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은 어떤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유명한 철학자 탈레스가 별을 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진다.

그것을 본 하녀가 그를 비웃는다. "탈레스는 하늘의 별을 보는 데는 열심이면서 발치 앞의 것은 알지 못한다."

 

이 책은 고추장이 어떤 사보에 다달이 적어두었던 꼭지들을 모은 책이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대한민국의 철학자들에게 이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소재의 제공처일는지 모르겠다.

어찌 그 지나간 사건 사고들에서 얻은 깨달음들이,

구태의연하고 옛스럽지 않고, 마치 오늘에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새로운 것인지...

 

그리하여, 이 책의 철학은 '가난한 자, 낮은 자'들이 '깨달음'을 얻는 철학에 대하여 쓴다.

현학적이고 박식해 보이는 철학이 아닌 것이다.

'하녀'의 철학에 대하여 쓴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블리주(책무)는 한번도 가져본 적 없이 사회의 권력층에 앉은 노블하지 않은 노블리스들이...

요즘 '하녀'들을 <백정> 내지는 <미개한 백성> 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참 잘 지은 제목이다.

 

요즘은 뉴스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도를 닦에 만든다.

이것이 나라입니까? 물을 것도 없다.

이것은 나라도 아니다.

저것이 정부입니까? ㅋㅋ 슬프면서도 웃긴다. 하는 짓거리가...

역사는 되풀이 된댔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유신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 애비는 비극으로, 딸은 희극으로...

 

철학은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단 하나의 지식이나 정보도 달리 보게 만드는 일깨움(9)

 

이 말은 철학을 정의하는 훌륭한 말인듯 싶어 적어 둔다.

흔히 철학은 세상을 보는 시선, 시각으로 정의하기 쉽지만,

그것은 학문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이나 정보의 늪에서 나름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필터링이 철학인 셈이다.

 

철학은 한마디로 초조해하지 않는 것.(30)

 

조선의 권력자들은 탐관오리들에 있었고,

일제 강점기엔 친일파에 있었고,

군사 독재 시기엔 정경유착의 재벌에 있었고,

이제 국가독점 자본이 세계 경제에 재편되는 시기엔 국가와 재벌의 유착이 고착되는 데 있다.

(국가 조직이 선거를 조작하고, 교회는 자본의 힘으로 선거를 획책하고, 자본은 언론까지 장악하는 복합체)

 

한 번도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경험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지나면서 처절한 배신감을,

전쟁시기 이승만의 만행으로 죽어간 수십만을 보면서 생존의 처절함을 몸소 겪어온 사람들에게는

세포 알알이 들어찬 두려움의 유전자가 불안감에 떨게 만든다.

 

절대로 '빨갱이', '종북', '좌빨'에 들면 안 된다는 초조함을 조장하는 사회인 것이다.

국가의 예산으로 있지도 않은 '보수' 알바들을 동원하여 '맞불집회'라는 쑈를 벌인다.

어떤 조직의 힘이 뒷받침 된 것인지 '보수논객'이란 이름으로 트위터에서 막말을 한다.

아직도 여전히 불안감으로 초조한 나날을 살아가기를 권력은 바라는 것.

 

초조해하지 않아야 한다.

쉽지 않은 말이다.


요즘들어 '외부세력'이란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왜 이해당사자도 아닌데 끼어드느냐고 말한다.

칸트 식으로 말하자면, 구경꾼들의 맘속에 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개인을 넘어 인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일이 아닌데도 아파하고 고통을 무릅쓰는 그것 때문이다.(76)

 

청와대 뺀질이가 그랬다.

'순수 유가족'이 아니면 나대지 말라고...

그 뺀질이는 모르는 것이다.

내 일이 아닌데도 이렇게 아프고,

그래서 고통을 무릅쓰고라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어깨를 겯는 사람의 마음을...

 

신자유주의 정부는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

이때 정부가 표방하는 것이 법치주의다.

정부가 법을 지키자는 강조는

<시장 자체의 실패(사회적 양극화, 빈곤층의 확대)에서 파생하는 여러 사회적 문제를

공안의 시각에서 해결하려고 한다는 데 있다.(181)

 

미국의 월 스트리트에서, 한국의 광화문에서,

영국의 런던 한복판에서,

아주 사소한 법을 어겼다고 경찰들은 몽둥이를 들고 채증을 하고 '법치'를 떠들어 댄다.

그 이유가 참 명확하게 적혀있다.

 

그런데, 법을 지키려면 좀 제대로 지킬 일이지,

겁을 주려고 해산하는 시민들을 연행해서 불편하게 만들고,

카메라 수십 대로 불법 채증을 하고, 심지어 유가족을 미행하는 사찰을 하고,

(하긴, 국가의 사찰이란 불법을 저지르고는 내부고발자를 아주 비참하게 만든 역사가 3년 전에 있었지)

자기들은 명찰을 반드시 달아야 한다는 법을 어긴다.

 

소수자들은 많은 경우

사회에서 식별되지 않도록 자신을 스스로 말소한다.

그리고 다수자들의 목소리를 제 것인 양 그 누구보다 열심히 내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자기 말소는 정반대의 사실을 덮고 있다.

다수자가 자행하는 말소의 폭력 아래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역으로 자신을 말소하는 것이다.(206)

 

한국에서 '빨갱이'가 된다는 것은 26년 감옥생활을 해서 나름 장기수라고 뻐기던 만델라가,

한국 감옥에 와 보고 자기는 얼마나 잔챙이인지를 깨닫게 할 정도로 무서운 일이다.

3,40년 정도 돼야 장기수인 나라가 이 나라이니, 만델라는 한국에서는 장기수 축에도 못 드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빨갱이가 아니다... 는 증명으로 교회를 그토록 열심히 다녔나보다.

헌금을 내고, 군경가족이 아니면 '골'로 가서 학살을 당했던 역사를 떠올리며,

아직도 '좌빨', '종북'이라고 손가락질하면 가슴 한켠이 먹먹하고 서늘하다.

 

'전라도 홍어'라는 비아냥을 일삼는 인간 말종들을 사회가 정화하기는커녕,

아직도 광주는 '폭도'와 '사태'의 어느 지점에서 머물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 금지와 행사에 대통령이 불참하는 날들은,

다시 세상을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도'들로 몰아 소수자로 지목하려 드는 셈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소수자 아님을 증명하려 애쓸 것을 바라는 의도가 다분하다.

 

인문학 강연도 많고 책도 많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말들은 모두가 쓰고 버리는,

심지어 써보지도 못하고 버리는 상품처럼 되었다.

"높이 오를 생각이라면 그대들 자신의 발로 오르도록 하라!"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을 구원해달라며 찾아온 이들에게 던진 말이다.(252)

 

결국 말은 힘이 없다는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단결된 힘만이 힘겹게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

자유를 말하는 것은 피의 냄새를 맡는 일이며,

고독한 혁명을 견디는 일이라고 김수영이 말했다.

 

이 책은 생활 속에서

도대체 세상이 왜 이따위인지 날마다 투덜대며 신경질이 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물론, 이 책을 읽는 일보다는,

길가에서 서명이라도 한 번 더 하고,

광장에 나가서 노란 팻말이라도 한 번 더 드는 일이, 더 철학적인 일임은 자명하다.

그런 것을 이 책은 일러준다.

 

 

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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