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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
서민 지음, 지승호 인터뷰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5월
평점 :
그 이름도 서민적인 서민은
알라딘에서 마태우스란 필명으로 유명한 그 사람이다.
못생긴 얼굴과 예쁜 아내, 개에 대한 사랑을 떠드는 그의 이야기가 처음엔 좀 시답잖아 보였다.
그래서, 어쨌다고?
그런데 이 책의 중반부 이후에는 계속 감탄할 만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3장으로 들어가 왜 기생충학을 하게 되었는지,
기생충학자가 왜 필요한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지승호가 왜 서민을 인터뷰하려 했는지를 간파하게 되었다.
지승호는 천하의 난다 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유명한 '닭 치고 정치'는 나꼼수 신드롬을 일으킨 총수와의 인터뷰이고,
'당당한 인문학'은 힐링마저 집어치우라는 거리의 철학자 강신주와의 인터뷰이다.
그런 그가, 왜 서민을 잡았는지는 이 책을 읽어봐야 안다.
기생충학자이지만,
그는 엄연한 의대 졸업생이고, 의대에 소속되어있는 교수다.
의대 출신이 아니고서는 의대 교수가 되기 힘든 현실에서,
현실 속의 의료 문제 같은 것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으로는 그처럼 적합한 사람도 드물게다.
마침, 그는 희대의 개그본능을 자랑하는 컬투의 베란다쇼라는 프로그램에도
개그맨 비슷하게 참여하는 중이라니, 얼마나 좋은가.
인터넷으로 건강에 대해서 알려는 생각을 버려야...
지금은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인터넷에 일반인이 올리는 글을 읽지 말고,
의학 논문 사이트에 가야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 실력 정도면,
초록 몇 줄만 읽으면 되는 거니까...(173)
응급실을 민간 차원에서는 갖추기 쉽지 않아요.
수가가 낮으니까요.
그런 것은 민간에 맡기지 말고, 국가가 어떻게든 관리를 해야 합니다.(187)
새롭기는 한데 말이 안 되는 것을 개발해서,
효과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시술을 만들죠.
저는 개인적으로 태반주사나 줄기세포 치료가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것들이 나오는 자체가 의사들이 너무 수가가 낮으니까,
양심을 속이고 그런 시술을 하는 측면이 있는 거죠.
이런 와중에서도 양심을 지키며 의료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194)
갑상선 암에 대해서는 유럽의 저명 학술지에서도 과잉 진단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갑상선암이 사람을 위협하려면 최소한 300년 정도 걸려요.
그것도 짧게 잡아서...
사람의 수명이 여든 살밖에 안 되니까 문제될 것이 없다는 거죠.
그런데 진단을 받은 사람 92퍼센트가 수술을 한다더라구요.
심장 시티도 그렇구요...(199)
이렇게 쉬운 이야기로 의료 전반을 다루는 것은 참 필요한 일이다.
그것은 지승호이기 때문에 가능했고, 서민이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기도 하다.
의사협회는 굉장히 보수적인 단체잖아요.
그런데 의협 회장조차도 민영화를 반대하고 잇죠.
민영화되면 의료의 질이 낮아진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233)
믿음직스런 탤런트들 - 김명민, 손범수, 이순재 등-이 나서서 보험을 팔게 된 것이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지만,
암 등의 질환을 계속 들먹거리는 걸 보면,
인천이나 제주 등의 도시를 출발로 하여 이 정권 아래서 민영화가 속속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전화로 상담받고, 키트를 사서 스스로 수술해야할 날이 도래할는지도...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 되니까 정말 어렵더라구요.
뭔가 잘못된 일을 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아예 아무 것도 안 하고 말도 안 하는 대통령이시니까요.
강적이에요. 강적.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런 말도 얼마나 멋있어요.
훌륭한 아들을 두었고 털면 털수록 뭔가 나오잖아요.
그런 소재를 주는 전임 대통령하고, 지금은 아무 생각도 없이.
공포감만 주는.
그렇죠, 무섭기만 한...(280)
시대를 읽는 눈도 날카로우면서도 재미를 놓지 않는 이 사람.
천생 '서민'이면서도 지식인의 할일을 놓지 않는다.
그에게 독서란...
독서는 제 선생님이죠.
끊임없이 저에게 자극을 주고 저를 이끌어주는 좋은 스승...(293)
요즘 세월호 집회 앞자리에서 자리를 지키시는 백기완 선생님을 보면...
참 스승이 없는 시대다 싶어 맘이 짠하다.
그래. 독서가 스승이 되어야 하는 시대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등불 같은 사람을 바라볼 수 있다면 행운이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책을 불사르지는 않는,
작가를 사형시키지는 않는 시대이니 말이다.
그의 이 책 역시 하나의 등불 역할을 할 만한 책이다.
일반인들이 의료 현실에 대하여 쉽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책.
이 책은 결코 '기생충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 '기생충'을 너무 무시하는 눈으로 본다면, '기생충 같은'이 욕된 수식어일는지 모르지만,
서민처럼 기생충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하나의 당당한 존재로서 삶을 살아가는 개체임을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것이니,
'기생충 같은'이라는 수식어에도 애정을 보일 수 있는 것일게다.
222. 어디어디 머무른다는 말을 쓸 때, '체재(滯在)'라고 쓴다. 이 책에서 체제비...라고 잘못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