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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핑크와 블루가 있다.
뭐가 다른가 봤더니, 표지가 다르단다. 참 기이한 일이다.
책도 암수가 있나?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아류쯤 되시겠다.
그런데 그 책만큼의 깊이는 없고,
그러니까, 어디 가서 사랑학 개론이라고 늘어놓을 만한 깜냥의 깊이는 없고,
다만, 흔히 사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말들에 대하여...
어떤 낱말엔 어원의 풀이를, 어떤 낱말엔 가벼운 상념을,
어떤 낱말엔 유럽 어족의 말들을 써내려간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의 뒤표지만 참고하여 책을 구입하면, 책값 14,800원이 심히 아까울 수 있다.
뒤표지에 적힌 아름다운 말들은,
이 책에서 내가 가려 읽고 싶고 누군가에게 읽어주고 싶은 구절들을 쏘옥~ 뽑아 둔 것들이었다.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아니, 사랑 없이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랑 없는 삶은 제대로 된 삶에 이르지 못한 삶이다.(5)
서문에서 이렇게 쓰고 있지만, 여기서 쓰인 '사랑'의 의미조차 뒤섞인 말이다.
자연을 사랑하자~부터 오늘밤, 사랑하고 싶어라~까지...
서문의 제목이 <사랑의 알고리즘>이다.
아포리즘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알고리즘엔... 글쎄? 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명확히 정의된(well-defined) 유한 개의 규칙과 절차의 모임.
명확히 정의된 한정된 개수의 규제나 명령의 집합이며,
한정된 규칙을 적용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
[네이버 지식백과] 알고리즘 [algorithm] (컴퓨터인터넷IT용어대사전, 2011.1.20, 일진사)
명확히, 한정된, 정의나 규칙, 절차, 명령의 집합이라고 설명된 '알고리즘'을 스스로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사랑의 말들에 대한 잡감>이라고 쓰고 있으니 자승자박인 셈이다.
몸이 있는 탓에 이렇게 너와 떨어져 있어야 하지만,
몸이 없다면 어떻게 너를 만져볼 수라도 있을까?(몸)
이런 젖은 말들을 듣는 일로도 마음은 아슴아슴하다.
내 정인 情人의 마음자리(살갑다)
그 느낌은 이해가 가지만, <마음씨가 부드럽고 상냥하다>거나 <닿는 느낌 같은 것이 가볍고 부드럽다>는 원뜻도 예쁜데,
정인의 마음자리...만으로 퉁친 것은 불만스럽다. 심히...
그의 서술 방식이 일관성이 없고 지나치게 들쑥날쑥 울퉁불퉁한데서 미감이 떨어지는 느낌...
바람이 들다 ; 권태가 치료되기 시작하다.
설렌다는 것은 누군가가 당신 마음 속의,
그러므로 당신 몸 속의, 사랑의 버튼을 눌렀다는 뜻이다.
당신이 접속됐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당신의 혈관에 미약을 주사했다는 뜻이다.(설레다)
설레는 마음을, 보이지 않는 바람결을 흔들리는 나뭇잎으로나 표현하듯,
미약을 주사한 혈관이나 버튼 눌린 마음으로 표현한 것은 멋지다.
그러나, '사랑하다'는 옛 의미가 '생각하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었음을 알면서,
설레는 마음에도 '순간적인 주사나 버튼' 이외의, 지속적인 '생각'을 포함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스스럼이란 스스러운 마음이라는 뜻이다.
사랑이 하나의 과정이라면 그것은 스스럼이 없어지는 과정이다.(스스럽다)
나는 '무람없다'는 말을 좋아한다.
'예의를 지키지 않으며 삼가고 조심하는 것이 없다'는 말인데,
스스러운 사람에게나 대할 수 있는 태도고,
그렇게 살가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삶의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그리움의,
그러므로 모든 사랑의 밑감정.(애틋하다)
'사랑하다'에서 온갖 종류의 사랑을 늘어 놓고,
모든 사랑의 밑감정이라고 들이밀면 곤난~하다. ㅋㅋ
애틋함은 에로스적 사랑의 밑감정으로는 적절할지 모른다.
'네가 곁에 있어도 네가 그리웁다'고 할 정도의 먹먹한 상태라면 말이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잘까 하노라(임제)
어이 얼어자리 무삼 일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한우)
임제와 한우의 시조는 그 자체로 '어울림'이자 '얼음'의 수작이다.
시조가 얼어서 교접을 하는 듯한 야릇한 느낌.
찬비와 寒雨의 어울림,
제법 몸이 노곤노곤해질 법한 시다.
한국어에 대한 내 사랑이 끔찍이 도탑다는 사실이다.
그 사랑은 결핍으로서의 사랑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그리움이다.
그 사랑을 결핍으로서의 사랑으로 만드는 것은
모국어의 무늬가 머지않아 맞게 될 마모의 운명, 말소의 운명...(1995년 서문 중)
빠리~에서 보낸 시간들 중,
모국어에 대한 결핍으로서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한 그가 안쓰럽게 기특하다.
2009년에 나온 '어루만지다'와 어울릴 법한 책인데,
거친대로 그의 사고의 결을 더듬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