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나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4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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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파라나의 뜻을 속표지에 적어 두었다.

'마음이 푸르러서 언제나 싱싱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아이'란 뜻이란다.

아마 '청소년'이란 말이 좀 형식적이어서 만들어낸 말인가보다.

 

그렇다.

청소년은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의 청소년의 달 구호처럼 싱그러워야 한다.

그렇지만, 모든 전쟁터에 휘몰려 나간 것도 청소년들이고,

신자유주의 광풍으로 88만원 세대가 될 것도 청소년들이어서,

정서적 공황을 맞고, 각종 폭력과 언어 폭력 등으로 드러나는 것들이 그들이다.

소극적으로 인터넷, 게임 중독 등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전쟁, 기아, 가난, 이산가족, 등등 고난의 그림자는 성인들이 다 감당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청소년들 역시 그 그늘에서 생채기를 입어 온 것.

 

이옥수 작가는 그런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꾸준히 보인다.

아이들의 아픔에 '너만 아픈 게 아니야'라는 위안을 주려는 듯,

동병상련의 시선을 따스하게 쏟는다.

추위를 견뎌온 아이들에게 북풍은 옷깃을 더 여미고 이를 악물게 만들었지만

햇볕이 옷을 벗게 하였듯,

상처입은 자리가 낫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다스한 환경이 필요하다.

 

부모가 모두 장애인이어서 온갖 지원을 받아온 주인공 백정호.

효은이라는 짖궂은 친구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둘은 같이 비를 맞는 동병상련의 우정을 나눌 줄 안다.

 

삐뚤어진 정호가 인터넷에서 안티 카페를 통해 언어폭력을 저지를 때에도

친구는 옆에서 어깨동무를 겯어 준다.

 

정호는 좋은 일도 싫은 일도 혼자서 화내고 미워하고 자책하면서

그저 속으로만 꿍꿍 뭉치고 살았다.

 

그래서 정호는 전갈을 기른다.

세상을 다 엎어버릴 분노를 독침에 감추고 버티는 전갈의 생존법.

삶의 고통이 그에게 틱 장애까지 주어서 고등학교를 집에서 먼 곳으로 지원하지만,

가난의 그림자는 그를 '착한 아이'의 이미지로 얽어매려 든다.

그에게 주어진 효행상도 상금도 위로나 격려보다는 상처로 남는다.

그런 마음은 같은 상처를 안고 살아온 이들끼리만 아는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말은 장애물 경기야.

마치 걸려서 넘어지면 재수없을 것 같은 그런 말.

그런 말을 개념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니까 비장애인들은 무의식 중에 장애인들을 재수없게 여긴다니까.(180)

 

장학금도 자칫하면 상처가 된다.

이런 상처를 안고 오래 살면 곪아서 몸의 일부처럼 작동한다.

그래도, 그에게 대숲같은 친구가 있어 다행이다. 

 

독을 품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고,

자존심을 지킨다는 뜻이야.

전갈답게!(270)

 

청소년들은 이렇게 예민하다.

안아줄 때도, 표시나지 않게, 자존심을 다치지 않게 안아줘야 한다.

그들에겐 전갈처럼 독이 있으니 말이다.

 

나이 들면

무심히 떠나실 부모인데도,

그들의 상처엔 소금처럼 따갑기만 할 수도 있다.

그런 날엔 이런 시라도 읊으며 먼 하늘 우러를지도 모르지만...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신 어머니는
고사리와 취나물을 잔뜩 뜯어 오셨어요
머리엔 솔잎이 머리핀처럼 꽂혀 따라와
마루에서야 뽑아졌구요

어머니는 두릅이 죄다 쇠서 아깝다고 몇번이나 되풀이하며
무심히 떠난 아버지를 중얼거렸는지 몰라요


가족사진에 한참이나 감전되어 있던 어머니가
취나물을 다듬기 시작했어요
어머니는 웬일인지 연속극을 보지 않으셨어요
왜 그랬을까요 어머니는
아버지 냄새에 취해 있었던 건 아닌지
느그 아부지는....느그 아부지는.....
취나물은 다른 때보다 아주 천천히 다듬어졌어요
느그 아부지는 취나물을 별시랍게도 좋아혔는디,
어머니가 갑자기 훌쩍거리기 시작했어요

그러게 취나물은 뭣허러 뜯어와서 그려요,
그런 어머니가 미워서 나는 방을 나왔어요
사실은 나도 울 뻔했으니까요 그리고 다짐했어요
내일 아침상에 올라온 취나물은 쳐다도 안 볼 거라고,

별들도 이 악물고 견디고 있었어요 (박성우, 취나물)

 

작가는 이 소설을 자신을 씻는 도구로도 썼다.

 

이 글을 마치기 전에 따뜻한 마음 준비하고 내 어린 날의 아이를 만나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어른이 된 그 아이에게 꼭 이 말을 전하고 싶다.

고맙다. 아이야.

그 오랜 세월동안 슬픔을 참아내며 꿋꿋하게 잘 살아 주어서.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누가 뭐래도 넌,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어.

이제부턴 더욱 힘차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거야.

힘내. 언제나 널 꼭 안아 줄게. ('작가의 말'에서)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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