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독서 -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
이현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이책은 '사적인' 독서리뷰집이다.

'사적인'이라고 하면, 개인에게 귀속되는~ 정도의 의미인 듯 하지만,

실비아 크리스텔의 찌르르한 영화 '개인 교수'처럼, 'private'인 사적인 '욕망'을 지칭하는 용어로 겹쳐 쓰인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제법 '야한' 고전들을 읽어 준다.

그 고전들은 왜 '야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도 '힘 power'이 있는가.

 

'보바리 부인'이나 '채털리 부인' 그리고 '주홍글씨'처럼

부정한 여인을 그린 소설,

인간 무리 륜(倫) 안에 넣어 두지 말았으면(不) 하는 '욕망'이 강조되던 시대의 여성들의 삶을 조망하게 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랑을 '불륜'으로 이름짓는 것은 욕망의 측면에서 보면 자연스러움을 가두는 '인위'에 해당한다.

그것을 억압하는 힘은 'force'겠다.

 

그래서 이 책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단어 '욕망'은 아주 중요한데,

로쟈는 이렇게 정리한다.

 

문제는 욕망이 우리를 파멸로 몰아가는 폭군이라는 거다.

이 욕망과 욕구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욕구는 생리적 요구로서 만족에 도달할 수 있지만, 욕망은 정신적 요구로서 어떤 경우에도 만족에 도달할 수 없다.

배를 채우기 위해서 먹는 것은 욕구이지만, 즐기기 위해 진귀한 음식을 먹는 것은 욕망이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옷을 입는 것은 욕구이지만, 사치를 위해 화려한 옷을 입는 것은 욕망이다.(43)

 

책의 전체를 꿰뚫는 핵심 개념이 좀 허술하다.

우선, 욕망은 '정신적 요구'만은 아니다.

특히 자본의 시대에는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하게 되며,

욕구 역시 매슬로우의 사회적 욕구처럼 추상적인 것도 있을 수 있다.

 

욕망을 이렇게 욕구와 도식적으로 나눠 놓고는 삶의 패턴을 분석하기에 적절해보이지 않는다.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마음은,

결핍된 것에 대한 이루기 힘든 갈망을 담고 있는 것이어서,

'진귀한 음식'이나 '화려한 옷'처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욕망은 세상을 바꾼다.

음식이나 옷 따위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다.

라캉의 '욕망' 이론을 끌어 들였더라면 차라리 좀더 명징해지지 않았으려나 싶다.

 

보바리 부인의 가치는 플로베르가 의도하였든 아니었든,

그 사회 상황을 리얼하게 그려내었다는 면에서 강조된다는 '사회주의 리얼리즘론'적 관점도 고려할만하지 않을까?

 

보바리 부인에 비해 '채털리 부인'은 훨씬 적나라하다.

 

이렇듯 로렌스가 생각한 진정한 삶은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이 조화로운 결합 관계에 놓인 삶입니다.

서로에게 맞는 짝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관계에 대한 예찬을 담은 소설이 바로 '채털리 부인의 연인'입니다.(125)

 

이런 부분도 조금 아쉽다.

신분을 뛰어넘은 두 연인이 빗속에서 서로를 부둥켜 안는 장면이

그저 외설적으로 재미를 주려고 쓰여진 것이라면, 고전의 반열에 들 수도 없었다.

그 시대의 분위기에서 '신분'이나 '여성'이라는 질곡이 얼마나 인간을 초라하게 하는지,

그런 사회를 풍자하고 비틀려는 의도가 강한 소설이다.

조화로운 사랑은 이미 '신분'의 차이에서 파탄이 났고,

성적으로 끌린다고 하여 '서로에게 맞는 짝'일 수는 없다는 것이 이 소설의 강한 임팩트이므로...

 

어떤 옷을 입든

이 비좁은 지상의 삶에서

나는 여전히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저 놀기만 하기엔 너무 늙었고,

소망없이 살기엔 너무 젊었다.

세상이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부족해도 참아라, 부족해도 참아라... 이것이 영원한 노래다.(198)

 

괴테의 '파우스트'의 문제제기다.

인간은 세상을 좀 편하게 바라볼 만 한 나이가 되면,

마음 속 열정이 끓어넘치던 시기가 지날 때쯤, 즉 불혹의 경지가 되면, 이미 늙고 만다.

남자의 거시기가 여자를 봐도 '혹'하지 않는 나이가 늙은 나이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파우스트는 '지식욕, 성욕, 권력욕'에 대한 치열한 추구에 대한 보고서이다.

지식욕, 성욕, 권력욕은 '남성적'인 '포스'가 넘치는 단어들이다.

경쟁적이고 비교의 대상이 되는 것들... 남자들은 경쟁시키면 끝도 없이 싸운다.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이야기는, 남성적인 '포스'만으로 다투는 세계의 부정적 요소를 비판하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여성적인 것은, 경쟁하지 않고도, 비교하지 않고도 행복을 '발견'하거나 '발명'할 수 있는 '파워'로서의 힘을 의미하는 것이나 아닐는지.

젊은 시절, 불끈 솟구치는 '비아그라'의 포스가 사그러든 노년.

여성적 에너지가 남성의 에너지를 능가하는 나이. 포스는 줄어들어도 '파워'는 넉넉해지지나 않을까?

 

파우스트가 보여준 '욕망'은 '상상의 힘'으로서의 욕망이다.

근대로 이행되는 시기의 욕망이 '지식, 성, 권력'에 대한 지향이라면,

자본의 시대로 넘어와서는 모든 욕망은 '자본'과 귀결된다.

자본은 한방에 '포스'도 '파워'도 장악해버리는 <남성적> 도구, <늙지 않는> 도구가 탄생한 것이다.

자본의 시대 이후, 어쩌면,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희망은 시궁창에 버려진 개념일는지도 모르겠다.

 

돈 후안으로 더 알려진 '돈 구안'을 로쟈는

'어른 아이'라고 부른다.

어른 아이의 특징은 대개 불같은 상상력을 갖고 있고,

상징계의 법이나 질서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는 것(247)이란다.

 

돈 구안이 '개념을 탑재하지 않은' 채로,

'영혼없는 사랑의 어휘'를 구사하는 것은,

세상이란 매트릭스에서 정해 둔 '윤리'라는 금을 '폴짝' 뛰어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노라면,

세상은 온통 '욕망'의 도가니란 걸 느낀다.

다만, 자본의 시대 이후에는 그 '욕망'이 철저히 '자본'에 예속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것.

 

욕망을 다룬 소설을 이렇게 읽어주는 일도 재미있지만,

욕망의 근원, 욕망의 모습을 '상담'을 통해 풀어주는

무려 철학박사 강신주가 드뎌 '힐링캠프'까지 접수하는,

그런 시대임을 읽어 본다면,

왜 강신주가 '힐링'이란 말은 사기다~라고 했는지

시대가 바뀌면서 '욕망'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 것인지... 많이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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