠>을 주는 것도 자아를 해방시킬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한 것이다.

베로니카가 에뒤아르에게 자기의 모습을 가림없이 보여주었던 밤, 베로니카의 말은 <달마야 놀자>의 박신양과 주지스님의 대화를 떠오르게 했다.

   ..... 피아노에도 나 자신을 내 던졌어요... 하지만 나는 그때의 내가 온전한 나 자신이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곳에서 그의 경험은 좋은 작품들로 녹아날 가능성이 보이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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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5-08-16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 선생님 글을 읽으니 <거짓의 사람들>이 생각나요.
문제아에게는 "악한" 부모가 있더군요. 아이는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드러나지만,
그 아이의 부모들은 자기를 끊임 없이 합리화 시키며 사회에서는 정상인으로 살아가더라구요. 섬뜩했어요. 그 책 읽고....

아침에 자명종 소리를 듣고 기계적으로 일어나기...그렇게 살고 있네요.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며 기분 좋게 일어나면 다른 하루를 보낼 수 있겠죠?
알면서도 못하는 일들이랍니다.^^

글샘 2005-08-21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을 산다는 건, 기분 좋지만은 않은 일들과 만나서 투쟁하는 것같이 보인답니다. 그런데 한 걸음 물러서서 보게 되면, 조금만 떨어져서 보게 되면, 그 투쟁이 한없이 무의미해 보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거만해 지면, 병이라는 천사를 보내시어 나의 어리석음을 가르치시는 것인지도 모른답니다.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