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 뻔한 스토리고,

너무 뻔한 드라마도,

결과도 빤하게 내다 보이고,

그렇지만 중독돼서 보게 되는 것이 한국 드라마의 힘이란다.

 

이 소설 역시 헐리우드 영화의 뻔한 정석을 그대로 따른다.

도저히 길거리에서 부딪칠 일도 없는 두 남녀,

그리고 부유함의 극치를 달리는 남자와 돈이 필요한 여자.

 

그들의 공감을 그리는 러브스토리인데,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책이다.

 

내가 윌한테 진 빚이 있어요.

그 빚을 갚으려면 가야만 해요.

누구 때문에 내가 대학에 지원했다고 생각하세요?

누가 내 인생에서 의미를 찾도록,

세상 밖으로 여행을 떠나도록,

야심을 갖도록 용기를 줬다고 생각하세요.

모든 걸 바라보는 내 생각을 바꿔놓은 사람이 누구 같아요?

심지어 나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이 달라졌는데?(511)

 

'사랑'이라는 이름 안에는 무진장 많은 개념들이 녹아있다.

그 용광로 안에는 숱한 개념의 사랑들이 추상화되어 갈무리된다.

자신을 발전하게,

자신을 돋보이게,

자신이 걸음을 걸을 때 걸음에서 활기가 넘치게 해주는 사랑이라면,

참 멋진 사랑이다.

 

루이자는 내가 본 중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인데,

아무리 말해줘도 자기 자신의 잠재력을 보질 못하더라구요.(379)

 

시니컬하게 응대하던 두 사람이

발전하는 사랑이 되기까지

지켜보는 독자는 가슴 졸인다.

 

정보라는 게

얼기설기 뼈대만 갖춘 사실의 형태로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는 걸 언제부터인가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266)

 

이 소설의 주제는 어쩌면 이것인지도 모른다.

사지마비 환자의 삶에서,

죽음이라는 것은 두려운 것일까?

아니면 하나의 해결방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식물인간도 아닌, 자신의 사고를 통해

더이상 삶이 의미없다고 여길 때,

아니 삶은 충분히 의미있지만, 삶의 희열보다 고통이 너무도 클 때,

죽음은 그에게 하나의 해방구임을 인정해주는 일이 왜 인정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만으로 논리를 편다면, 그것은 이래도 저래도 그만인 잡담인 셈이다.

 

하지만, 그것이 한 사람의 실체가 되어 앞에 섰을 때,

그 앞에선 사람은 '실존'의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책을 읽으며 간간이 눈길을 들어 평화롭게 잠든 윌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이렇게 고요한 데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시간을 내 평생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여기서는 내 마음 속의 생각들이 들렸다.

심장 박동 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았다. 그게 너무 좋아서 내심 깜짝 놀랐다.(112)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삶은 결정지어진 형태의 것일 수 없다.

어떤 일을 하든,

어찌어찌 하다 보니 자기에게 주어진 삶이 된 것일 뿐.

깜짝 놀라게 좋아할 만한 일이

생각도 못할 곳에 기다리고 있을는지 모를 일이다.

 

이 소설 속의 '사랑'에서는 그런 것을 보여준다.

자신의 어떤 한 부분에 빛나는 1%를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

그것을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

그리고 그 사람과 눈빛을 주고받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여느 경우에 쓰는 '사랑'이라는 말로는 다할 수 없는 희열이 그 속에 담긴 것임을...

 

이 소설은

스토리를 탄탄하게 이끌어 가면서도(한편으로는 좀 식상한 구조지만)

마치 그 분위기를 독자가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폭신하고 향긋하고 달콤한 상황을 오감이 한번에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묘사가 탁월하다.

 

내 주위로 온화한 바다처럼 부드럽게 일렁이다 가라앉는

편안한 수다가 그리웠다.

아무리 값비싸고 아름다워도 이 집은 영안실처럼 고요했다.(65)

 

소설이 배경을,

그리고 심리를 이렇게 오롯이 살리기도 쉽잖은 노릇이고,

그걸 이렇게 옮겨 놓는 번역도 쉬운 일 아니다.

 

어떤 이는 이런 스토리를 만나면

펑펑 눈물을 쏟을지도 모르겠고,

주인공의 계몽에 감격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이런 이야기에서,

'친구'를 발견한다.

 

흔히 사람들은 주변에 많은 친구들을 거느리고

주기적으로 모임을 하고 술을 마시며,

여행을 하고 돌아다니는 일을 '친구'의 필요라고 여기는지 모르지만,

난 이런 스토리에서 '친구'를 만난다.

그런 친구가 있다면,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괜스레 불러내서 술한잔 하며 떠들 필요 없이도,

그저 마음 속으로 통하는 '그와 그녀'가 있어 행복할 수 있다.

 

외로운 사람은

이 소설을 읽어볼 일이다.

 

 

28. 횡경막...이라고 소리나지만, 한자어이므로 가로횡, 가로지를 격, 막 막, 횡격막...으로 써야 한다. 橫隔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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