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 상처받지 않고 사람을 움직이는 관계의 심리학
양창순 지음 / 센추리원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jtbc의 '비정상 회담'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기본적인 콘셉트는 미녀들의 수다와 같지만,

등장인물들의 한국어 실력이 뛰어난 점,

그리고 그냥 수다를 넘어선 문화간의 차이를 이야기하면서 인정해야 할 것을 이야기한다는 점,

무엇보다, 그 속에서 한국 문화의 <비정상>적인 면들에 대하여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점 등이

코믹을 뛰어넘은 인기의 요인일 듯 싶다.

물론, 인물들의 외모 역시 인기를 끌기에 충분하다.

 

몇 회를 보면서

중국과 일본, 한국 등 동양권과 서양권의 사고방식의 차이는

생각보다 견고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여느 한국인 뺨치는 터키인의 너스레는 재미의 품격을 더욱 높여주기도 했다.

고지식해 보이지만, 터키인은 지켜야 할 것의 이유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할 줄 아는 자세를 보여주고,

일본과 중국의 대립은 역사적인 것과 현재의 영토 분쟁 등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를 준다.

일본 아이가 좀 어려서 진지한 고찰까지는 부족하지만,

중국 출연자의 뻘쭘한 사교성과 고집은 역시 대륙남의 근성을 보여준다.

(얼마전 기미가요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는 사건으로 폐지를 논의하기도 했던 모양인데,

중국출연자는 거기서 공산당가를 잠시 부르기도 했던 것 등을 생각한다면,

경고나 징계를 주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발끈, 하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임을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한국인의 처지가 참으로 특이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는 참 좋은 프로그램이다.

여성이 무지하게 높은 교육을 받지만, 또 특이하게 낮은 사회적 대우를 받는 상황에서,

사회는 지독한 양극화와 비민주적 행태로 가득한데,

경제적 비민주화는 갈수록 심해지는 현실에서

아이들은 살인적 교육현장에서 경쟁으로 치닫고,

청년들은 과도한 실업을 껴안아야하는 질곡으로 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해결하려는 정치적 노력은 전무하며,

날마다 온갖 사고가 일어나지만, 근본적 처치를 하려는 집단은 없다.

 

<회담>의 주제로 들고나오는 것들이 이런 한국적 문화의 우울증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비하자면,

일본 국가인지도 모르는 노래가 잠시 흘러나왔다고 폐지논의에 빠지는 것은,

지나간 역사를 제대로 처치하는 것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친일파가 그대로 온존한 채 분단의 역사로 전쟁까지 겪은 나라이니,

그런 근본적 문제는 차치하고 단편적인 독도 분쟁 같은 것에 야단법석인 것 정도가 한국의 수준인 것을...

 

이 프로그램에서 '정상 인듯 정상 아닌 정상 같은 너'라는 로고송은

'비정상'의 뜻을 잘 담고 있다.

니꺼인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내꺼인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소유, 썸)

이런 노래 가사를 패러디 한 것인데,

온갖 비정상적인 심리 상태는 '정상'의 정반대, 또는 정상범위 완전 바깥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그 '정상'적인 심리상태는 상당히 문화적인 것이며,

그 문화적인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을 사람들이 '정상이 아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자녀를 때려도 되는가?

이슬람 국가에서 술을 마셔도 되는가?

이처럼, 정상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없는 것은 어디까지나 문화의 문제다.

 

이 책은 한국인의 문화병인 '마음의 병'에 대한 책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심리분석을 할 때는 문화권의 영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245)

 

당연하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상한 사회에 너무도 사회화가 이뤄져 있어서,

'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라고 세뇌당한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니,

부모-자식의 대화나 경제적 관계 같은 면에서는 다들 트라우마를 가질 수 있다.

 

한문으로 상징되는 표의문자가 주로 오른쪽 뇌에서 읽히는 것,

한글도 오른쪽 뇌에서 읽히는 것.

오른쪽 뇌가 발달해 있는 경우에는 더 감성이 풍부하고 창의적.(245)

 

한글은 한자어를 표기하는 어휘, 어법도 많으므로 완전한 표음문자는 아니다.

그러데 표의문자가 오른쪽 뇌에서 읽힌다는 과학적 분석도,

문화적 분석과 함께 고려할 만 하다.

 

한국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에 시달린다고 하지만,

긍정적인 눈으로 보면, 그런 과정을 거쳤기때문에 지금의 경제적 풍요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재벌이나 정경유착 같은 부분도 고려해야 하지만, 인력의 힘이 고생한 것은,

지난 한 세기, 한국인 만큼 집중적으로 식민지, 전쟁, 내전, 내란, 군사독재, 부정선거를 겪은 나라도 전무후무하다.

 

곰팡이를 없애려면 햇빛과 바람을 쬐어주면 되듯이

내 마음의 열등감과 죄책감도 드러내고 나면 더이상 열등감이나 죄책감이 아니다.(307)

 

이런 말도 일부분은 옳고, 많은 부분 옳지 않다.

어른의 말을 잘 듣고 착한 아이가 되라고 가르친 역사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은 문화이기도 하다.

 

많은 창조적인 사람들이 운전을 하거나 샤워를 하는 것 같은 무심의 순간에 최고의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 과정에 작용하는 것은 오른쪽 뇌의 역할.(242)

 

한국인은 너무 뇌를 열심히 굴려야 살아 남는다.

아이들에게 자살 예방 교육을 하고,

아이들과 군인들에게 폭력 예방 교육을 하기 전에,

자살 예방, 폭력 예방 사회 정화가 필요한 것 아닐까?

 

한국인에게는 더 많은 무심의 순간이나 릴랙스의 순간을 제공하도록

국가가 애써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책에는 <우연과 변수와 아이러니의 총합이 인생>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 말이야말로 조금 옳고 많이 틀렸다.

유태인의 죽음을 우연, 변수, 아이러니라고 한다면 말이 될까?

인생의 많은 부분은 문화적으로 이미 결정된 부분이다.

태어나기도 전에 '성씨'가 정해져 있고, '돌림자' 역시 정해져 있어 이름의 오행만으로도 항렬을 구별할 수 있는 사회에서,

우연과 변수와 아이러니는...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억압하는 기제의 힘이 클 수밖에 없다.

 

1. 엇저녁에는

2. 안건을 회의에 부치다

3. 적쟎은

4. 깍뚜기

5. 넙적하게

 

올해 수능에  맞는 맞춤법 찾기 문제가 등장했다.

아마도 이 문제의 정답률이 40% 미만이지 싶다.

문제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최근에 맞춤법이 출제되지 않아 아이들이 소홀히 여겼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정답은 2번이었다.

(엊저녁, 적잖은, 깍두기, 넓적하게)

문화라는 것은 이렇게 삶에 밀접하다.

자주 마주치는 문제는 사람의 심리에 강한 인상을 남기지만,

자주 마주치지 않게 되면 쉽게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상처 역시 그렇다.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문제는 무의식 속에 강한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개인간의 소통과 공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창으로 바라보기'가 필요하다.(142)

 

삼강오륜의 수직질서 아래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상대방의 창'만큼 낯선 것도 없다.

문화란 그렇게 사람들에게 은연중 강한 힘을 미친다.

 

이 세상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건

그들이 다 지나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52)

 

지난 4월 16일은 영원히 잊히지 못할 슬픈 날짜로 기억될 것이다.

아직도 지나가는 사람들이기를 원하는 그 지점에,

랑시에르의 말처럼, '무언가 볼 것, 무언가 말할 것'이 있음을 밝히는 지점이 <정치>다.

 

사람들은 다 정상이 아니다.

그 비정상이 문화의 차이에서 나온 것이며,

역사의 산물이란 것을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큰 치유가 될 것이다.

잘못된 역사를 파묻고 계속 곪게 만드는 나라는 '힐링 캠프'로서의 자격이 없다.

진정한 힐링의 베이스캠프라면, 세금을 거두기에 애쓰기보다는,

그 세금으로 아픈 사람들의 비정상적 아픔을 '치유'하는 데 애쓰는 나라라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