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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파산 - 2014년 제2회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당선작
김의경 지음 / 민음사 / 2014년 3월
평점 :
Arbeit Macht Frei...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노동은 인간을 살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노동이 주어지지 않는 세계는 암담하다.
그런데, 노동이 자유케 하리라는 저 문구가... 나찌의 유태인 수용소에 붙었던 거여서...
의미가 삭막해지고 만다.
일본에서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고,
또 일자리에 얽매여 적은 월급에 구애받기 싫어 아르바이트로 옮겨다니는 말로 '후리타(free-arbieter)'란 말을 쓴 것도 제법 되는데,
이제 한국에서도 '프리터'라는 용어로 알바생들을 부른다.
불안정한 고용과 소비 중심의 사회의 톱니바퀴 사이에서
젊은이들은 '자유-일'의 사이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무리 경쟁에 이기려고 공부를 하고 스펙을 쌓아도,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은 떨쳐지지 않는다.
또다른 '포로 수용소'의 구호가 아닐는지... 두렵다.
이 책은 '프리터' 생활을 하고 있는,
한 젊은 여자의 파산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언뜻 '화차'의 경제적 파산과 인생의 파산이 겹쳐지기도 하는데,
서울의 각 동네를 병렬적으로 연결하고 그 동네의 특성을 설명하는 부분은 재미도 있지만,
너무 나열식으로 쓰여지고 있어서 좀 지루한 느낌이다.
각 동네를 돌면서 '상가 수첩'은 배달되고,
동네에 얽힌 추억들이 아르바이트를 중심으로 이야기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파산난 청춘도 꽃필 수 있다'는 희망을 남겨주는 여운이 다소 생뚱맞다.
'난쏘공(조세희)'이나 '원미동 사람들(양귀자)'처럼
각편의 이야기들이 전체적으로 조합되면 하나의 주제를 향해 일관되는 힘이 응집되어야 하는데,
이 소설의 각편들은 외롭다.
더 강력한 본드가 필요하다.
내가 시간당 2700원을 받는 것을 비웃듯이
한 시간 동안 손목을 몇 번 까딱거려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부르며
허리를 몇 번 흔드는 것만으로도 8만원이라는 거금을...(95)
아르바이트의 늪에는 이런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
두려운 유혹이다.
빚에 시달린 이후로
무언가에 조용히 몰두하는 것이 힘들었다.
늘 신경을 곤두세운 채 하루하루를 무사히 흘려보내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했다.
때때로 나 자신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내가 마당에서 기르는 개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124)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의 주인공 역시 가난과 빚에 시달리면서
삐뚤어진 삶을 살게 되는데, 그것은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 사회적 동력이 크게 작용한다.
근데 누나, 남자들은 웬만하면 살아.
군대에서 갈굼당한 게 어딘데...(136)
이런 무서운 말을 함부로 하다니...
그래. 군대의 무자비한 폭언, 폭력과 수직적 질서, 무조건적 복종은,
뇌를 하얗게 표백하는 과정의 하나일 수 있겠다.
진정 건강하지 못한 사회다.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난을 친다.
하루 종일 육체 노동을 해서인지
일하는 중에도 자꾸만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몸으로 반복적인 일을 한다는 점에서
노동과 그림 연습은 비슷하지만
그로 인한 즐거움은 차이가 있다.
사실 일은 계속해서 하기 싫지만
노동으로 인해 몸이 피곤해질수록 그림을 그리는 일은 더욱 절실해진다.
'달과 6펜스'의 찰스 스트릭랜드도 그랬을까?(184)
사회가 청춘을 자꾸 파산으로 몰아갈지언정,
청춘은 파산나지 않았으면 좋겠음을... 진심으로 간절히 바라게 된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고 싶어한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은 축복받을 일이다.
그러나... '삶의 의욕을 북돋우는 일'과 '무의미한 노동' 사이엔 어마무지한 거리가 놓여 있다.
마치 드라이브의 상쾌함과 운전...의 피로함 사이의 느낌처럼,
일은 우리를 자유케할 수도 있지만,
현실세계에서 인간은 '알바 천국을 누빌 자유'라는 속박에 묻혀 청춘을 힘들게 한다.
세계화 시대,
세계로 뻗어나가는 청춘이 아니라,
세계의 노동 착취 대상으로서의 청춘으로 비쳐지는 미래의 그늘이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