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범 1 - 개정판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5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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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여사의 '모방범'을 진작부터 한번 보고 싶었으나,

도서관에서 탈출한 1권이 1년만에 돌아왔다.

 

세 권이 약 16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라서 이걸 언제 읽나 했는데, 기우였다.

페이지는 잘도 넘어가고, 스토리도 박진감이 넘치는데,

시점에 따라 이야기가 새로이 구성되는 면도 있지만,

다소 지루한 감을 떨칠 수는 없었다.

분량을 반으로 줄였어도 스토리를 탄탄하게 구성했다면, 더 좋았을 수도 있지 않았겠나 싶다.

 

범죄란 사회가 갈구하는 형태로 일어나기 마련(1권, 111)

 

인간 사회에서 '살인'같은 범죄는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살인이 우발적인 폭력으로 벌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재미삼아 계획적으로 상습적으로 범죄를 일으키는 인간이 생기는 것도,

사회의 한 단면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는 것.

 

이 소설은 범죄를 단면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에서 모티프가 시작된다.

 

인간이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야.

절대로 그러지 못해.

물론 사실은 하나 뿐이야.

그러나 사실에 대한 해석은 관련된 사람의 수만큼 존재해.

사실에는 정면도 없고 뒷면도 없어.

모두 자신이 보는 쪽이 정면이라고 생각하는 것뿐이야.

어차피 인간은 보고싶은 것밖에 보지 않고,

믿고 싶은 것밖에 믿지 않아.(2, 493)

 

그래서 하나의 살인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의 관점을 종합적으로 보아야 하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을 여러 파트의 전개로 조직하게 만들었다.

 

시를 쓰는 것은

자신의 마음 속에 내시경을 넣고

그곳에 조직의 일부를 떼내 표본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래서 위험하다.(2, 387)

 

마음을 감추고자 하는 범죄자에게는

작은 조각도 마음을 반영하는 표지가 되기 쉽다.

 

흘수선을 넘기 위한

밸러스트의 역할로서(2, 469)

 

장르 소설인데 이런 표현이 들어가는 글은 멋지다.

 

태어나면서부터 안정된 자리가 없었던 아이.

어디를 가나 장애물 취급을 받은 아이, 아미가와 고이치.

늘 웃는 얼굴이라 피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불안한 가정환경 속에서 의지할 데라곤 불안정한 어머니 한 사람밖에 없었던 외로운 아이.(3, 457)

     

안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모두 살인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안정되지 못한 환경은 충분히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살인이 잔혹한 것은,

살인이 피해자를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가족의 생활과 마음까지 서서히 죽여가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가족을 죽이는 것은 살인자 본인이 아니라 그 가족들 자신의 마음이야.(3, 280)

 

아이들에게 사형에 대하여 찬반 토론을 시켜 보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보복하고 싶은, 응징의 심리가 있다.

그렇지만, 응징은 치유와는 별개이다.

아무튼,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은 유가족을 함께 죽인다.

 

여기는 다른 세상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들은 이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진실된 것이지만,

요시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단순한 이야기일 뿐.

그녀가 이해한 것을 쓰고 있는 한,

그것은 어차피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곳은 그런 이야기를 생산하는 공장일 뿐.(3, 169)

 

문제 해결에 가장 포인트 역할을 하는 마에하타 시게코라는 여자는,

자유롭게 글을 기고하는 역할이다.

그런 프리랜서 칼럼리스트에 의하여 범인은 음지에서 양지로 튀어나오는 괴물이 되는데,

그런 언론의 세계 역시 범죄자나 피해자에게는 무의미한 세계다.

언론은 선정적인 뉴스거리를 찾아다니는 하이에나와 같을 뿐,

진실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시간의 화살 끝은 어디로 향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것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3, 76)

장르 소설을 읽는다는 일은,

시간의 화살이 어떤 과녁을 향해 갈 것인지를 추리하며 읽는 일이다.

그 움직임이 긴박하게 전개되기도 하고

호기심을 놓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모방범.

존 카첸바크의 'just cause'라는 소설도 등장하는데,

사건의 변곡점이 되는 지점에 놓인 그 소설이 반가웠다.

그 소설에 등장하는 '퍼거슨'이라는 이름은 요즘 신문에서 자주 보인다.

이 소설의 주제인 흑인에 대한 법적 차별이, 요즘 미국에서 '퍼거슨' 시에서 벌어진 사건과 같기 때문에 흥미롭다.

 

지금도 시간의 화살은 움직이고 있다.

그 화살이 어디로 향해가는지 제각기 주장하지만,

진실은 알기 어렵다. 그것이 인간이다.

이런 소설을 읽노라면, 인간은 좀 겸손해질 필요가 있지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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