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블론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3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해리보슈

이번에는 콘크리트 속에 매장된 블론드의 미녀를 만난다.

 

보슈는

금발 미녀 창녀를 불러 살해한 뒤 화장을 하는 '인형사'를 추적하고,

급기야 범인에게 총격을 가하여 죽이는데...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으로 법정에 서게 된다.

 

법정 드라마로 좀 심심하게 진행된다 싶더니,

창녀들을 이용한 포르노 산업과 관련된 작자들,

포르노 전문 형사, 관련 교수 등이 인형사의 '모방범'일 것으로 추측되면서

급진전을 보인다.

 

이 작품에서는 경찰이 과연 '민중의 지팡이'인지,

과잉 진압을 일삼는 국가 폭력인지,

그 재판대에 선 해리 보슈를 대상으로 공격하는 챈들러라는 유능한 미녀 변호사까지 등장하여,

과연 선과 악을 구분짓는 것이 얼마나 가능한지 씁쓸한 입맛을 다시게 한다.

 

악으로 지목되어 재판정에 선 보슈는

'인형사' 사건과는 또다른 양상의 '모방범'을 찾으러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소설은 제2막을 열게 되고 새로운 재미를 더하고 있다.

 

처음부터 마지막 회에 온 가족이 둥글게 둘러앉아 파티를 하게 된다는

너무나도 뻔한 '대단원'을 짐작하게 하는 한국 드라마와는 다르게,

마지막까지도 범인을 알아맞히기 힘들게 하면서,

급기야 허를 찌르는 살해 대상에 이르기까지,

세상사의 쉽지 않음을 작가는 너무도 절절히 표현하고 있다.

 

재미있다.

그 재미는 단순히 스토리 라인을 따라 흐르는 쾌감뿐만 아니라,

아드레날린이 풍기는 흥분뿐만 아니라,

왠지 인생의 쓴맛을 바라보면서 대뇌 가장 바깥부분에서 진하게 풍기는 전류가

보슈의 말보로 쓴맛처럼 진하게 감겨오는 데서 느껴지는

공감각적 쾌감이라고 하겠다.

 

강력반은 직업이 아니라 사명이란 사실을 그는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떤 인간에겐 살인이 예술이듯,

살인사건 수사도 그것을 사명으로 아는 형사에겐 예술이다.

그리고 사람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을 선택한다.(62)

 

코넬리 소설의 진수는 이런 문장을 만나는 데 있다.

세상 살이는 그래서 어렵고, 재미있다.

 

뛰어난 음악가는,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그를 선택한 것이다.

그에게 어떻게 당신은 음악가가 되었는가, 음악가의 사명은 무엇인가...를 물어야 소용없다.

음악 따위가 인류에게 뭐란 말인가, 하면서 비난해도 본질에 다가설 수 없다.

뛰어난 음악가에겐, 그저 음악이 주어졌을 뿐이다.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직업적 부름을 '소명'이라는 말로 쓴다.

경찰도 그렇다.

돈벌이로 마지못해 하는 사람도 분명 있고,

부업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 일이 그를 선택한 사람도 있다. 보슈가 그렇다.

이처럼, 보슈란 인물을 통하여, 인생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일.

그런 것이 성공하는 '형상화'인 것이다.

 

"이건 갈취야."

"아니지, 병신아, 이런 게 바로 정의야."(199)

 

"잘 들어, 이 좆만 한 새끼야. 보슈가 너희집 강아지 이름이야?

난 네가 첫 번째 법률서적을 열기도 전부터 이런 식으로 처리해 왔어.

그리고 네가 컨버터블 사브를 몰고 센추리시티에 그 이기적인 허연 낯짝을 들이민 한참 후에도

이렇게 처리해 왔다고."(508)

 

경찰은 범인과 맞서 싸우는 최일선에 있지만,

또한 범인을 구속기소하기 위해서는 검사의 지휘명령에 따라야 한다.

세상에는 헌법에서 인정한 '인간의 행복 추구권'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다.

범죄자들은 그 약자들을 이용하고 짓밟으면서 더 큰 이권을 따지만,

늘 법률은 그들을 비호한다. 검찰 조직 역시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미필적 고의로 범죄자들 편에 서는 일도 흔하다.

 

이런 부조리한 세상에 보슈는 빠큐를 날리는 셈이다.

 

당신이 한 일들은 다 얘기하면서 감출 건 또 감추잖아요.

우린 친밀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때려눕힌 남자에 대해선 얘기하면서

왜 당신 자신에 대해선 입을 다물죠?

당신과 당신의 과거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게 뭐죠?

우린 그것부터 풀어야 해요. 해리.

아니면 서로를 모욕하는 걸 그만두든가요.(202)

 

연인 실비아의 질문은 해리같은 남자들의 가슴에 쿵, 하는 큰 발자국소리를 남길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인가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말하지 않는 것과 다르다. 말로 어찌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명확히 알면서 입을 다무는 것이 아님을 실비아가 좀 알아주면 좋겠다.

과거가 추잡하거나 비열하여 감추는 것이 아님을...

 

검은 심장은 혼자 뛰지 않습니다.(221)

 

장르 소설 작가도 이런 멋진 시를 쓴다는 게 놀랍다.

 

진실은 조각조각 드러나기 때문에 나쁜 것처럼 보이죠.(235)

 

법정에서 일어나는 진실 공방은,

사건을 통으로 보지 않고 조각조각, 기억들의 파편을 되짚어낸다.

결국 그것이 진실에 가까이 갈 수도 있지만,

진실을 호도하는 일이기도 한 셈인데,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애쓰는 모든 직업인들이

엉뚱한 파편 때문에 아파하는 일이 있다면,

이런 소설로도 큰 위무를 받을 수 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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