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두 빚진 사람들이다 - 그러나 물러설 수 없는 희망에 대하여 함께 걷는 교육
송인수 지음 / 우리학교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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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역사적 교훈들은 크나큰 희생을 치르고 얻은 것들이다.

먹는 것만 봐도 그렇다. 어떤 것이 독이 들어서 먹을 수 없는지 우리는 이제 습관이 되어서 잘 안다.

그러나 이는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먹고 죽은 뒤에 안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처음으로 게를 먹은 사람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용사가 아니면 누가 감히 그것을 먹으려 했겠는가?

게를 먹은 사람이 있는 걸 보면 거미를 먹어 본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맛이 없어서 뒷사람들이 더 이상 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루쉰)

 

길은 원래 있어 길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앞서 갔기에, 그곳이 길이 된 것이다.

 

교육운동의 한켠에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이란 단체가 있다.

물론, 전교조의 정치적 운동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전교조와 한겨레신문을 해방 이후 최대의 사건으로 꼽는 이도 있었다.

그만큼 전교조는 정치가 옥죄이기 시작할 때 목이 비틀리는 바로미터로 작용한다.

 

과거에 시민운동을 하다가, 중요한 대목에서 사람들의 과욕으로 일이 망가지는 것을 나는 몇 번 본 적이 있다.

참여정부 초기에 교장제도를 혁신하는 논의 과정에 참여하면서,

어렵사리 보수와 진보가 협상하여 교장 자리의 10%를 확보하는 것으로 타결을 보았다.

그러나 그후 애석하게도 그 10%를 적다 하여

한쪽 진영에서 자리를 터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

그 '한쪽 진영'이 어디인지는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222)

 

교육감보다 중요한 자리가 '교장'이다.

그래서 참여정부 초기에 '교장 자리'를 '공모제'로 시행하려던 제도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전교조는 교육행정정보화 문제를 두고 치열한 전투를 하면서 그 기회를 놓아버리고 말았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 겨우 혁신학교라는 제도가 시작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때 놓쳐버린 물고기가 얼마나 아쉬운지 모른다.

나의 젊은 시절, 열정을 불살랐더라면 좋았을 공간과 시간을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면 잊혀지는 가르침이 아니라,

지날수록 그리워지는 가르침이 되고 싶다.(239)

 

퇴직을 하고 교육운동을 하는 작가가 스승의 날이면,

수구초심이라고... 짠한 마음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천생 교사인 사람이다.

 

내세의 영원, 영광과 환희는

생의 일상을 '초월 beyond' 해 감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과 through' 함으로 경험된다.(262)

우리는 역사의 끝을 보고 지금의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운동은 그 시대 속에 주어진 특정한 주제와의 씨름이다.(260)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신앙 생활과 운동을 하나로 여긴다.

거기서 얻는 점도 있겠지만, 갈등 역시 적지 않으리라.

 

이 책은 작가가 집필한 책이 아니다.

틈틈이 남긴 단상들을 모아 이렇게 책으로 엮을 정도로 늘 생각이 많은 분이다.

그리고 투쟁적이고 극단적이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쓴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배울 일이다.

 

모든 글을 열혈투쟁의 일선에서 격문처럼 써버릇하는 사람들의 글은 독자를 두렵게 한다.

금세 탄압이 물밀듯 휩쓸어 갈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운동의 서있는 자리에서 멀리 보는 사람은 격해져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얻는다.

그러나, 격한 투쟁의 최일선에서 또 부드러운 언사만으로 이뤄지지 않는 지점도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날이 바짝 서있는 이런 사람이라면,

위장이 버텨나겠나 싶다. 신경의 날이 이렇게 날카롭게 곤두섰을 때는,

비위의 기운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한국은 사교육, 각자 제자식 가르치기 열풍의 정글이다.

전교조처럼 정치와 '노동조합'의 협상 일선에서

부조리와 싸우는 사람들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사교육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삶의 밑바탕에서부터

촘촘한 결을 매만지는 운동 역시 발전해야 한다.

 

우리가 외출할 때는 정장이나, 캐주얼, 아웃도어를 그때그때 맞춰 입지만,

부드러운 면으로 된 속옷은 늘상 입고 있는 것처럼,

운동은 '기본기'에 충실한 변함없는 것이어야 함을, 배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핀란드처럼 정치가 합리적으로 개혁된 다음, 교육 시스템이 안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한국의 현실에서는 전혀 접목 가능성이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400년 종살이를 하는 것이나

우리 아이들이 입시 노예로 입시에 종살이하는 것이나, 뭐가 다르니?(177)

 

이것은 그의 어머니의 일갈이다.

자본의 노예로 길들여지는 부모와 자식들의 대물림이 한국 교육의 현사태를 야기했다.

신자유주의 물결은 그 빈부격차를 더 갈라지게 하고 있고, 아이들에 대한 혹사 역시 더 가혹해진다.

마치 노예에게 채찍질을 거 가열차게 하듯...

 

숫자가 적다고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가치의 '보편성'이 가치의 중심성, 주변성을 가른다.(145)

 

이제 아예 대놓고, 법외 노조(= 불법 노조)로 치겠다는 치사한 정부 앞에서,

가치를 붙들고 한 시절 살아야 한다.

사랑이 가득한 조직이라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고민하는 조직이라면, 아무리 짓밟혀도 '보편성'을 추구하는 교육자라는 마음의 자리.

 

지금 변화를 위해 일하지 않는 사람이

더 큰 권력을 얻은 후에 달라진다는 말은 거짓이다.(41)

 

이렇게 제자리를 꿋꿋하게 지키는 분들이 있어서,

그 등뒤에서 어깨만 겯으면 되는 나같은 사람은 든든하고 행복하다.

 

교사나 교육운동에 관심있는 분들이 마음을 열고 읽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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