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문학과지성 시인선 442
나희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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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갑오년은 말띠해다.

甲이 동방이고, 빛깔로는 푸른 빛이라고 해서 '청말띠' 해라고 하는데,

나희덕도 말띠고, 나도 말띠니, 이제 다음 말띠해엔 환갑이란 소리 되시겠다.

홍콩에 가서 하도 말 그림이 많아서 찍어 왔다.

말들이 돌아왔다.

다음에 그들이 돌아오면... 할아버지다. ㅎㅎ

그 할아버지가 돌아오길 기다린다.

 

떠난 자는 떠난 게 아니다.

불현듯 타자의 얼굴로 돌아오고 또 돌아온다.

 

그들은 떠남으로써 스스로를 드러내고,

끝내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된다.

사랑하는 것들은 대체로 부재중이다.

 

떼어낸 만큼 온전해지는, 덜어낸 만큼 무거워지는

이상한 저울, 삶.

 

이미 돌이킬 수 없거나 사라진 존재를 불러오려는

불가능한 호명, 시.(뒤표지)

 

뒤표지 구절이 참 인상적이었다.

덜어내면 마음에 무게가 실려서 무거워지는 이상한 저울같은 삶과,

불러올 수 없는 것을 호명하는 불가능한 행위, 시짓기를 생각한다.

 

수만의 말들이 돌아와 한 마리 말이 되어 사라지는 시간

흰 물거품으로 허공에 흩어지는 시간(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부분)

 

시인에게 말이란 숙명은

잡을 수 없는 무지개를 좇듯이, 불가능을 호명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말은 불현듯 돌아와 내게 기댄다.

흩어지지만 돌아옴을 기대하는 시간들...

 

마치 잠이 든 것 같았다 너는

그 침묵의 벽을 탕 탕 쳐보지만

단 한 마디 메아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너를 만진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쥐었다

희로애락으로 출렁거리는 표면,

오직 너의 잠든 얼굴만이 잔잔하였다

피부란 얼마나 깊은 것인가(피부의 깊이, 부분)

 

죽은이는 하나의 표정으로 남는다.

피부가 고정되어 출렁거리지 않는다.

희로애락이 거기서 밀려오고 밀려가지 않는다.

산 자의 피부는 죽은자의 잠든 피부에 비하여 얼마나 깊은 것인지,

매일 보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거리감에 다가선다.

 

석수장이에게 이렇게 새겨달라고 부탁했다

 

내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릴케의 기도시집 중) (묘비명, 부분)

 

말들이 돌아오고,

그의 곁에 죽음이 함께한 시집이다.

 

 

그가 사라졌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를 보여줄 수 없지만

그가 없다는 것도 보여줄 수 없군요

 

물이 증발한 종이 위의 희미한 얼룩

 

어둠이 등뼈에 불을 붙이고

등줄기가 타들어가는 소리를 듣고 있어요

 

눅눅한 생각에서 피어오르는 냄새

벽을 어지럽히는 그을음

금이 간 거울

재채기처럼 쏟아지는 기억

수도꼭지에서 똑 똑 떨어지는 물방울

 

이제 밤이 길어지리라는 것을 알아요

 

어둠이 등뼈를 다 태울 때까지

낮도 밤도 없이 길고 긴 잠을 잘 수 있었으면

 

밤이 지나면

독수리가 간을 쪼러 다시 찾아오겠지만(추분 지나고, 전문)

 

추분.

한 해의 3/4쯤이 지나간 시점.

삶을 그정도 살아낸 시점.

 

삶은 종이 위에 남은 물의 증발한 얼룩처럼 희미한 존재감.

살다보면,

생각은 눅눅하고,

거울엔 금이 가고,

불현듯 재채기처럼 기억이 확 쏠리고,

아무리 잠가도 수도꼭지에선 똑 똑 기억의 저편과 소통하려는 기억이 떨어진다.

 

그녀의 발은 알고 있다

삶은 도약이 아니라 회전이라는 것을

구멍을 만들며 도는 팽이처럼

결국 돌아오고 또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녀의 손은 알고 있다

삶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에 가깝다는 것을

가슴에 손을 얹고 몇 시간째 서 있으면

어떤 움직임이 문득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동작은 그렇게 발견된다는 것을

 

동작은 동작을 낳고 동작은 절망을 낳고 절망은 춤을 낳고 춤은 허공을 낳고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길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녀는 아는가

돌면서 쓰러지는 팽이의 낙법을

동작의 발견은 그때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동작의 발견, 부분)

 

우리의 삶은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일이 아니다.

주어져있는 요소들을 발견해내는 눈을 찾는 일이다.

발견은 문득, 온다.

삶은 달리기나 도약이 아니라,

돌고 또 도는 팽이의 회전이란다.

그 회전은 절망과 허무의 수피들의 '세마춤'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세마춤은 결국 그 회전을 깨닫는 과정일는지도...

 

회전문에 갇힌 이 세마젠(세마춤을 추는 사람)은 쓰러지지 않는 팽이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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