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하고, - 김민정 산문
김민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자고 나면 태어나는 게 시인이다 할 정도로

수만 대군을 자랑하는 한국의 시 풍토 속에

그러나저러나

예나 지금이나 시집은 왜 그렇게 안 팔리나 몰라요.(168)

 

그건

각설하고,

한국에서 책이 안 팔리기 때문이고,

시집은 책에 포함되기 때문이고,

그나마 괜찮은 시집도 적기 때문이다.

 

김민정의 산문집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저런 매체에 실린 단상들을 실어둔 상 싶다.

내가 별로~로 여기는 칼럼 같은 잡문들 모은 책...

 

책, 책처럼 안쓰런 얼굴이 또 있을까요.

보자마자 쉽게 돌아서는 변덕스런 독자들 얼마나 부지기수던가요.

한 줄도 너무 길다고는 했다지만

의미심장한 한 문장을 건지기 위해 오늘도 밤을 새는 작가들에게

그나저나 아침은 왜 그렇게 일찍 들이닥치나 몰라요.(177)

 

이런 구절들을 보면 그는 천상 작가다.

언젠가는 뜨거운 심장으로

독자들의 심장으로 바로 건너오는,

직지인심하는... '느끼게 하는' 시를 쓰면 좋겠다.

 

그의 뜨거움을 느낄 수 있는 구절들을 톺아 보았더니, 거개가 '작가'들에 대한 평이 담긴 부분들이다.

그중, 나도 좋아하는 장석남에 대한 글은 숫제 뜨거운... 고백이다.

 

시인 장씨. 내겐 친정 오라비 같은 사내라 큰오빠로 저장되고 불리는 석남 장씨에게 부럽다 할 곁가지들이 꽤나 많아서요.

가끔 그가 밑동 굵은 나무라는 걸 알면서도 폴짝폴짝 그 가지들을 탐해보려 손을 뻗어볼 때가 있습니다.

갖겠다는 욕심만으로 가질 수 없는 게 어디 사랑이나 비단 돈뿐이겠습니까.

재주만큼 어떤 재주로도 가질 수 없는 타고남이라는 것 또한 그럴진대

석남 시인이 딱 그짝입니다.

애초에 시인으로 생겨 먹고 나날이 시인으로 굴러먹더란 말입니다.

양평 길을 저도 수차례 오간 기억이 있습니다만 해장국집이나 오리집, 가지가지 반찬가지 한정식집이나 메모했을 뿐

한 사내로 하여금 꽃처럼 무거운 무쇠솥을 사 몰고 오도록 꼬여낸 적은 없지요.

시인은 그러니까 나와는 달리 밥집이 아니라 솥집을 찜해두었던 겁니다.

썩썩 닦은 솥 하나에 시공간을 푸푸 끓여 오늘을 사는 나의 순정을 뜨끈하게 증거로 보이는 한 사내의 오지랖.

시가 멀찍이서 내게 돌이나 던질 때 저는 종종 석남 시인의 시 구정릉 욉니다.

'어떤 기다림도 잊고 다만 기다림의 자세만으로 생을 채우려 용맹정진하는 왜가리'라 할 때

방점은 딱 거기, '자세'에 찍어둔 채!(183)

 

'북어'의 시인 최승호 시인이 손에 가위를 쥐어 주며 했다는 말.

 

네 안의 정원사를 죽여.

널 가지치기 하려는 놈들은 다 없애라고.(154)

 

이런 선생님을 가진 그미는 행복하다.

행복한 자에게서는 오히려 시가 덜 흘러나올지도 모를 일이지만...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은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최승호, 북어, 부분)

 

북어같은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

오죽하면 피부과 의사인 주제에 자기가 무슨 철학자나 지도자인 양,

'플라톤이 철인정치를 말한 것도 독재'라며 '박정희'와 '철인'을 등가로 놓고 떠든다고 욕을 먹고 그런다.

북어처럼 막대기 같은 생각을 꿰인 입으로 내뱉지 못하는 일도 불행하지만,

그렇게 되도 않은 인생들이 잘난 체 떠드는 걸 여과없이 내보내는 방송도 불행하다.

 

늦은 밤 내 집에 들른 언니의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 속에서

우르르 쏟아지던 밤식빵이며 사과며 꽤나 많던 각종 화장품에 향수 샘플이라니.

선물이라면 백화점에서 작정하고 골라 리본 묶은 네모상자로만 알던 나는

그 앞에서 절로 벌어진 수국처럼 환히 웃었더랬다.

아무런 작정 없고 그 어떤 목적 없이 누군가에게 향하는 그 마음 그대로가 아름답다는 걸 알려준 언니 덕에

나도 가끔 간식거리로 사다 둔 땅콩 봉지나

말린 문어 다리를 필자들에게 보낼 택배 박스에 넣곤 한다.(시인 황인숙 언니, 109)

 

그런 인격을 이렇게 그리는 것이 시인의 마음이다.

마음을 마음으로 느끼는 사람의 마음결. 그걸 적은 게 시다.

 

그때, 그시절로부터 4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민중가요와 전태일을 얘기하며 우는 황현산 선생님을 보았다.

지지 않는 꽃은 역시 사람뿐이다.(83)

 

여느 시인입네 하는 작자들이,

다른 시인, 문인들과 자기는 '너나들이' 하는 사이라거나,

툭하면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사이라는 것을 마치 자랑이나 하듯

잡문에서 노가리 푸는 글은 구역질을 부른다.

 

그렇지만, 출판일을 하는 사람에게

주변의 문인들은 망막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일인바,

그들의 인간다운 면을 이렇게 잡아낼 수 있는 작가라면,

각설하고,

한번 앞날을 기대해 봐도 좋겠다... 싶다.

 

고민하던 불면의 밤, 하얀 전지 앞에서,

'안녕들 하십니까'를 적어내려가던 뜨거운 가슴 앞에...

부끄러움 아는 사람, 그 정도 민감한 양심이라면,

괜찮은 사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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