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강의
서대원 지음 / 을유문화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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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은 점서다.

그런데, 단순히 점을 치려고 드는 책이었다면,

'시경, 서경, 역경'의 3경 중 하나로 꼽혔을 리가 없다.

'위편삼절'이라고,

공자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읽었던 책이 주역이었다면,

그 주역은 문왕과 주공이 얻은 삶의 지혜, 자연의 이치에서 격물치지하게 된 그것을

성의껏 마음을 다하여 공부하려던 것이었으리라.

 

그런데,

주역을 공부하기 힘든 것은,

주역의 64개의 괘가 상징하는 바를 익히기도 힘든 판국에,

그 각각의 효사를 점괘처럼 해석해 두는 바람에, 64개의 괘사와 64*6 = 384개의 효사를 읽게 되다 보니,

마치 전화번호부처럼

등장인물은 많은데 줄거리가 없는 식의 책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각 괘의 괘사를 중심으로 설명을 붙였으면서,

각 괘의 효사들을 각각 분리해서 따로 노는 것으로 해석하지 않고,

괘사의 설명으로 라인업을 시킨 것이다.

 

피아노를 배울 때도

처음부터 악보를 잘 읽는 수는 없다.

그런데 자꾸 쳐다 보면, 날마다 습관을 들이면

높은음 자리의 악보와 낮은음 자리의 악보도 익숙해 지고,

사분음표와 팔분음표, 점사분음표까지 익숙해 진다.

 

처음 볼 때는 건태리진 손감간곤 여덟개의 상징조차 낯설어 보이지만,

자꾸 쳐다보면, 그것을 둘 겹쳐 놓은 괘도 익숙해 지는 법이고,

그 괘의 상징도 익숙하게 삶의 이치를 살피는 데 어우러지는 법이다.

 

'풍지관' 괘에 이런 설명이 붙었다.

 

아이와 같이 어리석은 눈을 소인이 가진다면 허물이라 할 수 없으나,

군자라면 옹색하다.

스스로 자신을 알면 진퇴를 정할 수 있고,

군자는 자신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타인과 사물을 보는 도리를 깨달아야 허물이 없다.(250)

 

관은 견과는 다른 것이다.

견은 생각하지 않고 보이는대로 보는 것이며, 관은 생각을 갖고 현상의 이면과 사태의 미래를 파악하는 것.(251)

 

주역을 공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공부의 목표는 이것이리라.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현상의 이면과 사태의 미래를 파악하는 것.

 

주역이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길흉화복의 예언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야할 길을 잃지 않는 인생의 지혜.

어떤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이를 타개하고 전진할 수 있는 삶의 지혜.(256)

 

점서가 필요한 것은 어떤 일을 실행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기 힘들 때이다.

그렇지만, 그 순간을 지혜롭게 잘 넘긴다고 해도,

인생은 끝없는 의문의 여정일 수밖에 없다.

 

생로병사와 비슷한 말로 '성주괴공'이란 말도 있다.

태어나서 나이들고 병들다 죽는 일과,

이뤄지고 살다가 파괴되고 스러지는 일.

그것이 삶의 이치인데, 원형이정... 역시 그러한 의미이리라.

 

수화기제...는 형통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세상 일은 형통한 일은 젊음의 운이니 마지막에는 이로움이 작아진다.

처음이 길하면 끝은 어지럽게 된다.

 

뭐 소인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이치를 따져가며 살아갈 것이나 있으랴마는,

그래도 선인들이 이치 탐구를 위해 들여다 봤던 책들을 읽노라면,

마음이 담담해지면서 세상이 조금은 덜 두려워지는 기분이 든다.

 

그런 것이 고전을 자꾸 읽는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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