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배움 - 사토 마나부 교수와 함께한 배움의공동체 5년의 기록
사토 마나부, 한국배움의공동체연구회 지음 / 에듀니티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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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한 인격체가 어린 인격체를 가르치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

피상적으로 본다면,

교사가 교실에 들어가서 수업을 전개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졸업하고 나서 학생들이 수업에 대한 기억보다는, 수업 외적인 상담이나 마주침에서 남은 인상을

기억하는 일이 흔한 것을 보면,

수업 시간에 일어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교육 현장에서 일어난다.

 

국가가 교육과정을 건드리면 학교는 움찔~한다.

이명박이 건드린 교육과정으로 학교는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이 많이 늘었다.

어떤 학교는 그 시간에 학생의 독서활동, 진로지도 활동, 강연회 및 연주회 활동 등으로

알차게 채울 수 있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그 시간에 제대로 된 교육활동이 이루어지기 힘들어 허덕댄다.

 

여학생들은 악기를 다루기를 좋아하지만,

남학생들은 운동을 하는 일을 좋아한다.

특활을 운영하는 것도, 여학교나 공학인 경우에는 다양하게 조직하는 일이 가능하지만,

남학교의 경우, 운동부에 아이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또 태권도처럼 모든 아이들을 일률적으로 지도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한국처럼 교육이 삶의 등급을 결정하는 것처럼 여겨질 때,

교실은 상생의 공간이라기보다 무조건적인 경쟁의 공간으로 제한된다.

서태지가 교실 이데아에서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라고 한 것이 2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교실은 그대로다.

아니, 훨씬 경쟁의 강도는 높아지고 있다.

 

학교 개혁에 필요한 것은 비전과 희망.

많은 공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공만 돌려야 한다.(32)

 

교육은 국가 행정부의 큰 일 중 하나이다.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않을 때, 아이들은 힘들어한다.

학교를 개혁할 때 그 주체는 교사가 제일 우선이다.

한국의 학부모를 조직하는 일은 아직 힘들고, 학생들은 경쟁에 내몰려 있다.

그러나, 교사 조직은 너무나도 희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는 '교대'라는 출신지에 따라 선후배 구조로 '승진'을 위한 노력파와 그외파(명퇴파)로 나뉘고,

중등학교는 나이가 많아 '명퇴'를 하고싶은 부류와 '승진'을 하고 싶은 부류로 나뉜다.

학교를 개혁하기 위해 뜻을 모으고 마음을 모을 교사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이다.

지금같아서는 명퇴 희망자를 그대로 다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

아니, 절대로 못할 노릇일게다.

공무원 연금을 받아서 다 써놓고는, 이제 돈이 없다고 징징대는 정부따위가 교육에 관심이 있을 리 없다.

 

그래도 학교 개혁은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배움이란 살아가는 가장 큰 힘이자 뿌리요, 행복의 근원입니다.

반대로 배움의 의미를 잃어버린 아이들은 가족이 해체되거나 친구를 잃으면 자신도 금방 망가집니다.(49)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물겹게 아름답다.

입시에 지쳐 힘들어 하는 아이들조차도 반짝반짝하는 아우라가 가득하다.

학교를 행복한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교사들의 힘이 모아질 필요도 있지만,

사회가 행복해지지 않으면, 한 해 아이들과 힘써 행복한 교실을 만든다 해도, 결국은 불행해지기 쉽지 않을까?

 

배움이 성립하는 교실은 소곤소곤 속삭이며 조용합니다.(53)

 

아이들이 소풍지를 결정하거나, 자리를 바꾼다고 시끌벅적한 교실을 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자기들끼리 공부를 가르쳐주며 속닥거리는 교실은 아름답다.

교사가 큰 소리로 강의하는 교실보다 훨씬 공기가 훈훈하고 화기애애하다.

 

진정한 배움과 서로 들어주는 관계, 그리고 높은 수준의 과제, 이 세 가지가 한꺼번에 만날 때 배움이 성립한다.(57)

 

교실에 따라서 쉽게 가르쳐야 하는 곳도 있고,

어려운 것을 집중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곳도 있다.

 

그런데, '선행학습 금지법'이라는 희한한 법이 생길 정도로

이 나라의 교육은 파행을 이어왔다.

이명박 정권이 만든 그 숱한 '자사고'나 '특목고'에서 어떻게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 아이들을 기른단 말인가?

자사고나 특목고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선행학습을 하면 처벌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초, 중학교까지는 배움의 공동체 이론을 적용하여

교사들끼리 협동하고,

학생들을 발달시키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사교육에서 다 배우고 온 아이들에게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그래.

교사들끼리 모여서 열정적으로 하려고 한대도,

구조적으로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는 한은,

쉽사리 될 리는 없다.

 

가장 썩어있는 곳을 회생시킬 수 있는 것은,

그 썩은 물에서 싹을 틔울 수 있는 교사와 학생들의 힘이다.

노력하는 교사들이 학생들과 좋은 결과물들을 조금 더 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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