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의 아침 문학과지성 시인선 437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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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위로는 어여쁜 사랑이니, 오래된 급류가의 어린 딸기처럼.(32. 프랑시스 잠의 '시냇가 풀밭은' 중)

 

그래.

사는 일은

좋은 위로를 필요로 한다.

가장 좋은 위로는

어여쁜 사랑이다.

오래된 급류가에서

존재감 없지만 급류를 콩콩 가슴뛰게하는 어린 딸기의 존재가,

사랑이다.

어여쁜 사랑.

 

나는 먼 곳이 되고 싶다

 

더 먼 곳이 되기 위해선 무얼 해야 할까

 

몸이 자꾸 나침반 바늘처럼  떨리는 아이가 되어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 봐 괴로워하면서

몸이 자꾸 깃발처럼 펄럭이는 아이가 되어

어리석을 사랑에 빠졌을까 봐 괴로워하면서(101, 미래가 쏟아진다면, 부분)

 

김소연의 시는 불안하다.

계속 떨고 있다. 나침반 바늘처럼, 정서불안이다. ㅋㅋ

 

나를 어른이라고 부를 때

나를 여자라고 부를 때

반대말이 시소처럼 솟구치려는 걸

지그시 눌러주어야만 한다

이제 컵처럼 사는 법이

거의 완성되어 간다

완성의 반대말이

깨어진다 (반대말, 부분)

 

조용히 조용을 다한다

먼지는 먼지대로 조용을 조용히 다한다.(먼지가 보이는 아침, 부분)

 

그의 눈은 자꾸 작아지고 작지작은 것을 조용히 조용을 다해 바라본다.

수학자는 머릿속에서 자꾸 논리적으로 연역에 연역을 더한다.

 

완성의 반대말은 미완성이 아니다.

완성이 끝나면... 컵처럼 깨어진다.

 

이런 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조용하고 조용해야 한다.

먼지가 가만가만 가라앉기를 응시하듯...

 

행복보다 더 행복한 걸 긍지라고 부르는 시간

신비보다 더 신비한 걸 흉터라고 부르는 시간(연두가 되는 고통)

 

나무에서 새순이 돋는다.

신비롭지만 나무에겐 흉터를 남기는 시간들.

연두에서 흉터와 고통을 찾는다. 다만, 아프지 않고 행복한 긍지가 된다.

엄마의 튼 뱃살처럼...

 

열매처럼 사랑은 떨어져버린다

입을 약간 벌린 채로(포개어진 의자, 부분)

 

입을 약간 벌린 채... 이말 참 좋다.

그건 멍때리는 것보담은, 몰두다.

열매가 떨어질 때 떨켜에서 온갖 힘을 다해 열매를 놓는다.

그 순간 나무와 열매의 털켜 둘은

입을 약간 벌린 채로, 이별을 한다.

 

시시해(오키나와)

두려움, 아파요, 위험해(여행자)

컴컴한 내일들, 오늘이 내일을 벼랑으로 데려간다(혼자서)

무서운 비명 숲의 흉터(새벽)

 

그는 아파한다.

수학자의 아침에 머릿속이 연역으로 가득하다.

다만, 이 수학자의 연역은 논리적 타당성보다는 메타포의 유사성으로 널을 뛴다.

 

세상이 어둡고 아프다.

누구도 아파하지 않는 아침,

그의 아픔으로 시집은 가득하다.

 

다만, 그의 시가 말하려는 바는 늘 산문만 못하다.

메타포의 질량처럼...

산문적인 글이 그의 본령을 보여준다.

 

맨처음 우리는 귀였을 거예요 아마. 따스한 낱말과 낱말이 포

켓사전처럼 대롱거리는 귓불이었을 거예요 아마. 그때 우린 사전

의 속살을 들춰보았죠. 여긴 두 페이지가 같네요? 파본인가요?

그다음 우리는 그릇이었을 테죠 어쩌면. 아이스크림을 컵에 담듯

살아온 날들의 독백이 녹아 흘러내리지 않게 자그마한 그릇처럼

웅크려야 했을 테죠. 그때 우리는 맛있었죠. 그때 우리는 양 손바

닥처럼 밀착되었을 테죠. 고해와 같았을 테죠 어쩌면. 딸기맛과

메론맛이 회오리처럼 섞일 때면 하루가 저물었죠. 그런 후에 우

리는 서로의 기록이었죠. 손목이 손을 놓치는 순간에 대해, 시계

가 시간을 놓치는 순간에 대해, 대지와 하늘이 그렇게 하여 지평

선을 만들듯이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그렇게 하여 침묵을 만들었

죠. 등 뒤에서는 별똥별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내렸죠. 그러곤

우리는 방울이 되었어요. 움직이면 요란해지고 멈춰서면 잠잠해

지는, 동그랗게 열중하는 공명통이 되었죠. 환희작약 흐느낌, 낄

낄거리는 대성통곡. 은총과도 같이 도마뱀의 꼬리와도 같이. 우

리는 비로소 물줄기가 되었죠. 우리는 비로소 물끄러미가 되었

죠. 이제 우리는 질문이 될 시간이에요. 눈 먼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시간이죠. 덧없지 않아요.

가없지 않아요. 홀로 발음하는 안부들이 여울물처럼 흘러내리는

이곳은 어느 나라의 어느 골짜기인가요. 이것은 불시착인가요 도

착인가요. 자, 우리의 질문들은 낙서인가요 호소인가요, 언젠가

기도인가요? [출처] 메타포의 질량 -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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