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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성석제 지음 / 강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성석제의 수다가 잘 반영된 소설집이다.
그의 장점은 진지하고 무겁고 힘든 세상을, 한낱 수다의 대상으로, 수다를 떠는 재주가 없는 남자들이라면 술주정의 수준이고, 전화세에 얽매이지 않고 수다를 즐길 줄 아는 여성들이라면 본격적인 섬세함으로 수다를 떨 줄 안다.
그의 소설에는 주제 의식이랄 것이 별로 없다. 어떤 이미지, 또는 감상을 떠올리면 그걸로 바로 소설 한 편이 된다. 그것이 그의 수다의 힘이다. 그리고 그의 소설의 재미고...
성석제가 본격적으로 수다를 떨면 '스승들' 같은 소설이 탄생한다. 정말 보잘것 없는 추억들을 얼마나 섬세하게 떠들어대는지, 마치 내가 그의 동창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무래도 4.5초다. 화자가 깡패라는 것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리 나라가 최근 군바리 독재의 나라였고 폭력 정권을 유지하는 데는 정치 깡패들의 힘이 컸다고는 해도, 영화도 깡패, 소설도 깡패, 코미디도 깡패인 이런 세상을 나는 혐오한다. 솔직히 깡패 영화를 보면 감동보다는 지긋지긋하다. 남들이 그 재밌다던 영화 '친구'를 보면서도 난 지겨웠고, '가족'은 아예 보지 않는 것이 나을 뻔했다.
그런데 그 깡패 녀석이 떨어져 죽는데, 약 100 높이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하며, <그는 물에 빠져 죽었다> 까지 걸리는 그 4.5초의 시간에 성석제는 엄청난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초 간격으로 이야기하다가 나중에는 1/70초 단위로 이야기를 한다. 역시 이야기꾼이라고 할 만하다.
바흐친이라는 비평가가 있었다. 소설은 <축제>의 장에서 들리는 <다중 음성>이라고 이야기했던가... 뭐,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데, 성석제의 소설에 적합한 경우가 아닐까 한다. 성석제의 이야기는 항상 좀 시끌벅적하면서도, 그 시끌벅적하고 지지부진함에 지긋지긋해 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 주인공은 나이기도 하고, 너이기도 하고, 누구나이기도 하고, 누구도 아닐 수도 있다. 허구의 인물인 셈이니까...
성석제의 이야기는 가볍다. 가볍다는 것이 장점일 수도 있지만, 단점일 수도 있다. 난 그 장점이 단점을 아우를 수 있으면 좋겠다. 황만근에서는 조금 나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볍고 친근한 수다쟁이 성석제가 조금 더 우리 삶에 가까운 수다를 떨어 줬으면 좋겠다. 도로의 난간을 들이 받고 떨어지는 깡패의 이야기는 재미있긴 하지만, 일어날 법한 허구라기 보다는 <남의 이야기>라고 읽기 쉬우니깐... 깡패 말고, 우리 이야기를 좀더 개그 수준으로 풀어 줄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