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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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서쪽으로 기울어 하얗게 빛나던 띠는 절반쯤 가늘어졌다.(269)

 

 

 

 

인간의 세상은 참으로 하잘것 없는 것들로 날마다 난리도 아니다.

재난에 대한 예지력도 없어서 몰살당하기 십상인 존재들이,

툭하면 만물의 영장이라며 잘난체를 떤다.

 

그런 인간종을 말끄러미 응시하는 고양이들의 세계.

 

사마귀 날개는 긴 목에 어울리게 아주 가늘고 길게 생겼는데,

듣자 하니 그저 장식용일 뿐

인간의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처럼 전혀 쓸 데가 없다고 한다.(329)

 

고양이의 눈에 비친 주인의 실제 모습은

약진하는 시대에 편승하지 못하고 그 대열에서 낙오한 채

궁상을 떨고 있는 태만한 한량에 지나지 않는다.(623)

 

소세키가 바라본 일본은,

지나치게 서구를 좇는 어리석은 '궁상 한량 집단'에 지나지 않았나보다.

그래서 그는 '마음'같은 작품에서도 인간이 본질에 대하여 눈길을 놓지 않으려 했던가 보다.

일본 내의 '도련님들'에게서 에너지를 찾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고.

 

아무튼 이런 기세로 문명이 발달해간다면 난 살아가는 게 싫네.(586)

 

이런 것이 당시를 바라보던 소세키의 소회다.

고양이들이 바라보던 인간은 어리석고 참 보잘것 없는 존재다.

그렇지만, 고집스런 주인의 모습에서 '당랑거철'처럼 보일지 몰라도,

물질 문명의 폭주에 당당하게 맞서는 정신은 높이 살 만 하다.

 

인간이란 천공해활한 세계를 스스로 좁혀 자기가 두 발을 딛고 있는 자리 밖으로는 절대 나갈 수 없도록 잔재주를 부려

자기 영역에 새끼줄을 치는 것을 좋아한다고 단언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인간이란 구태여 고통을 바라는 존재라고 평해도 좋을 것이다.(533)

 

이 소설은 잔잔한 재미로 가득하다.

스토리가 졸깃거리면서도,

만담같은 능청스러움도 있고,

그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움도 번득인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시대에 뒤처지는 편이 낫다네.

무엇보다 지금의 학문은 앞으로 앞으로만 갈 뿐인데,

아무리 가봐야 끝이 있는 것이 아닐세.

도저히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거지.

그에 비하면 동양식 학문은 소극적이고 깊은 맛이 있네.

마음 자체를 수양하는 거니 말일세.(450)

 

고전은 단순히 오래 살아남은 책이 아니다.

오랜 뒤에 읽어도, 그 책에서 날카로운 관점을 읽을 수 있는 책이 고전이다.

소세키 전집이 다시 유행하는 이유일 것이다.

 

 

129. 시로키야... 白木居...로 적혀있다. 白木屋으로 쓰는 게 맞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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