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월든의 작가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 Civil Disobedience 의 원제목은 <시민 정부에 대한 저항> 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 이었다고 한다.

소로우의 글을 읽을 때, 월든에서는 고요한 월든 호수의 자연에 깃든 맑은 영혼을 읽고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소로우가 조금 맘에 안 든다. 물론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바도 많다. 특히 이 책의 <시민의 불복종> 부분은 국가, 민족의 개념이 동일하다고 생각하고, 애국은 미덕이라고 강요되어온 우리 나라 사람들이 공부해야할 교과서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이며, 정부는 공정하지도, 정의에 입각하지도 않고 늘 가장 힘이 센 존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 시대적 배경이 미국이란 나라가 생겨서 한창 서부 개척을 이룰 시대였고, 노예의 문제와 멕시코 전쟁으로 미국 내의 두 세력이 치고 받는 시대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국가나 정부라는 개념이 허술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역시 청교도의 결벽증 같은 것이 이야기 곳곳에 등장하기도 한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는 그의 명제는 당시의 국가가 얼마나 어정쩡한 것이었던지를 보여주는 역설적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내가 자라던 시절에는 우리는 <인간>이기 이전에 <국민>이기를 강요당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해야 하는 유교적 수직 질서가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어 있었던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직도 학교에서는 <인간>이기 이전에 <학생>일것을 강요하고 있기도 하다. 국가 인권 위원회란 웃기는 기구에서는 초등 일기장과 두발 단속을 인권 침해라고 규정하였다. 좀 웃기는 나라 아닐까? 초등학생이 일기 쓰는 것, 학교에서 머리 자르는 것을 <인권 위원회>에서 판결내려야 하는...

그만큼 우리는 경직된 사회에서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살아왔던 것이다. 아직도 학교에는 아이들 머리 자르는 것이 <인권 침해가 아니다>고 침튀기며 떠드는 교사가 수두룩하다. 이유는 단 하나. 학생들은 복종하기 때문이다. 우리 학생들은 불복종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아직도 삼강 오륜의 수직적 유교 질서를 학교들은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그런 속에서 <토론 문화>니 <자율적 교칙 제정>이니 하는 것은 결과가 뻔한 눈가림에 불과하다.

세익스피어의 <존 왕>에 이런 구절이 나온단다.

누구의 소유물이 되기에는
누구의 제 2인자가 되기에는
또 세계의 어느 왕국의 쓸만한
하인이나 도구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고귀하게 태어났다.

소로우가 살아온 19세기 초반이 비록 미국이란 신생국이 어메리컨 인디언들의 고귀한 핏물 위에 국가를 세우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그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었는지 모르지만, 현대의 시각에서도 <국가와 나>의 관계, <애국과 반정부 투쟁>의 관계에서 헷갈리는 이들에게 이 책은 귀감이 될만도 하다.

불의의 법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하면서 개정에 성공할 때까지 그 법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이라도 그 법을 어길 것인가.
나는 조용히, 내 고유의 방식으로 정부에 대해 선전 포고를 하는 바이다.

아마, 80년대에 우리가 소로우를 알았다면, 대학생들의 운동의 모토가 되지 않았을까? 그만큼 우리는 글을 전체 맥락에서 읽지 못하고, 자기 취향에 맞고, 의도에 맞는 부분만을 오려서 써먹어 온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200페이지가 모두 이런 이야기라면 딱딱하고 지루했겠지만, 60페이지가 시민의 불복종이고, 나머지 140페이지는 소로우의 본령인 자연과 동화된 삶의 모습들이 빛나는 잉크로 기록되어 있다. 마치 가을날 수직으로 낙하하는 낙엽들의 붉은 빛과 성게처럼 빛나는 밝은 태양 사이로 높게 솟아오른 전나무의 교목들이 '너희 그렇게 살고 있냐? 그렇게밖에 살 수 없겠냐?'며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그의 <가을의 빛깔들>을 읽으면서는, 나는 나무의 종류나 나무의 단풍드는 특징에 대해 잘 모르지만, 아니 거의 문외한이지만, 가을 단풍의 달착지근한 향기와 낙엽 타는 냄새라도 금세 달려들 듯한 낭만이 뇌수 가득히 퍼지는 맛을 본다.

역시 감옥에 하루 있다가 친척이 돈내서 나오는 어설픈 불복종 신세보다는 자연에 대한 예찬이 그의 격에 어울리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그에게서 간디가 <불복종>이란 말을 배웠다고 해서, 그가 철저한 사상가라고 보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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