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억 전달자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런 책을 읽을 때는, 처음이 쉽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전혀 다른 중력장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위도에서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지구의 자전을 받아들인다.
북위 30도 정도에서는 시속 800킬로미터 가량의 속도감을 까먹고 껌딱지처럼 지구에 붙어 사는 것이다.
적도에 사는 사람들은 시속 1000킬로미터를 달린다고 한다.
매트릭스란 그런 것이다.
거기 붙어서 살 때는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
그런데, '여기'서 '저기'로 갈 때,
말하자면, 적도에서 북위 30도로 물체가 이동할 때, '차이'가 발생한다.
그 힘을 '전향력'이라고 하는데, 푸코가 빠리의 팡테옹에서 실험한 것이 작년 수능 국어영역에 출제된 일이 있다.
진자를 정남에서 정북으로 보내면, 그것이 그 미세한 '전향력'의 영향으로
정북에서 미세하고 오른쪽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 진자는 다시 정남보다 미세한 왼쪽으로 돌아오고,
길게 본다면, 진자는 회전하게 된다.
사람들이 나이에 따라 알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게 다 매트릭스의 조화다.
예전엔 남자 13세 여자 15세 정도면 결혼해서 애낳고 살았는데, 요즘엔 애들로 취급한다.
이 소설 역시 미래형 판타지인데,
나이에 따라 적합한 일을 위원회에서 지정해 준다.
산모도 있고 노동자도 있다.
주인공 꼬마는 기억 보유자로 지정받아, 기억 전달자로부터 '기억'이라는 것을 얻게 된다.
이런 사소한 아이디어로 책을 쓴다는 것이 재미있다.
인간이 가진 능력 중 하나인 '연역'의 힘이다.
'호모 루덴스'는 놀이하는 인간, 이라는 말인데,
'책'은 인간의 놀이 중 최고봉이 아닐까 싶다.
판타지 소설은 '연역'하는 인간의 두뇌가 만드는 가상 현실을 최대한 실현한다.
이 책에서 역시 책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기억 전달자 뿐이다.
과거 인간의 삶과 인간 삶의 '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기억 전달자'와 '기억 보유자' 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뭔지도 모르고 세상의 논리를 받아들인다.
임무 해제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심을 가질 필요도 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기억'이라는 것을 본질로 삼은 주인공 조너스는 '평화로운 마을'의 거짓을 깨닫는다.
완벽한 행복에 이르기 위하여
개인의 선택에 따르는 어떠한 종류의 잘못도 없다는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위험의 소지를 모두 제거해 버린 곳.(304)
어떤 이유로든, 통제의 가지치기는 거짓이다.
아무리 인간의 기억을 지워나가려 해도, 삶의 지혜는 '기억' 속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그것이 책의 힘이니까.
'늘 같음 상태'와 예측 생활에서 벗어난 후,
조너스는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타나는 신기한 풍경에 압도되었다.(289)
지구에 붙은 껌딱지 같은 인간은 전향력을 느낄 수 없다.
늘 같음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통제 사회는 그렇게 해서 불평등한 균형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 균형에 해가 되는 존재는 '임무 해제'시키면 그만이다.
조너스는 방안에 노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혼란에 빠졌다.
마을에서 노인들은 절대로 노인의 집을 떠나지 않았다.
그곳은 그들이 존경받으며 훌륭한 보살핌을 받는 곳이었다.(210)
이 과거의 미래는 이미 현재가 되어버렸다.
상상 속의 미래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방안에 노인들은 없다.
훌륭한 보살핌을 받으며 모두 노인병원에서 죽기만을 기다린다.
까뮈의 '이방인'에서 어머니가 죽기 전 남친을 사귀던 그런 곳에서...
눈이나 썰매는 어떻게 된 건 가요?
날씨를 통제한 거지. 눈이 내리면 식량들이 잘 자라지 않거든.
교통이 거의 마비 상태에 빠지기도 했단다.
그건 전혀 실용적이지 않았지.
언덕도 마찬가지란다.(143)
실용적이지 않은 것들은 모두 '통제'하거나 '제거'하는 사회.
마을 안의 책들은 마을 생활에 도움을 주는 참고 서적들, 마을 소개서, 규칙을 실어 놓은 규정집... 이었다.
하지만 이 방은
벽이 천장까지 온통 책꽂이로 덮여 있었으며
거기에 책이 가득차 있었다.
책의 종류는 수백 권, 어쩌면 수천 권은 되어 보였고,
반짝거리는 글자로 제목이 새겨져 있었다.(126)
기억 보유자로서 기억 전달자를 처음 만난 장면이 서가였다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판타지 소설 속에서 나는 통제 사회에서 벗어나려는 '사상의 자유'를 본다.
아주 저렴한 이름 '해리 포터'가 블링블링한 집안의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보다 나아질 수 있는 곳이며,
질서라는 이름으로 획일화를 강요하는 '빅 브라더' 들에게,
빠큐~를 날려줄 수 있는 '창의성'의 파워를 느낄 수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