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메리 웨스트매콧...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른 필명이란다.

 

애거서 크리스티를 추리소설 작가로 알고 있는 나는,

주인공 조앤이 낯선 곳에서 머물게 되었을 때,

어떤 피비린내나는 공포스러운 상황에 닥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이 책에선 피 한 방울 흐르지 않고,

누구도 죽지 않는다.

 

왜 이 책을 필명으로 냈는지 이해가 간다.

나처럼 애거서 크리스티란 이름을 듣고 산 사람은 필연코 당황했으리라...

 

길비 교장의 목소리는 오케스트라 같다.

부드러운 첼로 음에서 시작해서

악센트가 있는 플루트의 음으로 칭찬을 하고,

소리가 깊어지면서 바순의 음으로 경고를 했다.

그런 다음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금관악기의 음으로 간곡한 권고를 쏟아냈다.

가정적 여학생들에게는 아내와 어머니의 의무를 바이올린의 낮고 부드러운 음으로 타일렀다.

훈화의 마지막 대목에서야 교장은 피치카토로 말했다.

"인생은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한다. 자기만족에 빠지면 안돼."

그런 다음 대규모 오케스타라가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소리로 말을 이었다.

"인생은 지속적인 진행이어야 한단다. 고통과 괴로움이 닥칠 거야.

그것을 모른다면 네 길이 진정한 길에서 멀리 벗어났다는 이야기야."(115)

 

이 부분은 주제를 함축하고 있지만,

음악에 비유된 표현 자체가 아름답다.

이 부분을 몇 번이고 되읽어도 아름다움은 줄지 않는다.

 

학교에서 가장 순종적이고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온통 혼란스러운 것들 투성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 그렇다.

 

스스로 아주 우아한 여성인 체 하며 살아온 시간들에 맞닥트려

자신을 만나는 순간,

삶의 여러가지 모습들이 자신을 가르친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엄마는 늘 차분하고 지각 있으시니까."(167)

 

자녀들은 이렇게 엄마의 세계를 괄호 안에 넣어 버린다.

남편 역시 우아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아내와는 다른 세계에서 고통받으며 죽어간 친구의 편임을 깨닫는다.

그 친구 레슬리는 조앤과 완전히 상반된 쪽에서 묘사된다.

 

극심한 통증에 시달린... 그런데 씩씩했던...

병색이 짙고 꼬챙이처럼 마르긴했어도, 전과 똑같이 웃고 농담하고 그런...

셔스턴 부인은 슬픈인생을 살았지요.

감히 말하자면 그나마 죽어서 고생에서 벗어난...

유서에는 "내가 그곳에서 아주 행복했기 때문"이라고 쓴...(193)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는 조앤은 남편과 레슬리의 삶의 거리를 고찰한다.

 

고통과 가슴 타는 갈망.

두 사람은 1미터 남짓 떨어져 앉았다.

1미터 남짓이었던 건

그보다 가까우면 안전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레슬리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는 게 분명했다.

혼란스러웠던 로드니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 사이에는 전기장처럼 갈망이 흐르고 있구나.

그때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했어.

하지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레슬리가 이렇게 한 번 중얼거렸을 뿐.

그대의 영원한 여름은 퇴색하지 않으리.

쿠션은 색이 바랬다. 레슬리의 얼굴도 그랬다.(255)

 

사랑하는 마음은,

나이가 들고, 얼굴이 바래고, 쿠션의 푸른 빛이 바래더라도 퇴색하지 않는다.

반면,

뜨거운 갈망 없는 봄날...

조앤은 그 봄날을 회상하며 이 구절을 읊는다.

 

그 봄 이후... 우리가 처음 만나 사랑한 봄 이후...

나는 쉬운 삶, 나태한 사고 방식, 자기만족, 고통도 감당할 수 있는 것만 골라서 두려워했어.

내가 그대에게서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219)

자신의 자리를 지킬 뿐,

그 봄에... 자기 자리에 그녀는 없었다.

 

여성으로서의 삶에 지나치게 속박되어 살아온 이들에게

이 소설은 굉장한 혁명적 울림을 들려주는 책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고요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일이 아주 우아한 삶이라고 착각하며 살던 피동적 인물들에게,

곧 닥쳐올 피비린내나는 전쟁과 역동적 삶으로 가득한 현대가 다가섬을 깨우치던 시절에,

마치 오케스트라의 클라이맥스를 상상하듯,

작가는 뜨거운 삶에 대한 조언을 던진다.

 

거기, 너는 있냐고... 물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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