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 나보다 타인이 더 신경 쓰이는 사람들 심리학 3부작
박진영 지음 / 시공사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교실 맨 앞줄에 한 학생이 앉아있었다.

그 학생은 눈을 반짝거리며 온 힘을 다해 수업에 열중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난 후 내용을 묻자 잘 대답하지 못했다.

수업 내내 그 학생의 머릿속을 지배했던 것은,

선생님과 다른 학생들에게 좋은 학생으로 보이고 말겠어, 라는 생각이었다.(49)

 

내가 그랬다.

다른 사람들에게 비정상적일 정도로 의식이 쏠려있었다.

그렇다고 외모나 태도를 세련되게 만드는 멋쟁이도 아니었고,

그저 착한 사람 콤플렉스로 살아왔던 때도 있었다.

 

어쩌면 책을 읽게된 것도 그런 연장선의 작업이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책 속에서는 나쁜 놈을 욕하면서, 나만의 정의를 세울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나이가 들어선지, 세상에 나쁜 놈이 없어졌다.

다들 제 자리에서 살고 있을 뿐이었다.

다들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 오르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는 것이었다.

 

전반적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데에는,

기쁨의 크기와 총량보다 기쁜일들이 얼마나 자주있는가,

즉 빈도가 더 중요하다.(98)

 

그래서 카르페디엠~ 현재에 충실함이 의미있단다.

오직 커다란 한 건의 성취만을 바라보면 행복할 수 없다.

거시적 노력이 아니라, 소소한 행복을 느끼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의 성격은 씨앗과 같아서 잘 변하지 않는 유전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4상설, 8상설, 9개의 애니어그램...등으로

그리고 어려서 만들어진 성격의 기본 토양은 잘 변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4주 8자를 가지고 운명의 이치를 따지는 명리학이 다 나왔을까.

 

인간의 숫자만큼 다양한 성격과는 다르게,

인간은 사회 속에서  고통받는다.

 

원래의 성격을 죽이고 성격이 아닌 다른 지침에 따라 행동한다.

이렇게 필요에 의해 타고난 성격대로만 살지 않고,

성격과는 맞지 않는 행동도 애써 하는 것을 자기 통제라고 한다.(133)

 

일제 강점기에 저항을 했든, 부역을 했든, 다들 자기 성격과 맞지 않지만 살았을 수 있다.

내가 살아온 시대 역시,

부정과 독재에 저항하는 삶을 '지침'으로 삼던 시대였다.

나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고 '소음인'적 성향으로 가득한 인간인데도,

'자기 통제'에 따라 저항적 인간으로 보이게 된다.

소음인이 저항적으로 되면, 끝을 보고 만다는 단점이 있다.

 

난 변화를 그닥 좋아하지도 믿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세상이 너무 답답해서 미치겠을 때가 있다.

교실에서 착실하게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이 거짓된 세상이 답답해 속터진다.

 

마음 읽기가 어려운 이유는

기본적으로 본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려면

자기중심적 생각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엄청나게 기울여아 한다.

생각의 전환과 동시에

갑자기 수많은 정보들(그 사람의 성격 등 내 상황과는 다른 그의 상황에 대한 정보들)을 고려해야 하는 수고까지...(174)

 

이렇게 삶은 오해로 점철된다.

나는 남에게 사랑받고 관심끌고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타인들의 시선은 다들 오해 투성이다.

 

희미한 착각 속에 화려한 오해

 

결국 삶은 이런 과정에 불과할는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불리하거나 약하다는 인식 자체가

우리를 상당히 움츠러들게 만들고

수행 또한 떨어뜨릴 수 있다.(267)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직원들을 행복하게 만들기.(271)

 

존중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사람을 꽃피게 한다.

순간순간 환한 햇살 한 줌이 내 마음 속 심장을 간질간질하게 하는 날,

모든 일은 아름답다.

비록 좀 흔들리고 삐걱거리는 순간도 있지만,

그런 경험은 유쾌한 일상 속 양념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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