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외롭고 높고 쓸쓸한 우리학교 작가탐구클럽
소래섭 지음 / 우리학교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석의 시가 교과서에 실린 것은 2002년 개정된 교과서부터이다.

그 이전 1987년 해금이 되기는 하였지만, 교과서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의 '여승'이 교과서에 실렸고,

그의 시집에서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여우난 곬족',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등은

읽는 일 만으로도 힐링되게 하는 짜릿한 맛이 있는 시들이다.

 

달콤한 연인들이 어깨를 맞대고,

백석의 시편들을 읽는다면 어떨까?

아마도, 달밤에 참지 못하고,

'요기요'를 너무 눌러서 '배달의 민족'임을 확인함으로써,

아랫배가 몽글몽글 볼록하게 나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시를 읽노라면, 구수한 음식 내음새와,

추억에 잠긴 어린 시절의 조금은 쌀쌀한 기억과,

조금 쓸쓸하고 외롭고 서늘한 기분에 잠기게 된다.

 

그이의 평안도 사투리나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는 말들 조차도,

조곤조곤 도란도란 들려주는 시골 할머니 말투 같아서,

그 내용과는 무관하게 아련한 추억의 한 페이지

그 낡은 빛깔의 누런 앨범의 한 페이지를 만나는 기쁨같은 것이 그득 밀려든다.

 

요즘 안도현의 평전도 나왔더라마는,

이 책으로도 충분히 백석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평전이 가지기 쉬운

삶의 곁가지들에 대한 묘사에 대한 지루한 고증을 이 책은 과감히 생략해 주신다.

 

물론 그의 여성 편력이 설명되긴 하지만, 그것은 가볍게 터치하는 정도이고,

그의 시들에 대한 아름다운 설명들에 푹 빠져 매료될 법 하다.

 

고야古夜/ 백석 

 

아배는 타관 가서 오지 않고 비탈 외따른 집에 엄매와 나와 단둘이서 누가 죽이는 듯이 무서운 밤 집뒤로는 어늬 골짜기에서 소를 잡어먹는 노나리꾼들이 도적놈들같이 쿵쿵거리며 다닌다

 

날기멍석을 져간다는 닭보는 할미를 차 굴린다는 땅아래 고래 같은 기와집에는 언제나 니차떡에 청밀에 은금보화가 그득하다는 외발 가진 조마구 뒷어늬메도 조마구네 나라가 있어서 오줌누러 깨는 재밤 머리맡의 문살에 대인 유리창으로 조마구 군병의 새까만 대가리 새까만 눈알이 들여다보는 때 나는 이불속에 자즈러붙어 숨도 쉬지 못한다

 

또 이러한 밤 같은 때 시집갈 처녀 막내고무가 고개너머 큰집으로 치장감을 가지고 와서 엄매와 둘이 소기름에 쌍심지의 불을 밝히고 밤이 들도록 바느질을 하는 밤 같은 때 나는 아릇목의 삿귀를 들고 쇠든밤을 내여 다람쥐처럼 밝어먹고 은행여름을 인두 불에 구어도 먹고 그러다는 이불 우에서 광대넘이를 뒤이고 또 누어 굴면서 엄매에게 웃목에 두른 평풍의 새빨간 천두의 이야기를 듣기고 하고 고무더러는 밝는 날 멀리는 못 난다는 뫼추라기를 잡어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내일같이 명절날인 밤은 부엌에 쩨듯하니 불이 밝고 솥뚜껑이 놀으며 구수한 내음새 곰국이 무르끊고 방안에서는 일가집 할머니가 와서 마을의 소문을 펴며 조개송편에 달송편에 죈두기송편에 떡을 빚는 곁에서 나는 밤소 팥소 든 콩가루소를 먹으며 설탕 든 콩가루소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반죽을 주무르며 흰가루손이 되여 떡을 빚고 싶은지 모른다

 

섣달에 냅일날이 들어서 냅일날 밤에 눈이 오면 이 밤엔 쌔하얀 할미귀신의 눈귀신도 냅일눈을 받노라 못 난다는 말을 든든히 녀기며 엄매와 나는 앙궁 우에 떡돌 우에 곱새담 우에 함지에 버치며 대냥푼을 놓고 치성이나 드리듯이 정한 마음으로 냅일눈 약눈을 받는다 이 눈세기물을 냅일물이라고 제주병에 진상항아리에 채워두고는 해를 묵여가며 고뿔이 와도 배앓이를해도 갑피기를 앓어도 먹을 물이다

 

 

경성의 모던 뽀이~의 대표 인사로 잘 생긴 백석.

 

 

 

 오죽하면 수능 언어영역의 사진에 대한 비문학 지문 이미지로 백석을 활용했을라구.

우리 수능 언어팀의 노 팀장님이 백석 팬인 모양이다.

 

이 책은 긴 시간 지루하게 백석을 만나지 않고도,

그의 인생 역정과 그 시대,

그리고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딱 맞춤한 책이다.

 

백석의 시를 닮은 식빵이 있다.

빠리바게뜨에 가면 하얗게 기다란 식빵이 있는데,

그 맛은 어떤 자기만의 맛을 주장하지 않는 겸손한 맛인데,

그것이 그 식빵의 매력이다.

그래서 기품이 있어 보이고,

도도하면서도 담백한 맛이어서,

오히려 어떤 차와도 잘 어울리는 조화로운 맛이랄까.

뜯어지는 느낌도 아주 부드러워서 폭신한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는 기분.

 

이 빵은 백석의 말로 하자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맛'이다.

 

 

 

백석의 시들이 그렇다.

 

어디까지든지 일류의 풍모를 잃지 아니한 한 권의 시집을

그는 실로 한 개의 포탄을 던지는 것처럼 새해 첫머리에 시단에 내던졌다(김기림, 66)

 

이렇게 놀라운 시집이었는데, 그것이 금기로 되었던 시대가 참 아쉬웁다.

그렇지만 뒤늦게나마, 백석의 시를 만나서 이렇게 풍미할 수 있음이 또 다행이다.

 

그의 마음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다양한 것들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즐겁고 편안한 세계(79)

 

일제 강점기, 그의 시대는 조화롭지 못하고 냉혹한 시대였기에,

그의 시들이 담고 있는 포근한 동홧속 세계는 아름다우면서도 애잔한 것이다.

 

하나의 통합된 모습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여우난 곬족'의 '무이징게국'입니다.

국이 끓고 있는 모습은 이 작품에 제시된 모든 장면들에 대한 상징과도 같습니다.

한국 음식 문화의 독특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 '국'은 다양한 재료들이

끓는 물의 열기 속에서 하나로 녹아들어야 맛이 나는 음식입니다.

이 작품의 무이징게국은 뜨거운 열기로 달아오르면서 맛있는 냄새를 풍깁니다.

맛있는 냄새가 난다는 것은 갖가지 재료들이 하나로 어우려졌다는 것을 알려주지요.

그런 냄새를 맡을 때마다 인간은 즐겁고 편안해집니다.(87)

 

이 책은 '참고서'보다는 맛갈나게 설명하면서도,

'평전'보다는 간결하고 명쾌하게 백석을 접하게 한다.

어떤 이에게는 너무나도 맛난 음식 같은데, 아쉽게 아쉽게 이 책을 넘길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게 음식을 즐기는 법이다.

푸지게 많은 음식을 앞에 두면, 질리기 십상.

 

다만 한 사람 목이 긴 시인은 안다

'도스도이에프스키'며 '조이스'며 누구보다도 잘 알고 일등 가는 소설도 쓰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듯이 어드근한 방 안에 굴러 게으르는 것을 좋아하는 그 풍속을

사랑하는 어린것에게 엿 한 가락을 아끼고 위하는 아내에겐 해진 옷을 입히면서도

마음이 가난한 낯설은 사람에게 수백 냥 돈을 거저 주는 그 인정을 그리고 또 그 말을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넋 하나를 얻는다는 크나큰 그 말을(104, 허준, 부분)

 

노천명의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

백석 오빠를 위한 시였다니...

그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의 시는 슬프지만은 않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넋 하나를 얻는다...

친구 허준에게 바치는 글에서 이런 멋진 구절을 얻는다.

그래. 사람에게는 넋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넋의 소통이지, 몸이나 빵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넋의 소통이 가로막히면, 세상이 다 싫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서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118)

 

그의 나타샤는 손에 닿을 듯 닿을 듯 닿지 않는 한 같은 거였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의젓한 사람들과 살뜰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148)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인터넷을 검색해 볼 지어다. ㅋ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175, 흰 바람벽이 있어)

 

이런 시어를 마음 속에 궁글리는 시인의 마음은 얼마나 스산하랴.

그렇지만, 또 그런 시인이 아니었던들,

그 시대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던 많은 이들은 또 얼마나 답답해 했으랴.

 

정지용의 시에는 명편이 주는 눈부심이 있어요.

명장이 수려하게 빚어낸 단아하고도 견고한 미학이

근대시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반드시 경험되어야 할 세계이지요.

그런데 정지용에게 가장 빈곤한 부분이 바로 백석의 득의의 영역입니다.

그게 좀 감각적으로 말씀드리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게 없다는 겁니다.

 

백석의 후기 거의 모든 시편이 명장이 빚은 아름다운 수공예품이라는 생각은 안 들 정도로 투박하지만,

그 안에는 그 사람의 삶의 진정성을 전해 주는 놀라운 힘이 담겨 있어요.

그게 정치적 삶도

미학적 삶도 아닌,

일상적인 삶까지 다 전해 오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이건 서정주에게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일급 텍스트로서 놀라운 대중적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유성호, 좌담 중)

 

백석의 시를 어떠한 한 마디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유성호가 정지용을, 서정주를 이렇게 잔뜩 칭찬한 다음에,

그들에게 없는 것들을 가진 백석이라고 비교우위를 설명함으로써,

최상의 칭찬을 바치는 표현 역시 멋지다.

 

이 책은 얇지만, 결코 그 기품까지 얕지는 않다.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179)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마지막 구절을 읽으면서,

역시 백석을 극찬하는 것은 이런 이유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