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청춘은 지각으로 말하자면 활화산이다.

계절로 말하자면 봄이고, 달로 말하면 4월이다.

그래서 4월은 잔인한 달인가.

 

땅 속에서 이유도 모른채 땅 위로 솟구치는 힘에 의하여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그런 애를 쓰는 시기,

남드리 보기에 푸르른 짙은 빛이 아름다웁고,

삶의 시기에 가장 샛노랗고 새빨갛게 빛내는 꽃들의 환상적 아름다움과

잔뜩 긴장해서 팽팽하게 솟구친 암술 머리와 수술대의 꽃가루들의 긴장감이 황홀한 허니가이드를

자외선 번득임과 함께 번쩍, 젊음의 한 순간을 도끼로 찍어내리는 순간들로 가득하던 시절.

 

그런데, 스스로 청춘일 때,

푸를 청, 봄 춘... 그 황홀한 간지러움을, 그 아름다운 게으름과 나른한 쾌감의 지속을

그 순간적인 것들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것이 많은 인생들의 삶의 흔적이다.

박민규가 그랬잖나.

한국인들은 청춘이 없다고...

시험 공부에 지치고, 취업 준비에 질리고,

결혼과 출산, 육아를 오로지 국가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힘겹고,

부모에게 같이 감당해 달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아득한 그 젊음의 시절...

과연, 청춘은 있기나 했던가.

과거처럼 돌멩이 던지고, 날마다 죽어 나가는 친구들 이야기, 노동자 이야기가...

아직도 현재형으로 죽어나가고 있는데,

과연 청춘은 나른하고, 향긋하고, 가슴 두근두근하고, 짜릿한 쾌감으로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인가?

 

김연수의 이 책을 여러 번 들추었다가 말았다.

이번에 다시 '플러스'가 나와서 이참에 읽어보자고 했는데,

이젠 아슴하게 이 책을 읽기 힘들었던 이유를 알 듯 싶다.

 

이 책엔 청춘이 없다.

김연수의 청춘에서 읽은 이야기들을 쓰고 있지만, 그 글들은 뜨겁고 화사하고 짜릿한 것이 아니라,

밍밍하고 싱겁기 그지없는 한시의 세계다. 기대치와 전혀 다른 글을 만나서 덮곤했던 모양이다.

 

시의 원형이라는 게 있다면 바로 당시다.

시인들이란 모자란 것, 짧은 것, 작은 것들에 과심이 많은 자들이니

계절로는 덧없이 지나가는 봄과 가을을 지켜보는 눈이 남다르다.(35)

 

그가 청춘에 이 글들을 읽었다 하니 할 말은 없다만,

기대치와는 한참 엇나간다 싶다.

하긴, 제목만 보고 기대했던 내가 이상한지도 모르겠다.

 

몽골 시인의 시처럼, 그나 나나 수줍음 많고 세상에 나갈 준비 하나도 안 된 청년들이었다.

 

발바닥 아래서 나뭇잎이 바스락

가을 풀이 말랐다.

앞쪽 게르를 향해 가만 - 히 살핀다.

남몰래 정이 들었다.(190)

 

유목민들은 이웃이 유동적이었으리라.

앞쪽 게르의 사람들은 수시로 바뀌어으리라.

남몰래 정이 든 그 마음... 그렇게 밍밍하게 우린 청춘을 어리석게, 청춘인 줄도 모른 채, 보냈던 모양이다.

 

일본 시인 키타하라 하쿠슈의 '세월은 가네'라는 시를 읽으면

가끔 아무런 후회도 없이, 아쉬움도 없이 세월을 보내던 그 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렇게 흘러가던 세월의 속도다.

그 시절이 결코 아니다.(212)

 

그래.

우린 모두,

그 시절이 결코 아니다, 라는 잔혹한 한 마디에 담긴 슬픈 서사들을 알고 있다.

 

이젠 청춘을 흘려보낸 나이에서,

그리워하는 것은

그 시절이 결코 아니다.

 

그렇게 흐르던 시절... 그래도 그 시절이 간혹 그립긴 하다.

남몰래 정이 들었던 무언가도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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